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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서클'은 칼 폴라니가 청년 시절 대학의 후진성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비밀 모임의 이름입니다. 정치의 계절, 겨울입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무슨 기준으로 정치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됐습니다. 우리는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비딕 프로젝트'를 연재합니다. 거대한 고래, 모비딕을 쫓는 마음으로 후보자를 추적하는 '갈릴레이 서클'의 총선 기획입니다.... 기자주

나는 누구일까요?

이들이 없다면 선거를 치르지 못한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어둠이 가시지 않았을 때 집을 나와, 자정을 넘겨 돌아갈 뿐이다. 새벽부터 아침 이슬을 맞으며 시민들에게 명함을 돌리는 것도, 후보자의 공약과 정책을 읽고 또 읽으며 다듬는 것도 이들 몫이다. 선거사무소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커피를 내오기도 한다.

"오늘 OOO후보는 XX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유권자와의 소통도 돕는다. 웬만한 홍보대행사 부럽지 않은 능력으로 UCC와 카드뉴스를 만든다. 뉴스를 모니터링하며 후보자의 기사에 긍정적인 댓글을 달기도 한다. 젊은 세대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SNS 페이지를 관리하는 일도 맡는다. 후보자는 이들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은 누굴까. 정확한 이름은 없다. 때로는 자원봉사자 혹은 서포터즈로, 또는 아르바이트로 불린다. 무명(無名)은 서러움을 동반한다. 후보자에게 이들은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279개 조항 어디에도 이들의 이름과 역할, 지위를 찾아볼 수 없다. 공직선거법 상 후보자와 함께 선거를 도울 수 있는 인력은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및 장애인후보자ㆍ예비후보자의 활동을 보조하기 위한 활동보조인이다.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도 분명히 선거 캠프에서 일한다.

내 이름은 자원봉사, 사실은 스펙이죠

ㅅ씨(25)는 총괄 비서에 버금가던 자원봉사였다. 그는 지인의 추천으로 서울에 있는 새누리당 선거사무소에서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일했다. 캠프 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여의도와 사무소를 오가는 잔심부름부터 현수막 제작, 당원 관리, 선거전략계획서 작성까지 도맡았다. 일이 많을 때는 아침 7시에 나와 새벽이 넘어서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정치 입문을 희망하는 ㅅ씨는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경험이 진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일을 하며 유력 정치인, 타 후보 캠프 사람들, 보좌관 및 정책 비서 등 인적 네트워크와 자산이 될 고급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ㅅ씨는 "일을 하다가 혼이 나거나 욕설을 들을 땐 당장 짐을 싸서 나가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ㅅ씨는 여성으로서 배려를 전혀 받지 못했다. 그가 일하던 선거 캠프는 남녀가 한 공간에서 숙식을 해야만 했다. ㅅ씨는 "옷 갈아입을 곳도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함께 썼으며, 세탁이나 전화통화도 어려웠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샤워하고 난 직후였다. 동료라고는 하지만 남성들이 보고 있는 공간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나오는 것은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런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찜질방이나 모텔에서 잔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다음날 일정 합류가 늦어져 또 혼나기도 했다. ㅅ씨가 일을 시작하기 전, 선거사무소 측은 "개인 공간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선거 캠프의 자원봉사자는 '열정 페이'라 비판 받는 대기업 인턴보다 더 열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원봉사자들이 열악함을 견디며 선거 캠프에 몸담는 이유는 선거 캠프에서의 자원봉사가 경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 입문을 희망하는 ㄱ(24)씨는 "선거사무소에서 일하는 것은 정치입문자에게 큰 기회다"고 말했다. ㄱ씨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정당에서 일을 해왔다. 최근까지 근무했던 캠프에서 후보가 경선 탈락하는 바람에 캠프를 옮겼다.

그는 "평소에도 정치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면서 "선거는 4년마다 돌아오기 때문에 더 좋은 스펙이다"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ㅇ씨(26) 또한 정치 경험을 쌓기 위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후보를 홍보하는 일을 맡았다. 후보에 관한 기사를 보며 동향을 파악하고 후보의 지역구 활동 사항을 인터넷에 올린다. 그는 앞으로 20대 국회 보좌진에 지원할 예정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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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하종강 성공회대 주임교수는 지적했다. 선거사무소 자원봉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더 열려있다.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에는 생계 유지를 위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안의 경제력이 소득의 공백을 메꿔주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인의 꿈을 갖고 있더라도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로 이력을 쌓는 것이 어렵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직업 선택의 자유에 경제적인 배경이 개입하게 된다. 공정한 경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계약서가 다 뭐죠?"

3월 5일 모 카페에 올라온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 재구성
 3월 5일 모 카페에 올라온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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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취업준비생이 모여 있는 대형 인터넷 카페에는 다음과 같은 구인 공고 글이 올라왔다.

