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은 내지 않겠다고 했다"- 이순자 여사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하고 광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순자 여사는 더 적극적이다. '돌멩이에 맞아죽더라도 광주 사람들이 맘을 푼다면 가야 한다'는 것이 이순자 여사의 직언이다. 이 여사는 '백담사에 있을 때나 형무소에 있을 때나 감옥에서 나와서나 죽은 시민과 군인을 위해 백배 사죄해왔다. 돌에 맞아 죽더라도 광주 민심이 풀리면 가겠지만 맞아 죽어도 안풀릴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가겠다는 것은 확실하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방문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해서 5월 11일 광주에 내려가 5.18 단체들을 만난 것인가? "아니다. 4월 25일 '4월 27일 방문'이 확정돼서 5.18 단체들에게 '이렇게 추진됐다'고 전하고 '어떠냐?'고 의견을 묻기 위해 4월 26일 광주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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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5월 11일에는 왜 광주에 내려갔나? "광주에 내려가기 전에 사건이 터져 버렸다. 민정기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서관이 '광주사태 발포 책임 없다'는 내용이 담긴 '전두환 회고록'을 낸다고 발표했다. 그랬더니 <광주일보>에서 '광주 시민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전두환'이라는 기사나 났다. 광주 시민들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욕하고 난리가 났다. 이것을 수습하고 광주에 내려가야 할 것 아닌가? 4월 25일자 <광주일보> 신문이 4월 28일에서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그것을 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4월 27일 방문) 한 얘기 전부 백지야'라고 했다. 4월 27일 방문해서 협의한 내용을 없는 것으로 하자는 얘기다.
원래는 4월 28일 광주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못갔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5월 9일 배수강 기자가 4월 27일 이런 일이 있었다고 기사를 내고, 나는 5월 10일 광주에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광주쪽에 '5월 10일 내려간다'고 했더니 그쪽에서 그날 시간이 안된다고 해서 5월 11일 점심 시간에 광주에 내려갔다."
- 그럼 회고록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5월 11일 내려간 것인가? "아니다. 4월 27일 방문 결과를 전하려고 갔다. 이미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회고록에 관해 물어봤더니 '내 회고록은 없다, 집사람(이순자 여사)만 하고 있다'고 답했다."
- 민정기 비서관은 4월 27일 방문을 앞둔 시기(4월 25일)에 왜 회고록 발간을 발표했나? "민정기 비서관은 우리가 4월 27일 만나는 것을 몰랐다. 장세동(전 제3공수여단 여단장).허화평(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등 광주 사과 반대세력도 몰랐다. 고명승, 정호용 장군만 알고 있었다. 4월 28일 광주 사과 반대세력이 4월 25일자 <광주일보> 신문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가지고 가서 항의하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충립이 거짓말했네, 광주 민심이 좋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네'라고 했다. 4월 27일 만났는데 4월 28일 (협의한 내용이) 뒤집어졌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안내겠다고 한 것은 회고록 논란이 일었던 직후인 4월 28일 이후인가? "이미 4월 27일 방문에서 자기는 회고록을 안내겠다고 했다. 이순자 여사만 내고."
- 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과거사에 대한 정리된 입장은 회고록을 통해 밝히겠다"라고 했는데."그것은 민정기 비서관이 말한 것인데, 전두환 전 대통령 말과 민정기 비서관 말이 다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분명히 회고록을 안낸다고 했다."
"내가 전두환이 광주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 5월 11일 광주에 내려가서 4월 27일 방문 결과를 전했을 때 5.18 단체들의 반응은 어땠나? "내가 5.18 단체들에 두 가지를 전했다. 하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할 경우 염려되는 4가지다. 그 4가지가 해소되면 당장은 아니더라고 광주를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그 두 가지를 전하니까 나온 첫 반응은 '김충립 말만으로는 안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육성으로 말해라, 광주 방문은 환영하지만 진정성이 있어야 환영하고 대우한다'였다. 그래서 내가 고명승 장군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그 얘기를 전했다."
- '진정성 있게 사과하라'는 것인데 어떻게 사과하라는 얘기인가? "모르겠다. 진정성 있게 담화하라는 것인데 울면서 해야 한다는 것인지..."
- 5.18 단체들은 발포 명령 책임 부분은 얘기하지 않았나? "안했다. 발포 책임자를 밝히라는 얘기는 없었고, '통크게 대통령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진정성있게 사과해라, 그러면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 결국 발포 명령은 미스터리로 남게 되는 것인가?"아직까지는 미스터리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발포 명령문제는 내가 풀려고 한다. 특전사 요원들을 상대로 신문광고를 내려고 한다. 그래서 5월 18일 희생된 병사를 관리한 동료나 중대장, 대대장이 나에게 연락해주면 좋겠다. 이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중대한 일이다."
