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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9년 7월 6일 전남 황전면에서 일어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어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지목했다. 그 후 부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각각 무기징역과 실형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독자 대다수와 인연이 없는 이 부녀의 인생살이를 이 연재물에 담았다... -기자 말



(18화 : 지능범이 변호사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편에서 이어집니다)



강남석 검사가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부임한 것은 2009년 2월 9일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순천경찰서, 여수경찰서, 광양경찰서, 고흥경찰서 등을 지휘한다.



강남석 검사는 2009년 5월경 고흥경찰서 유치장 감찰을 하고 있었다. 경찰을 상대로 검찰이 휘두를 수 있는 권한 중에는 수사 지휘권과 더불어 유치장 감찰권이 있다. 경찰서를 방문한 검사는 경찰 범죄사건 등재부, 미제 사건철 등을 살펴봤다.



강 검사는 감찰 중에 2001년 벌어진 미제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있는데도 당시 경찰이 해결하지 못했다. 사건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해결 사건에 관심 보였다는 검사




 
전라도 농촌마을
 전라도 농촌마을
ⓒ 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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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14일경 전남 고흥군에 있는 한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65세 할머니가 집 대나무밭에서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할머니는 예리한 물건으로 몇 차례 찔린 상태였다. 사건 현장에는 담배꽁초와 우산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담배꽁초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태용(가명)이 피워서 버린 것이었고 우산 주인은 박용근(가명)이었다.



경찰은 피해자 행적을 추적했다. 1월 9일 오후 8시경 할머니는 자기 집에서 김태용, 박용근과 술을 마시고 놀았다. 할머니 집에서 나온 김태용과 박용근은 김철준(가명)이 운전하는 렌터카를 타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김철준은 먼저 김태용을 데려다주고 나서 박용근을 데려다줬다. 김태용과 박용근 모두 알리바이가 확보됐다. 렌터카를 운전한 김철준이 증인이었다.



경찰은 당시 할머니를 찌를 때 사용한 칼을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자백을 받으면 직접증거인 칼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백을 이끌어내지도 못했고 칼도 찾지 못했다.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강남석 검사는 경찰 수사기록을 모조리 가져왔다. 검찰은 먼저 용의자 범죄경력을 조회했다. 박용근 기록에 전과가 있었다. 검찰은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있는 당시 사건기록을 받았다. 판결문 내용을 보니 할머니를 죽인 수법과 같았다. 강남석 검사는 판결문을 제시하며 박용근을 추궁했고 결국 자백을 받았다. 렌터카를 운전했던 김철준도 검찰 조사에서 본인이 착각한 채 진술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박용근은 렌터카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에 내렸다고 한다.



수사를 맡았던 검찰 관계자는 경찰 수사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당시 경찰 수사기록에는 판결문 같은 자료가 편철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가 쓴 수기를 보면 검찰은 사건 조사 전에 고흥경찰서 관계자를 불러 범인을 검거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경찰은 다른 혐의점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경찰은 왜 이런 중요한 단서를 놓쳤을까. 2001년과 2009년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을 수사한 최관호(가명) 형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건을 기록한 검찰 수기를 읽은 최관호 형사는 강남석 검사를 먼저 칭찬했다. 자신은 그런 배짱 있는 검사와 일하는 게 좋았다고 했다. 해마다 검사가 유치장 감찰을 나올 때마다 형사는 미제사건을 설명했다. 하지만, 사건에 관심을 보인 검사는 드물었다고 한다. '한 번 해보자'며 의욕을 보인 검사는 강남석뿐이었다.



형사 역시 검찰이 판결문을 입수한 점을 칭찬했다. 분명히 경찰이 놓친 증거였다. 경찰도 2001년 당시 박용근 범죄경력을 조회했다. 하지만, 전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검찰과 경찰이 쓰는 조회 시스템이 달랐기 때문이다. 최관호 형사는 특진이 걸린 사건을 조사하면서 전과를 알았다면 경찰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경찰이 풀지 못한 강력사건을 검찰이 해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검찰이 7월 30일 고흥 '살인의 추억' 사건 용의자를 구속하고 20일이 안 된 8월 18일, 순천경찰서는 백희정에 대한 강간과 강제추행 사건을 순천지청에 넘긴다.




 
경찰이 사건 송치
 경찰이 사건 송치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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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석 검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보였다.


