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를 다룬 한국 언론의 반응이 재밌다. 이 영화는 미국 유력지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이 1년이 넘는 탐사보도를 통해 가톨릭 사제의 은폐된 성추행을 심층 고발한 이야기를 다뤘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끈질긴 탐사취재, 민주적인 팀워크 등 바람직한 저널리즘에 대한 모범사례가 담긴 만큼 한국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통해 '기레기'라 불리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는 언론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영화 본 기자들, "저런 기자가 되고 싶다"
영화에 대한 한국 언론의 다양한 반응을 살펴보자. 먼저 '반성'형 언론이 있다. <한겨레>의 영화 리뷰 기사다. "언론의 값이 땅에 떨어진 나라에 살고 있기에, 우리들한테 저런 기자들과 언론사가 몇몇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 기자의 꿈을 갖고 있거나 현직 기자라면 더 깊게 공감할 것이다. 저런 기자가 되고 싶고, 저런 사람들과 함께 취재하고 싶고, 저런 신문사에서 일하고 싶어질 것이다." (안창현 기자, '은폐된 '가톨릭 성추행' 까발리다', 2월 24일)
한겨레가 펴내는 영화잡지 <씨네21> 역시 자신을 뼈아프게 돌아본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 한국의 기자들도 그러한가. 우리도 완전성을 추구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볼 만한 일을 해왔는가. 앞으로 도모할 생각이 있는가. 안 그렇다면, 망해가는 언론에 대해 누구를 타박할 것인가."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본 미국의 언론과 한국의 언론', 1044호)
<경향신문>은 외부 칼럼을 통해 현실을 지적한다. "'스포트라이트팀'은 독립된 존재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실천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 (한국 언론은) 주류의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 혁신의 시간에는 다른 습관과 기술, 다른 언어를 가진 변방과 외부인의 생각과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비슷하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미래를 찾는 눈, 아웃사이더가 필요하다', 3월 7일)
<뉴시스>는 "영화의 소재나 이야기보다 쾌적한 근무환경과, 야근 없고 권위 없고 마초 없고 알아서 일 잘하는 취재팀 분위기에 충격 받은 1인"이라고 쓴 어느 기자의 페이스북 글을 소개했다(신진아 기자,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기레기', 3월 3일).
<뉴스1>도 "표피적이고 의미없는 중계방송식 경쟁 보도가 아니라 정말 '옳은 편'에 서서 치우치지 않고 보도하려는 진정한 언론이 우리나라에 있을까 하는 좌절감도 느꼈다"는 기자 소감을 전했다(홍기삼 기자 등, ''기레기가 판친다'는 우리 언론에 던지는 '묵직한 울림'', 2월 27일)
<오마이뉴스> 역시 "(영화를 본) 다섯 명의 기자들은 너도나도 마치 고해성사 하듯 '난 기레기였다'고 고백했다"고 토로하고(이선필 기자, <스포트라이트>가 내린 '기레기'를 위한 처방전, 3월 11일), <미디어오늘>은 "현상의 외피를 건드리며 값싼 트래픽에 안주하는 이 땅의 기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고 썼다(사설 "관행과 방침, 시스템을 고발해야지", 3월 8일).
미국과 한국 언론, '너는 너'고 '나는 나'?
이렇게 영화를 보며 우리 현실을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기계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그친 언론도 있다. 일명 '먼 나라'형이다.
<조선일보>는 '1등 신문'답게 세련된 리뷰 기사에 더해 영화 속 실제 인물인 마틴 배런 전 <보스턴 글로브> 편집국장의 현지 기자회견 소식까지 전하는 정성을 보였다. "개인 문제가 아닌 구조 문제로 접근해야 진실 전체가 보이는 법"이라는 그의 근사한 말도 소개했다.
그러나 기사 어디에도 '한국 언론'이라는 낱말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우리 언론 현실을 되새김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탐사보도는 그저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설마 "그 정도는 우리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일까? (변희원 기자, '사제 얼굴 뒤에 숨은 악, 그 이면을 파헤치다', 2월 26일/이위재 기자, "사건 따라가 기사 캤을 뿐, 난 언론 영웅 아니다", 2월 25일)
<서울신문> 역시 영화를 덤덤하게 소개하는 리뷰 기사를 게재했고, <세계일보>는 영화의 '절제미'가 돋보인다는 영화평론가의 칼럼을 실었다. <한국일보>는 온라인판에만 리뷰 기사를 실었는데 역시 저널리즘에 대한 일반론만 있을 뿐 한국 언론에 대한 얘기는 없다.