'선거사무소 아르바이트 구해요. 제가 일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게 됐어요. 일은 어렵지 않아요. 주시는 자료나 데이터를 엑셀에 기입하면 되는 사무직이에요. 근무 기간은 3월 중순부터 4월 12일까지 입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해요. 시급은 만 원이고 한 달 남짓 일하면 400만원 정도 벌어요. 아침, 점심은 모두 제공됩니다.'

이 아르바이트의 주당 근무시간은 법정 최대 근무시간인 52시간을 훌쩍 넘긴다. 또한 공고에서 명시된 것처럼 400만원 남짓 월급을 수령하려면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한다. 근로계약서 작성에 관한 사항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선거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당제로 임금을 받는다고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야근을 시키거나 계약과 다른 업무를 맡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1월말부터 2월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ㅇ씨(26).

2년 전 한 의원실의 인턴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ㅇ씨는 당시 함께 있던 비서관의 권유로 선거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다. 근무시간은 오전9시부터 오후 6시까지고 일당 5만원을 받았다. 근로계약서는 서면으로 작성하지 않았다. 구두 계약이었다. 그는 "휴게시간은 자율이었지만 회의를 한다며 야근을 자주 시켰다"고 말했다. ㅇ씨는 당혹스러웠지만 항의를 할 수는 없었다. 근로계약서나 임금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선거에서도 근로계약서는 아르바이트에겐 먼 나라 얘기였다. 2014년 지방선거 때 진보신당 후보의 캠프에서 일했던 ㄱ씨는 당시를 생각하며 "노동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참혹했다"고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캠프에서 선거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던 ㄱ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가 없으니 최저임금이나 법정 근로 시간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었다. ㄱ씨는 한 달에 약 140만 원을 받았다.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최저시급을 조금 넘긴 금액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근무한 시간을 따진다면 턱없이 부족한 노동의 대가였다. 그는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일주일 내내 일하거나 운이 좋다면 하루를 쉬었다. ㄱ씨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봉사라고 생각하고 견뎠다.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는 경력 자체가 정치계에서는 괜찮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장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정치 입문을 꿈꿨던 ㄱ씨는 이제 노무사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일하려면 높은 노동강도와 낮은 급여를 견뎌야 했다"며 "정작 내가 사회적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ㄱ씨는 말했다.

구멍 나고 꼬여있는 공직선거법 인력 규정이 원인

그렇다면 선거사무소가 자원봉사자와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허술한데다 복잡한 공직선거법에서 찾을 수 있다.

공직선거법 인력 관력 규정
 공직선거법 인력 관력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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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에는 '자원봉사자' 개념이 아예 없다. 공직선거법 62조에서는 선거사무관계자로 선거사무소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활동보조인(장애인 후보에 한정해 1인)만을 인정한다. 선거사무관계자에 대해서는 수당, 교통비, 식비 등이 지급되지만 동법 135조에서는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선거사무관계자가 아닌 경우 이는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돈이 많은 후보자가 더 많은 유급 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선거사무소의 자원봉사자는 이 항목에서 잠시 언급될 뿐이다.

'아르바이트'라는 개념도 없다. 채용 당시에는 아르바이트였지만,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된 경우도 있었다. 선거사무원의 근로계약과 관련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 법해석과는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은 업체에 홍보를 맡기는 것과 동일하다고 해석했다. 다만 "그 알바생이 그냥 대학생의 수준이 아니라 좀 더 전문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 수당을 줘도 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공직선거법 135조가 지키려 했던 선거의 공정성, 다시 말해 부익부빈익빈을 우려한 법의 제한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해석대로라면 돈이 많은 후보의 선거사무소는 선거사무원 수 제한에 걸리지 않고 많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수 있다. 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현실이다.

복잡한 공직선거법 인력 규정으로 인해 선거사무소 입장에서는 법망에 걸리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이 더 편리하게 됐다. 법적으로 제한된 선거사무관계자로 선거를 진행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홍보 대행 업체와 계약을 할 경우 선거홍보비로 지출한 금액에 대해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되레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사무관계자로 포함되지 않는 자원봉사자와 아르바이트를 채용하게 된다.

앞서 말한 ㅅ씨는 "솔직히 캠프 입장에서 우리는 소중한 자산이다"고 말했다. 다른 선거 캠프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선거는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되는 정치 이벤트다. 그럼에도 그들의 처우를 명시한 이렇다 할 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공직선거법이 이들의 이름을 담지 않는 이상, 그들은 쉽게 소모될 뿐이다.

취재/ 김인경(dlsrud4112) 김재환(kjhwan30) 박종화(gallilei8) 박혜연(hye0730) 조유라(joyura0101)
글/ 김재환 박종화 조유라

덧붙이는 글 | "후보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소수 정당의 후보가 단 한 명의 국민을 대변한다더라도 그 후보는 조명 받아야 합니다. '갈릴레이 서클'이 기획한 <모비딕 프로젝트>는 기성언론이 비추지 않은 구석 정치를 비춥니다. 우리의 발칙하고 빛나는 생각들을 기대해주세요.



태그:#총선,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노동, #모비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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