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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휠체어 탈 수 있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일 줄이야!
 아내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휠체어 탈 수 있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일 줄이야!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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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무엇으로 살까?"

흔히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이 곧 수행 길이다"고 합니다. 심한 사람들은 "결혼=출가"라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결혼이 수행길이든 출가든 간에 넘어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니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신혼에는 90% 이상은 사랑으로 삽니다. 10년 넘은 부부들은 의리로 산다고들 합니다. 그럼 30년 넘은 부부는? 이때부턴 다시 부부 밖에 없다나 뭐라나. 이처럼 부부의 삶을 떠올린 건 한 편의 시(詩) 때문입니다. 시를 읽는 순간 동병상련의 묘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왜 그랬을까? 먼저, 시부터 감상하시죠.

깨닫다, 아내를 몹시 푸대접하고 있었다는 걸!

    아내의 가출
                              김계수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녀가 채워주고 간 보온밥통 뚜껑이 열리지 않은지 138시간 동안 아직도 그녀는 나가고 있는 중이다. 식탁에 올려둔 장바구니에서, 냉장고 벽면에 붙은 공과금 영수증에서, 처음의 온기를 잃지 않는 밥통에서, 반짝 윤나게 닦아둔 빈 그릇과 그녀가 아끼던 냄비에게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혼자 남은 뒤로 들어간 적이 없던 큰 방 화장대 위에 마른 지문이 야위다. 싸구려 화장품 뚜껑에 쌓인 먼지 속으로 마른 향기가 아는 체한다. 집 나가던 날 벗어 놓은 무릎 튀어나온 잠옷에서 멍든 피부가 빠져나가고 있다. 걸려 있는 옷가지에서 가난이 기뻐하며 새어 나간다.

장롱 속문을 열다가 헐거워진 옷 사이에서 발견한 아내의 흰 생리대, 첫아이를 낳은 이후로 한 번도 날지는 못했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내게 맡긴 그 아름답고 오랜 날개가 잠들어 있다. 늘 아내와 같이 날아가고 싶었던 부끄러운 몸 하나가 잠들어 있다.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아내가 날개를 찾으러 다시 올까

시인 김계수는 장바구니, 벽면에 붙은 공과금 영수증, 빈 그릇, 마른 지문, 화장대 위 먼지, 싸구려 화장품, 마른 향기, 무릎 튀어나온 잠옷, 헐거워진 옷, 생리대 등을 들먹이며, 아내 부재를 실감하는, 홀로 남은 남편의 공허를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부남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있을 때 잘하라고.

그러니까 시인과 내가 다른 점은 아내가 집으로 돌아올 날에 대한 기약이 있고 없고 차이 뿐이었습니다. 단지, 제목 '아내의 가출'을 '아내의 부재'로 바꾸면 바로 우리네 삶이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내를 몹시 푸대접하고 있었다는 걸.

도법 스님은 수덕사 출타 중, 그래서였을까?

전북 남원 실상사 앞에 섰습니다. 아내에게 욕 바지기로 먹을 일이었습니다만,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전북 남원 실상사 앞에 섰습니다. 아내에게 욕 바지기로 먹을 일이었습니다만, 할 일이 있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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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뭐라 하지 마. 일 낸 거 같아."

절집 둘러보기를 통해 우리네 삶을 돌아보는, 여행 수필 <남도, 선문답 여행> 책 발간을 목표로 막바지 발품을 팔던 중, 아내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어렵사리 낸 삶의 여흥을 여지없이 박살내는 '산통 깨기'였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뭐라 하지 마"라며 선수를 칠까.

그렇다고 성질 못 낼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도착까지 10여 분 남은, 전북 남원 실상사 가는 길 위에서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종문 스님과 동행이 아니더라도, 그 길은 마음 추스르기와 함께 '도 닦으러' 가는 선문답 여행길이었기에. 대신 깊은 심호흡이 필요했습니다.

"왜, 뭔데 그래. 내가 또 놀랄 일이 있는가?"
"장난 아니야. 꼼짝할 수가 없어. 엉덩이뼈가 부러진 거 같아. 당신 어디야?"
"콩국수 먹고 난 뒤 실상사 가는 길 위."
"안되겠네. 실상사 갔다 와요. 아이들 있으니 괜찮아. 일요일 저녁이라 병원 가봐야 도움 안 되니 낼 아침에 병원 가게."

헉. 미끄러져 발목 부러진 지가 언제였더라? 아내는 또 생로병사 중, 병(病)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왕 엎질러진 물. 화내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씁쓸했습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차츰 헷갈렸습니다. 아내가 원망스러운 건지, 내가 원망스러운 겐지….

암튼, 아내 말처럼 실상사는 가야했습니다. 실상사에서 하룻밤 청해야 하는 삶 여행자이자, 해탈로의 여행자 종문 스님을 오롯이 내려놔야 했으니까. 실상사, 대충 한 바퀴 돌았습니다. 예사스러운 실상사가 아니었습니다. 도법 스님은 수덕사로 출타 중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아내에게 향했습니다.

집 나간 아내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

아내가 집을 나갔습니다, 자발적으로. 걱정은 없었습니다,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 알기에.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다만. 119 구조대를 불렀다고 합니다, 아내가 병원에 가기 위해.

아내의 부재는 가족을 긴장시켰습니다. 특히 남편 사람이었던 나. 아빠 사람이었던 나를 괴롭혔습니다. 아시죠? 아무 사이 아닌 남녀를 두고 남자 사람, 여자 사람으로 부르는 거. 하여, 남편이었으되 집안일에 별 도움 되지 않았던 남편 사람. 아빠였으되 아이들에게 별 도움 못됐던 아빠 사람을 더욱 괴롭혔습니다.

밥하기, 청소하기, 보리 차 끓이기, 설거지하기, 쓰레기 버리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화분 물주기, 강아지 밥 챙기기와 배설물 치우기, 은행일과 공과금 내기, 세탁기 돌리기, 빨래 널기와 개기, 요리(?)하기, 아이들 밥 차리기와 용돈주기, 등교시키기 등 모든 집안 일이 제 몫으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거들었습니다만 하나마나.

아내는 엉치뼈가 부러져 허리 쓰는 건 물론, 움직이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대ㆍ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수발이 만만찮았습니다. 이때 여자들의 불편한 진실, '숨겨진 날개'도 등장했습니다. 생리까지 터져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꼼짝없이 근무 시간을 제외하곤 아내 옆에 있어야 했습니다. 다행인 건, 아내의 인복 덕인지 아이들 외에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여럿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내의 부재에 따라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아내가 밤늦게 퇴근해 설거지 등 집안일에 열심이었던 심정 등을…. 그동안 집안일은 아내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집에 같이 사는 구성원이 다 함께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생색내듯 도와주었던 현실을 절감했습니다. 아내가 못살겠다며 집을 나가도 정말 할 말 없을 듯 싶었습니다.

반성했습니다, 혼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 이제 알겠지? 아내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있을 때 잘해!"

아내, 병상에 누워 "그래도 부부밖에 없다"면서도 이렇게 뼈있는 소리 한 마디씩 합니다. 엄청 반성했습니다. 아내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아내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 이렇게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 자릴 빌어 아내에게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여보, 미안하네!"

아내는 두 달여 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한답니다. 신이시여, 뼈가 빨리 붙어 병상에서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아내는 두 달여 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한답니다. 신이시여, 뼈가 빨리 붙어 병상에서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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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아내, #실상사, #결혼, #병원 수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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