- 이후에도 전두환-광주 화해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할 생각인가?"지금은 중단한다. 시끄러우니까. 하지만 내가 세상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명이 전두환-광주를 화해시키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해서, 광주 사람을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위해서, 대한민국과 동서 분열을 막기 위해서 전두환-광주 화해를 계속 추진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하고 광주를 방문할 수 있을까?"사과하고 방문한다. 왜 하냐?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광주는 딱 막힌 절벽이었다. 지금 내가 나서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발포 명령 책임이 없다고 (대신) 항변해주고 있지 않나. 다만 발포 명령 책임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책임지고 5.18과 관련해 진정성있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렇게 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로 가는 길을 터주었다.
또한 옛날에는 '전두환은 살인자'라고 욕했지만 내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을 듣고는 여기저기서 '전두환이 쏘라는 소리는 안했네', '정호용이 쏘라는 소리는 안했네'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제 그 공은 광주로 넘어갔다. 그리고 내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광주에 사과해서 동서화합, 국민통합에 앞장서라고 계속 푸시하고(압력넣고) 있지 않나.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좋다. 대통령이 바라는 일을 내가 대신 하고 있고, 이것이 국민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일이니까.
국민들도 이제 싸우는 것 싫어한다. 화해해야 한다는 국민이 53%일 정도로 국민 정서가 좋아졌다. 내가 2011년부터 해온 일을 계기로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과할 길을 열어줬다.중간에 완충지대, 중재자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충분히 역할했다. 쌍방이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재자는 꼭 필요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해서는 화해가 잘 될 수 없다."
"전두환, 사과할 마음 확고... 이순자 여사는 더 확고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인이 사과할 마음이 확고하다. 이순자 여사는 더 확고하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포괄적 책임은 확실하게 지겠다는 생각인가? "발포 명령 책임까지 포함해 다 사과하겠다는 것이다. 사과하겠다는 것도 확실하고 광주를 방문하겠다는 것도 확실하다. 다면 몇 가지(앞서 언급한 4가지) 염려되는 것이 있을 뿐이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건강은 어떤가?"아주 나쁘다. 4월 27일 방문 때 '이학봉이 죽었지?'라는 소리를 세 번이나 했다. 이학봉이 죽었다는 것은 기억하는데 3시간 동안 대화하는 도중에 '이학봉이 죽었지?'라며 세 번이나 물어보더라. 건강상태가 안좋다. 약간 치매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했더니 모두 '노령으로 기억력이 없어진 것'이라고 햇다. 하지만 나는 건강이 확 나빠질 수 있어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자포자기하는 것 같고, 우울증세도 있어 보였다."
- 이순자씨 건강은 어떤가? "생생하다. 대화도 이순자 여사가 주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거들기만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빠른 시일 안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과하겠다고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데 죽어버리면 그것을 할 수 없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우리 집에는 개미 두 마리가 있다'며 자기하고 이순자 여사를 '개미 두 마리'에 비유했다. '개미 두 마리밖에 없는데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힘 떨어지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는 것이고, 삶을 자포자기한 것 같았고, 진돗개 이야기를 할 때는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러니까 빨리 수습해서 내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과하도록 해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먼저 죽으면 광주와 화해할 수도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광주 5.18 기념식에 3년 연속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번 결심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5.18 문제를 풀어주면 우익단체들의 반발이 심할 것 아닌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도노선으로 갔다가 엄청 비난받지 않았나?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5.18 문제를 풀어줄 경우 자기가 더 많은 덤터기를 뒤집어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정도 선으로 가는 것이 이념논쟁이나 국민 정서에 맞다고 판단했다고 본다. 우익단체가 광주를 더 감싸줄 수 있는 운동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내가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우익단체들과 만나서 5.18과 관련한 이들의 의견을 순화하는 것이다."
- 박근혜-전두환과 전두환-광주 프로젝트을 시작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광주하고 통합해야 한다"라고 주문한 적이 있는데 박 대통령이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통합과는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여러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더 안가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문제, 5.18 화해문제도 풀어야 하고, 우익단체들 움직임이나 의견도 좀 순화시켜야 하지 않겠나? 그 두 가지를 내가 나서서 해야 하는데 나도 지쳐 버렸다."
-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선도적으로 풀 수도 있지 않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청 섭섭해 한다. '어떻게 전직 대통령에게 이럴 수 있나?' 나한테 한탄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도 안해주고 너무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섭섭해하기 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풀어야 할 일이 있다. 4월 27일 그것을 30분간 내가 얘기했다. 그것을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알아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풀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풀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국가기념곡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심지에 기념식 행사 때 제창하는 것이 아닌 합창하는 것으로 결정해서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이런 논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그것은 소탐대실이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우익단체 체면을 생각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해주지 않고 제창도 못하게 고집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내가 봐서는 광주 민심, 호남 민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동서화합의 길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소탐대실이고, 크게 잘못됐다.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광주문제도 풀고, 우익단체도 중재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데까지 신경쓸 만큼 여유롭지 못한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생각한다면 기념식도 참석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도 풀어야 했는데 그것을 풀지 못했다. 결국 국민통합은 수사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당연히 풀어야 하는데 못 풀었다. 내가 풀려고 했는데도 안됐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원을 통해 5.18 기념식을 동서화합, 국민대통합 선포식으로 해주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해서 광주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라고 건의했다. 그런 내 건의가 안받아들여지니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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