 
사건에 관심 보이는 검사
 사건에 관심 보이는 검사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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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검찰 관계자가 쓴 기록을 보면 사건 서류를 받은 나흘째인 8월 21일 오전, 강남석 검사는 사건 해결 의지를 살짝 드러낸 것으로 돼 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검찰은 백씨 부녀에게 자백을 받아냈다.



현장 검증에서 소극적이었다는 백희정




 
사건의 흐름
 사건의 흐름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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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자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검찰 기자회견장에서 자백 말고 물증이 있는지 물었다. 그 기자는 2009년 9월 2일 검찰이 지휘한 범행 현장검증을 보면서 2009년 2월 1일 경기경찰청이 지휘한 강호순 사건 현장검증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강호순 사건 현장검증에서는 경찰이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강호순에게 재현을 맡겼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현장검증 분위기는 달랐다. 백희정은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찰이 먼저 물으면 그저 "네"라고 답할 뿐이었다. 언론은 검찰이 사건을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몰아붙였다.




 
검찰 현장검증 남도방송 캡쳐
 검찰 현장검증 남도방송 캡쳐
ⓒ 남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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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더 나빠져만 갔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판 진행 중에 고흥 '살인의 추억' 피고인 박용근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2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검찰은 당황했다. 박용근은 재판에서도 범행을 순순하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용근이 자백했으나 내용이 앞뒤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지고 객관적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체 재판부는 어떤 모순을 찾아낸 것일까? 박용근은 당시 범행도구와 옷을 시신 근처에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8년 전 수사기록에는 범행도구는 없었고 옷도 1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으로 돼 있었다. 고흥 '살인의 추억' 사건 용의자가 무죄를 선고받자 언론은 재판 결과를 보도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1심 재판도 끝나는 시점이었다.



강남석 검사는 1심 재판부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09년 12월 11일 검찰은 세 가지 자료를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한 가지가 7월 2일 백경환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CCTV 자료였다. 압수한 화면 4800장 가운데 백경환이 운전한 차량번호가 있는지 확인 중이라며 1월 말까지 제출할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두 사건의 항소심 맡았던 검찰




 
차량 이동 동선
 차량 이동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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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백경환이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썼다는 증거가 될 만한 자료도 제출했다. 오이 농사를 하는 동네 사람 4명이 청산가리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진술이었다.  


 
청산가리를 사용한 마을 사람들
 청산가리를 사용한 마을 사람들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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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8일 1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이 검찰에 한 자백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강남석 검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장을 냈다. 고흥 '살인의 추억' 사건도 이미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였다.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은 검찰 항소로 광주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열렸다. 강남석 검사는 2010년 광주지검으로 발령이 났다. 광주지검에 있던 강남석 검사는 항소심 재판에서 출석하여 두 사건 모두 유죄를 입증해야 했다.



그리고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에서 최선을 다해 유죄 판결을 받아낸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검찰 자백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강남석 검사는 재판부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먼저,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부터 살펴보자.



고흥 사건을 처음부터 수사했던 최관호 형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어느 날 강남석 검사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강남석 검사는 형사에게 검찰 증인으로 나와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항소심 법정에서 최관호 형사는 칠판에 써가면서 4시간 넘게 설명했다. 사건 발생부터 사건 송치까지 모든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항소심 재판에서 유죄로 확정,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2010년 9월 3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왜 검사는 '고흥 살인의 추억' 사건 1심 재판에서 변호인 측이 주장하는 진술에서 드러난 모순점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을까? 최관호 형사 의견은 이렇다.



2001년 범행 현장은 2009년 이미 재개발로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2009년에야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검사가 현장을 챙기는 게 가능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서 검찰은 어느 정도 현장을 챙겼을까.



8월 18일 백희정에 대한 강간과 강제추행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고 20일 백희정에 대한 첫 조사가 있었다.


당시 경찰은 백씨 부녀가 아닌 다른 용의자도 수사했다고 한다. 검찰도 당시 경찰이 다른 용의자를 수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송순대국밥집 주인이 7월 5일경 백경환씨 부부가 아닌, 다른 손님 부부에게 작은 막걸리를 판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대송 순대국밥집 주인 기억
 대송 순대국밥집 주인 기억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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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관계자 수기를 보면 검찰은 8월 21일 점심을 먹고 바로 대송순대국밥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수기 내용은 실제 식당 주인 기억과도 같았다.



(제20화 - 나흘 간의 기억 최종화 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나흘간의 기억, #서형 작가 ,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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