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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트렌드는 구글 사용자들이 검색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일정 기간 동안 이슈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이를 살펴보는 기능이다. 몇 가지 키워드를 선택해주면 각각의 키워드에 대한 사용자들의 관심도 추이를 그래프의 상대적 높낮이로 비교할 수도 있다.

지난 24일 구글 트렌드 트위터 계정은 영국의 EU 탈퇴 결정 이후 영국 구글에서 'EU를 떠난다는 게 무슨 의미?' 'EU가 뭐야?' 등의 질문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밝혔다.

그러자 같은 날 미국 경제지 <포춘>은 "영국인들은 이제야 EU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조금 늦다고 생각하지 않나?"라고 비꼬았고(☞관련 기사), 26일 <중앙일보>도 "영국인들은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비슷한 해석을 내렸다(☞관련 기사). 그런데 이러한 해석들을 둘러싼 반론이 흥미롭다.

영국인들을 바보 취급한 언론들

지난 24일 트위터 상에 구글 트렌드가 올린 브렉시트 반응.
 지난 24일 트위터 상에 구글 트렌드가 올린 브렉시트 반응.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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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블로터>는 데이터 저널리즘 전문 언론 <파이브서티에잇> 벤 카셀먼 경제부 선임기자의 반론을 소개했다(☞ 관련 기사).

카셀먼은 "미국인들도 밋 롬니(2012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를 떨어트린 후 그를 미친 듯이 구글에서 검색했다. 정말 그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관련 주제를 질문 형식으로 검색하는 습관이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논리가 'EU가 뭐야?'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다. 또한 <블로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대니 페이지의 '구글 트렌드를 그만 쓰라'는 일침도 소개했다.

페이지는 구글 트렌드를 근거로는 그리 많은 내용을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가령 브렉시트와 관련해 'EU'에 대한 관심도가 훌쩍 올랐다는 걸 구글 트렌드로 확인한들, 관심을 보인 이들이 '실제로 몇 명인지' '투표는 했는지' '탈퇴파인지 잔류파인지' 등의 정보는 알 수 없다는 거다. <블로터>는 "이번 사례는 데이터를 성급하게 받아들이고 얕게 해석하는 기사가 만들 수 있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소수의 사람이 정보를 검색할 때 보이는 패턴을 가지고 확대해석해 영국인 전체를 싸잡아 모욕한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나는 <블로터>의 지적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데이터를 해석할 때 신중한 태도를 권장하는 것 이상으로 구글 트렌드를 어떻게 써야 좋은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은 건 아쉽다. 그래서 보충 설명을 하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은 기자가 데이터를 해석할 때 필요한 '이론적 근거'를 충분하게 수집했는가 아닌가에 있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 저널리즘을 네 가지 형태로 분류해볼 수 있다.

[좋은 저널리즘] 이론적 근거가 탄탄하고 데이터 해석도 적극적인 것.
[그저 그런 저널리즘] 이론적 근거가 탄탄한데 데이터 해석에 소극적인 것.
[불성실한 저널리즘] 이론적 근거가 미약하고 데이터 해석도 소극적인 것.
[황색 저널리즘] 이론적 근거가 미약한데 데이터 해석에 적극적인 것.

'데이터'를 애물단지로 놔둘 것인가, 공격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검색 시점: 2016년 6월 29일 오후 2시 30분.
 검색 시점: 2016년 6월 29일 오후 2시 30분.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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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구글 트렌드에서 여성혐오 용어인 '된장녀'와 '김치녀'를 검색해보면 위와 같은 그래프가 나타난다. '김치녀'에 누리꾼들이 처음 '1'이상의 관심도를 보인 시점은 2011년 12월이고(작은 네모), 2013년 2월에 처음 '된장녀'와 동률을 이뤘다. 그 후 '김치녀'가 상승 추세고 된장녀는 완만한 하향 추세다(큰 네모).