너무 맹숭맹숭한 것 아니냐고? 뭘 그 정도 가지고. <동아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는 아예 영화를 제대로 소개하는 리뷰 기사조차 쓰지 않았다. 명색이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본상까지 받은 작품인데 이들 신문의 독자는 이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화인지 자세히 알기 어렵게 됐다. 지상파 방송 3사와 종편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조명하는 기사는 내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가하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애매'형 언론도 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뭘 깨달았다는 건지, 한국 언론이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독해하기 어려운 기사들이다.
가령 <중앙일보>의 한 칼럼은 이렇게 쓰고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딱히 특별하진 않았다. '저건 우리도 하는데…' 하는 모습이 여럿이었다. 전화기 붙잡고 공무원 채근하는 것도, 무작정 기다려(전문용어로는 '뻗치기') 한 마디 들으려 하는 것도 (...) 도대체 한국과 뭐가 다르다는 거지. 우리도 저들만큼 발품 팔고, 피해자 케이스 모으고, 자료 꼼꼼히 비교한단 말이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언론의 귀차니즘', 3월 9일)
한국 언론이 과연 영화 속 기자들처럼 한 가지 사안에 대해 1년 이상 매달려 끈질기게 취재하는지, 정권이나 국정원 같은 거대 권력 기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지, 거대한 조직보다 피해자와 약자의 얘기에 더 귀 기울이는지 묻고 싶지만 일단 참기로 하자.
칼럼에는 나름대로 반전이 있으니. 글쓴이는 결국 "아직 부족해. 개인이 아니라 구조야"라는 대사에 한 방 맞은 듯 했다며, 한국 언론의 위기는 "취재 덜 하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영화와 한국 언론이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한국 언론이 '귀차니즘'에 빠져있다고 얘기하니 적잖이 혼란스럽지만 막판에 성찰의 '기미'가 보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는 다른 명대사들도 많으니 그들과 우리와의 수많은 '다른 점'을 좀 더 많이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합뉴스> 기사도 꽤 흥미롭다. 기자는 이 영화가 "가톨릭 교회라는 지역사회 거대 권력의 유·무형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언론의 정도를 지켰는지를 사실감 있게 그린다"고 평해놓고 다음의 의미심장한 문장을 덧붙인다.
"단, 우리나라 언론 현실과 비교해 '극적'이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권력의 비리를 취재하는 데 겪는 '고난'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의미다. 예컨대 편집국장이 사장을 만나 이런 취재를 하겠다고 말하자 사장은 '우리 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 걸리지만 알겠다'고 대번 승낙한다. 또 스포트라이트팀이 전방위적으로 취재에 들어가는데도 교회 측의 방해공작은 생각보다 거세지가 않다. 우리나라 영화였으면 돈으로 매수하거나('열정같은소리하네') 취재 기자의 목숨을 위협하는('모비딕') 장면이 나왔을 법하다." (구정모 기자, 언론의 순기능은 이런 것… '스포트라이트', 2월 18일)
여러 번 읽어도 정말 영화에 '심각한 고난'이 없어서 이야기 구조상 아쉬움이 있다는 건지, 아니면 한국이 처한 상황을 '돌려 까기' 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읽고 싶은 대로 읽자면, 정의를 위해 일어서면 비상식적 일을 당하는 우리 현실을 '블랙 코미디' 형식을 빌려 표현한 것이라 믿고 싶다.
언론의 이상? 우리도 현실로 만들어야
개인적으로 <스포트라이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보스턴 글로브> 부국장이 사건에 대한 탐사취재가 "얼마나 오래 걸리지?"라고 물었을 때, 스포트라이트팀장이 "아주 오래"라고 답하고 경쾌하게 사무실을 나가는 장면이다. 이 짧은 대화를 통해 그들과 우리의 '결정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장기 취재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독립성, 서로 간의 존중과 신뢰, 길고 멀리 보는 안목, 그리고 진실을 향한 열정과 인내.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는 한국 언론이 그저 '남일 보듯'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 언론이 전혀 구현하지도 않고 구현할 수도 없는 이상적인 저널리즘의 전형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먼 나라 얘기라고 치부하는 순간, 우리 사회가 원하는 '진짜 저널리즘' 역시 정말로 먼 나라 얘기가 된다.
권력과 자본에 종속되고, 출입처 자료 받아 쓰고, 속보와 권위에 빠져 획일화 된 한국 언론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면밀하게 직시하고 끊임없이 스스로 되돌아봐야한다. 성찰할 줄 아는 언론에 희망이 있다.
참고로 이 영화의 네이버 영화평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한줄평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왜 이런 영화를 못 만들까? 이런 언론인들이 없으니깐!" (아이디 :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