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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터에서 따뜻한 거의 죽기 직전인 아기새를 보았습니다.'


세 장의 사진과 한 문장으로 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학급 게시판에 한희가 작성한 새 글이었다. 깃털이 나지 않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어린 새 한 마리가 잔디밭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새를 발견한 장소는 한희네 횟집과 GS25 편의점 사이에 있는 공터였다. 
  
김ㅇ영 : 귀엽다 / 허걱!! 죽기 직전이라니 / 아기새가 불쌍해.
형ㅇ짱 : 아 불쌍해.


알림을 확인한 반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 평소 응답이 빠른 한희가 답이 없었다. 잠시 뒤 폰이 울렸다. 한희 댓글이 추가되어 있었다. 







최한희 : 좀 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지금 무덤을 양지바른 곳에 만들어 주는 중입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새를 살리려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고 한다. 주변에 어미가 있으면 둥지를 찾아 올려주려 했건만 손에 올려둔 지 5분이 되지 않아 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정성껏 무덤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궁금해하고 있으니 댓글로 상황을 알렸던 것이다.
  
김ㅇ희 부모님 : 한희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 다음엔 씩씩한 새로 태어나겠지.
조ㅇ열 : 와 진짜 불쌍하다.
민ㅇ이 : 징그럽기도 한데 불상하다.... 한희 착하다~.


한희가 땅을 파고 무덤에 덮어줄 나뭇잎을 마련하는 동안 댓글이 주룩주룩 달렸다. 채팅 기능도 없는 게시판에서 문자만으로 실시간 중계와 응원이 오갔다. 스마트폰을 쥐고 놓을 수가 없었다. 숙제 관련 게시물에는 무플로 대응하던 녀석들이 낯선 새의 죽음과 친구의 애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띵똥! 새 사진이 게시판에 등록되었다. 아기새의 무덤이었다. 흙무더기 위에 풀잎들이 이불처럼 덮여있었다. 고양이가 해코지할까 봐 봉지에 싸서 땅 속 깊이 묻었다고 했다. 11살 소녀의 손으로 흙을 파내고 봉지에 새를 넣는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나왔다. 선생인 내가 너무 감상적으로 대응하면 한희가 필요 이상으로 슬퍼질 듯하여 아기새가 좋은 친구를 만나 행복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다음 날 한희 손톱 밑이 까맸다. 비누로 빡빡 문지르고 비벼봐도 모래랑 흙이 잘 안 빠진다고 했다. 참으로 대견하여 잘 했다고 여러 번 칭찬하였다. 손톱 밑이 깨끗한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교실에 벌이 들어오면 사납다고 때려잡으려는 모습만 보여줬었다. 강낭콩 싹이 나다 말고 죽으면 모종삽으로 파냈다. 


작은 생명에 난폭한 언행을 일삼았던 모습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기새 사건을 접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하여 교실 TV에 게시판 화면을 띄워 설명해주었다. 쉬는 시간에 한희 옆으로 애들이 몰려들었다. 

"새가 어디에 있었어?"
"새 묻을 때 안 떨렸어?"


때로는 쉬는 시간에 축구 말고, 할리갈리 보드게임 말고, 이런 새이야기도 괜찮았다. 하루가 지나 토요일, 점심을 먹고 있는데 게시판 알림이 떴다. 또 무슨 일인고 들어가 보니 이번에는 가연이다.

한희에게 위치를 물어 알아낸 무덤에 가보니 바람 때문인지 무덤 위 나뭇잎들이 날아가고 없었나 보다. 가연이는 풀 뽑아서 고리 만들고 가운데 꽃을 심었다. 그 자리에 우리 반 아이 몇 명이 다녀갔다. 아무리 작아도 생명이다. 아무리 짧아도 삶이다.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억해주기. 이름 없는 공터에서 아기새를 추모하는 제자들의 가르침이 깊다. 









 

태그:#죽음, #추모,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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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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