물론 이 그래프 자체만으로는 <블로터>가 소개한 대니 페이지의 주장처럼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된장녀'와 '김치녀'는 무슨 상관인지, 2011년 12월~2013년 2월에 사용자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고, 그 이전 혹은 이후에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관련 사안에 대해 취재 중인 성실한 기자라면 데이터를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가령 '된장녀'나 '김치녀'와 관련된 논문, 책(사전), 기사, 커뮤니티 등 '문헌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김기란·최기호의 <대중문화 사전>에 따르면 '된장녀'는 2006년 야후 코리아가 조사한 인터넷 신조어, 유행어 1위에 올랐던 단어다. 초기에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 활동을 하면서 부모나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는 여성상'을 의미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냥 '부정적인 여성상' 전체를 싸잡는 말로 외연이 확장되어갔다.

그런데 '김치녀'도 마찬가지다. 황슬하·강진숙이 2014년 한국방송학보에 발표한 <온라인 여성호명 담론에 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의 다양한 'OO녀' 시리즈는 주로 여성의 외모, 연애와 결혼에 대한 태도, 도덕적 의무 등 다양한 요소들에 대하여 여성이 '개념이 있느냐, 없느냐' 임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공통점이 있다. '된장녀'와 '김치녀'는 '무개념녀'로 낙인찍힌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하면 2012~2013년은 두 용어의 의미가 점차 겹치는 방향으로 수렴한 시기였고, 사람들이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배경 사상에 동의하든 안 하든) '된장녀'보다는 '김치녀'라는 신조어에 더 많은 관심과 주도권을 주기 시작했다는 추가적인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럼 '김치녀'라는 용어가 확산된 가장 큰 원인은 또 뭘까.

2012~2013년은 '김치녀'라는 말을 상습적으로 쓰던 일베가 급부상하던 시점이다(김학준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참조). 이렇게 자료들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기자들은 데이터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리석게 단정 짓거나, 아예 데이터를 애물단지 취급하지 않고도 해석을 내릴 때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활용 사례도 있다. 이번에는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의 관심도를 살펴보자.

검색 시점: 2016년 6월 29일 오후 2시 40분.
 검색 시점: 2016년 6월 29일 오후 2시 40분.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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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SBS>는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지나친 개념 과잉이라며 "'여성혐오'는 여성 차별, 여성비하, 가부장적 분위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각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중략) 복합적 개념의 용어 사용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위 그래프가 반박하듯 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화두가 됐던 '여성혐오'가 최고점일 때 '여성차별'도 지난 8년 중에 가장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서로가 관심도를 견인했다고 볼 수 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냐고? 2012년 4월 전까지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은 관심도가 동반상승, 동반하락하는 경향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2012년 4월부터는 동반상승, 동반하락 경향이 빈번하게 반복했다. 2012년 4월부터 '여성혐오'와 '여성차별'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참고로 2012년 4월은 '여성혐오'를 'misogyny.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본 도쿄대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처음 번역 출간된 시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요즘 혐오가 국어사전적 의미인 '미워하고 싫어하는' 개인 일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인식에 도달했거나 또 당장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인식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결국 여러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속단해서는 안 된다.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도 안 쓰고, 단기간의 피상적인 갈등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을 근거로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킨다고 주장하는 건 더 옳지 않다. 언론이 말해야 할 본질은 왜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는 추상성 높은 용어를 접했을 때, 왜 누구는 혼란에 휩쓸리고 누구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진의를 곰곰이 성찰할 줄 아느냐다.

어떠한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기자는 데이터와 문헌을 열심히 수집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물론 구글 트렌드도 약점이 있다. 실제로 몇 명이 관심을 보였는지 알 수 없고 구글 사용자가 사회 구성원들을 통계적으로 대표할만한 샘플인지도 의문이다. 다만 사이버 공간은 사람들이 더 솔직하게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드러내는 공간인 만큼 다양한 문헌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고려한다면 활용 가치가 더욱 커지는 옵션 중 하나다.


태그:#구글, #구글 트렌드, #블로터, #브렉시트,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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