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들에게 청산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임화규씨 부부 모습.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들에게 청산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임화규씨 부부 모습.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80평생 살면서 저 어른한테 뺨 한 대 맞아본 적 없어요.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천수경을 들어요. 말도 못하게 자상하고 좋아요. 그 모습을 아들들도 따라하더라고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들과 청산도 역사 문화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양지리 임화규(84세)씨 댁에서 채록하던 중 부인 유익례(81세)씨가 한 말이다. 천수경은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관세음보살의 광대한 자비심을 찬양하는 다라니경이다. " 저 어른"이라고 해서 사진 속 시아버지를 일컫는 줄 알았다.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어른"은 남편을 지칭한다는 걸 알았다. 이혼이 다반사이고 황혼이혼까지 흔하게 들려오는 시대에 남편을 "어른"이라고 공경하는 부인의 마음씨.

임화규씨 댁에서 청산도 역사와 문화를 채록하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앞에 임화규씨 부부가 앉아있다
 임화규씨 댁에서 청산도 역사와 문화를 채록하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앞에 임화규씨 부부가 앉아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임화규씨 부부는 지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조상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리고 난 후 상에 올렸다. 선물받은 포도를 상에 올려놓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유익례씨 모습
 임화규씨 부부는 지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조상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리고 난 후 상에 올렸다. 선물받은 포도를 상에 올려놓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유익례씨 모습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부창부수일까? 임화규씨는 지인들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광에 들어가 상을 차려놓고 조상신에게 감사를 드린 후 음식상에 올린다. 큰 방 앞에는 부친 사진부터 온 가족사진이 서열순서로 걸려 있다.      

대문 앞까지 나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한 임화규씨. 전라남도 내 여러 중학교를 돌며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정년퇴직할 때는 소 한 마리를 잡아 주위 분들을 초대해 잔치를 치렀고 청산도 내 모든 세대에 밥상을 선물했다. 국가의 녹을 먹고 무탈하게 퇴직했음이 주위 분들 덕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임화규씨의 부친은 문장가였던 김유선생의 제자였다. 김유 선생의 문집속에는 임화규씨의 부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임화규씨의 부친은 문장가였던 김유선생의 제자였다. 김유 선생의 문집속에는 임화규씨의 부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임화규씨 부인 유익례씨는 함께 유행가를 부르며 글 모르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름을 달래줬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를 녹음한 곡이 200여 곡이나 된다.
 임화규씨 부인 유익례씨는 함께 유행가를 부르며 글 모르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름을 달래줬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를 녹음한 곡이 200여 곡이나 된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임화규씨 댁에서는 거문도와 청산도에서 후학을 길렀던 문장가 김유 선생의 문집과 더불어 집안 대소사와 관련된 고문서가 여러 권 나왔다. 임화규씨 부친은 김유 선생의 제자다."
 "임화규씨 댁에서는 거문도와 청산도에서 후학을 길렀던 문장가 김유 선생의 문집과 더불어 집안 대소사와 관련된 고문서가 여러 권 나왔다. 임화규씨 부친은 김유 선생의 제자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거문도와 청산도에서 후학을 가르친 귤은 김유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임화규씨의 부친은 보릿고개를 겪는 어려운 시절에도 임화규씨를 대학까지 보냈다. 임화규씨는 13살부터 쟁기질을 배웠고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퇴근하면 논밭에 나가 일을 해서 7남매를 훌륭하게 키웠다.     

부인 유익례씨는 12명의 아이를 유산하고 7남매를 두었다. 시골 살림으로 7남매 모두 대학 졸업해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명절에 임화규씨 부부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50여 명의 대가족이다.

임화규씨 부인 유익례씨가 가족 사진을 설명해주고 있다
 임화규씨 부인 유익례씨가 가족 사진을 설명해주고 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대식구가 잠을 자려면 방과 음식이 그만큼 많아야 할 건 당연지사인지라 방이 일곱에다 대형냉장고가 세 개나 된다. 한쪽 구석에는 노래방 기계도 있었다. 

꽹과리도 잘 치는 임화규씨가 명절이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유익례씨는 장구를 치며 온 식구가 노래와 오락을 하며 즐긴다. 집안 어른들이 몸소 화목한 가정을 위해 모범을 보이는 가풍이 눈에 선하다. 유익례씨가 대가족이 모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장구도 치고 함께 노니까 자식들이 다 와요. 자식들  모이면  네 할아버지 잘 모셔라. 보릿고개시절인데도 네 아버지를 잘 키워놓으니까 너희들 다 대학 보냈지 않느냐 하고 말해요."

안방 벽에는 요즈음 거의 볼 수 없는 '칠성'이 걸려 있었다. "칠성이 무엇이고 칠성신을 모시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묻자 유익례씨가 대답했다.

"제일 처음 수확한 좋은 쌀 일곱 주먹을 모셔놓고 칠월칠석날 물 떠놓고 목욕재계한 후 제를 지내요. 정화가 되기도 하고 집안에 큰 대소사가 있으면 조상이 도와줄 거라 믿어 공을 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칠성은 다양하게 신앙되는 신적 존재로, 원래 칠성은 천체의 하나인 별을 말하는 것이지만 전설적으로는 남두칠성과 북두칠성이 있다. 재물과 재능에 관한 것을 관장하는 것으로 믿는다. 농사나 어업이 잘되기를 빌거나 재능이 뛰어나서 입신출세하고 과거에 급제하도록 칠성신에게 비는 신앙이 있다.

뒤쪽 벽면에는 지앙오가리가 있었다. 유익례씨는 "애기 낳을 때 밥을 담아놓고 상을 걸게 차려놓고 제를 지내요. 음식은 큰 며느리만 먹어요"라고 설명해줬다.

임화규씨 안방에 걸려있는 칠성 모습. 민속신앙으로 재물과 재능에 관한 것을 관장한다
 임화규씨 안방에 걸려있는 칠성 모습. 민속신앙으로 재물과 재능에 관한 것을 관장한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출산의 신으로 여겼던 지앙이 들어있는 지앙오가리를 유익례씨가 보여줬다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출산의 신으로 여겼던 지앙이 들어있는 지앙오가리를 유익례씨가 보여줬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한국민속신앙대사전>에 의하면 전라도 지역에서 지앙은 산신(産神)으로 믿어진다. 안방 윗목에 선반을 만들어서 지앙을 모신다. 그릇 안에는 쌀을 넣고 그 위에 여자들이 좋아하는 색실이나 오색 헝겊을 놓은 다음 한지로 덮고 뚜껑을 덮는다.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을 때 산모가 있는 방 윗목에 순산과 산모 및 아이의 건강을 위해 차리는 상을 지앙상이라고 부른다.

말로만 들었던 '칠성'과 '지앙오가리'를 모시고 사는 부부에게서 조상을 깍듯이 모시는 효심과 가족을 사랑하는 신심을 보았다. 글 모르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글공부도 시켰던 유익례씨가 가는 세월을 아쉬워했다.

"이렇게 자식들 다 키우고 좋은 세상 와서 오래 살려고 하는데 세월이 이렇게 가버렸어요."

전통과 효가 사라진 시대. '가화만사성'의 모범을 보여준  임화규씨 부부의 환송을 받으며 돌아오는 내내 흐뭇함에 젖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임화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