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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월 된 아이를 기르다 보니'돌보는' 것과 '돕는' 것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를 돌보는 것에 대해 아내에게만 맡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돌봄'이 아닌 아이를 보는 아내를 '돕는' 것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첫 번째 시험은 새벽에 깨어나 우는 아이 달래기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실패. 우렁차게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양심의 손을 얹고 얘기한다면…, 듣고도 깨지 않았던 적도 있다. 마치 울리는 알람을 무의식적으로 끄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그나마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 그렇게라도 가끔 아이를 보고난 후 아내에게 종종했던 말이 있다.

"아이는 딱 10분만 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정말 10분만 지나가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피곤이 몰려왔다. 주말에 일 보러 나간 아내 대신 아이를 볼 땐 아내가 나가기 전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아이와 난 오늘 하루 잘 버틸 수 있을까?' 단둘이 있으면 느리게 흘러가던 시계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혹시 아이가 잠을 자서 나도 잠시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여보, 휴가 내 쉬면서 애 보면 되지 않을까?"

잘자는게 효도다
▲ 아기재우기 잘자는게 효도다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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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돌을 맞을 때쯤엔 반복 학습의 효과인지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차츰 늘어나 한나절 정도는 아내의 도움 없이 거뜬히 아이를 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그 즈음 아내는 다시 직업 전선에 뛰어 들게 됐다.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다. 육아에 대해 자신감도 있었다.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보내고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한다. 아침의 작은 전투를 치루고 집 앞의 일터로 향한다. 퇴근하면서 다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아온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돌보다가 잠재우기 미션을 마지막으로 하루 육아는 마무리 된다.

어떨 땐 아내의 직장거리가 딱 30분만 가까웠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철저히 이기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비하면 지금은 그나마 몸의 적응과 나름의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다. 서로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아내에게만 육아를 맡겨 놓은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을 떠넘긴 것인지 뒤 늦은 후회를 해본다. 이게 다 업보려니.

엄마보다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이도 이제는 아빠를 더 많이 찾는다. 약간의 귀찮음이 없진 않지만, 사실 때로는 귀찮을 때도 많다. 하필 새벽에 자다 깰 때면 아빠부터 찾는 건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육아관련해서 초기에 비해 큰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설 명절 때 작은 다툼이 있었다. 아이는 설전부터 폐렴을 앓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나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명절을 쇠러 부모님 댁에 가자마자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명절 기간 내내 밤낮없이, 부지런히 해열제를 먹였다. 연휴가 연휴라기보다 육아 가중의 시간이었다. 결국 연휴 마지막 날엔 응급실을 방문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병원의 입원 권유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조금 쉬게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럼 애는 누가 봐?"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더 날카로웠다.

"당신 몸도 안 좋고 휴가 내 쉬면서 애를 보면 되지 않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쉬면서 애를 보라니. 아내는 아이에게 감기를 옮았던 터였다. 당연히 표정은 굳어졌다.

"여보는? 휴가 낼 수 없어?"

내 일터는 아내의 일터보다 휴가를 내는 것이 자유로웠지만 연휴를 마친 후라 이런 저런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어렵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만큼은 철저히 '돕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도 그렇고 해서 아내가 휴가를 내기로 했다. 하필이면 연휴가 끝난 그 주말마저 나는 온전히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명절 이후 쉬는 시간 없이 다시 아픈 아이를 혼자서 돌봐야 아내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돌보는' 사람과 '돕는' 사람의 경계

열이나서 한겨울 알몸독서중
▲ 범석군 열이나서 한겨울 알몸독서중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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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내의 기분은 풀리지 않은 상태로 지속됐다. 잠자리에 들면서 기분을 파악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혹시 휴가 내라고 해서 기분이 안 좋은 거야? 난 사실 큰 생각 없이 당신이 쉬면서 애를 보면 어떨까 해서 그랬던 건데…. 나는 휴가를 낼 수 없고."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른다.

"알아, 그런데 너무 일방적으로 나한테 휴가 내고 애 보라고 했던 것 같아. 당신이 휴가를 내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그동안 애보는 걸 많이 한 것도 알지만…. 이번엔 너무 갑작스러웠고 강압적이었어. 그리고 이번엔 명절에 신경 쓸 것도 많았고, 나도 몸도 안 좋았고, 아무튼 복합적으로 안 좋았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말이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방어해봤지만 이미 나 스스로도 알고 있는 잘못이다. 내심 속으론 지난 8개월 동안 아이를 '돌봤던' 것에 대한 지위를 이용하려 했다. 결국 아내에겐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사과를 했다고 해서 아내의 기분이 풀어지진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을 계기로 깨달았다. 내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아내에게 넘기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기저귀를 사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며, 아이의 키와 몸무게, 신발과 옷 사이즈를 모른다. 여전히 아이를 '돌보는' 사람과 '돕는' 사람의 경계에 서 있다.

한복입고..
▲ 범석군 한복입고..
ⓒ 홍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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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야기] 아내의 반응은...

"이번에 당신과 있었던 일을 글로 썼는데 뭐 잘못 이야기 했는지 한번 봐줄래. 거짓된 표현이라든지."

아내는 글을 읽어 보더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사람들이 칭찬해줬겠네. 좋은 아빠라고. 칫."
"응. 그렇긴 했어. 그런데 그런 칭찬이 부담스럽긴 해."

겸연쩍게 웃어넘겼다. 가끔 육아와 관련된 글을 써 가면 글쓰기 회원들은 요즘에 이런 아빠가 어디 있냐며 칭찬일색이었다. 사실 저녁에 있는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 모임 때도 아내가 퇴근해서 올때가지 아이를 데리고 있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를 보는 아빠에 대해 좋은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칭찬이 싫진 않지만 '돕는' 아빠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때론 '돌보는' 아내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런데 복잡했던 내 기분이 충분이 방연된 것 같지 않아. 그땐 정말 복합적이었거든."

그랬다. 아내는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몰려온다는 '명절의 시댁'에서 아픈 아이와 두통이 찾아와 몸져 누워있는 남편의 병수발을 들었다.

글을 읽은 후 아내는 잠자리에서 휴대전화로 아기 기저귀며 도시락통 등을 주문하고 있었다.

"여보, 다음엔 나 혼자서 애 옷 사러 한 번 가볼까?"

돌보는 자와 돕는 자의 경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겠다는 실천을 결의를 밝히며 작은 소동을 일단락지었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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