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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폼페이 : 최후의 날>
 영화 <폼페이 : 최후의 날>
ⓒ 롯데엔터테인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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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폼페이:최후의 날>. 성당의 종소리는 끊임없이 울립니다. 집어삼킬 것 같은 화산불꽃이 밀려옵니다. 남자 주인공 마일로는 여자 주인공 카시아에게 혼자서 말을 타고 빨리 도망치라고 합니다. 카시아는 고개를 젓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도망치면서 보내긴 싫어!"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밀려드는 화산을 보는 두 남녀. 마일로는 애절한 표정으로 카시아를 끌어안습니다.

"보지 마! 나를 봐. 오직 나만."

두 주인공은 마지막 뜨거운 키스를 나눕니다. 그리고 한순간! 그들은 부둥켜안은 채 화산재에 묻히고 맙니다. 영화는 오랜 여운을 남기고 끝을 맺습니다.

다시 태어난 도시, 폼페이

피렌체에서 4시간 30분을 이동하여 로마로 왔습니다. 다음 날 이탈리아 여행 7일째. 우리는 노예 검투사 마일로와 영주의 딸 카시아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 <폼페이:최후의 날>의 배경이 된 폼페이를 만나러 갑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그러니까 20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에 자리 잡은 베수비오 화산이 대폭발을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고대도시 폼페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영화는 고대 로마의 문학가이자 행정관인 소 플리니우스가 기록한 폼페이 최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어둠 속에서 여인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아기들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들은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어떤 이들은 차라리 죽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끝났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주도(州都)인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로마제국에 편입된 폼페이는 나폴리만의 빼어난 경관을 지닌 휴양도시였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하기 전까지, 인구 2만5000명의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운명의 그날.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상상이나 했을까요? 신의 울음소리와 같은 성난 베수비오 산이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한 지 18시간 만에 화려한 문명도시를 집어삼켰습니다. 무서운 불기둥이 날아오고 화산재에 덮이는 순간, 공포에 떨었을 그들의 두려움은 어떠했을까? 고대도시는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아름답고 호화로웠던 땅은 저주의 불모지가 되었습니다.

1748년, 그런 땅 속에 묻힌 폼페이가 다시 태어났습니다. 폼페이의 부활은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지하 4m 아래 봉인되었던 폼페이는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발견된 고대도시는 우리 앞에 그 찬란한 역사를 다시 드러낸 것입니다.

그 오래된 시간 속의 폼페이

나폴리만 해안을 따라 얼마나 갔을까? 달리던 버스는 폼페이 역사를 바꾼 베수비오 산 밑에 다다릅니다. 산은 빗속에 자기의 모습을 가리고, 보여주지 않습니다.

높이 1281m의 베수비오 산은 1000여 년 동안 폭발한 적이 없었답니다. 광물질을 뿜어낸 산은 인근 주변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 어머니 품 같은 산이었습니다. 그 당시 재앙을 불러올지 그 누가 예측이나 하였겠습니까?

한 도시의 역동적인 삶을 간직한 고대 폼페이는 거의 타원형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격자형 바둑판처럼 길이 나 있습니다. 오늘날 신도시처럼 계획도시로 건설되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엊그제 일이 아닌 2000여 년 전에 말입니다.

폼페이 포장길 도로. 인도와 마차가 다니는 길이 구분되어 있고, 마차길에는 중간 중간 징검다리가 있다.
 폼페이 포장길 도로. 인도와 마차가 다니는 길이 구분되어 있고, 마차길에는 중간 중간 징검다리가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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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폼페이 유적지에 들어섰습니다. 로마시대 도로가 사람들의 발길을 편안하게 합니다. 도로는 마차가 다니는 길로 납작한 판돌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도로 양쪽에는 인도가 도로보다 턱이 높게 설치되었습니다.

도로를 가로질러 놓인 돌이 중간 중간 있습니다. 징검다리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횡단보도와 같습니다. 도로에 물이 고이면 사람들이 편히 건너다닐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도로가 깊게 패인 자국은 마차바퀴에 의해 생긴 흔적이랍니다. 그 옛날에 이와 같은 도로가 건설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도시 폼페이 포럼광장이 나타납니다. 폼페이의 심장부인 포럼광장은 고대 로마의 도시문명에서 볼 수 있는 신전과 공공건축물로 둘러싸인 시민을 위한 광장인 셈입니다.

폼페이 포럼광장이다. 종교, 정치, 경제, 행정시설이 모여 있다.
 폼페이 포럼광장이다. 종교, 정치, 경제, 행정시설이 모여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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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상당히 넓습니다. 광장 전면에는 주신(主神)이라고 할 수 있는 카피톨린신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쪽 편은 상업기능의 건축물들이, 서쪽 편은 아폴로신전과 집회나 재판을 위한 공공건물인 바실리카건물, 그리고 남쪽은 원로원을 비롯한 각종 행정기관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 광장은 종교, 정치, 경제, 행정시설 등이 함께 모여 있는 폼페이 중심 지역인 것입니다. 폼페이 시민들은 이곳에서 시장도 보고, 모든 일을 공유하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정면 신전을 바라보면 그 운명의 베수비오 산이 뒤에 버티고 있습니다. 궂은 날씨에 아주 희미하게 보입니다.

폼페이 유적지에 나온 유물들이다.
 폼페이 유적지에 나온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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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쪽에 유물들을 전시한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물 중 일부를 전시한 모양입니다. 멸망의 순간,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 같은 사람들의 형상도 보입니다.

아내가 흰색 석고상의 유물을 보고 호들갑스럽게 말합니다.

"여보, 저기 사람들 폼페이 화석인가 봐요!"
"그건 화석이 아니고 석고를 뜬 형상이라고 하던데."

폼페이 유적 발굴시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사람의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화산재에 묻힌 사람이나 동물의 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간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공간에 석고를 부었더니 놀랍게도 유기체의 모습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졸지에 최후를 맞았을 사람들의 석고 형상을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고대 폼페이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폼페이 거리에 설치된 수도시설. 그옛날 공공수도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폼페이 거리에 설치된 수도시설. 그옛날 공공수도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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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폼페이 유적지를 따라 걷습니다. 2000년의 시간 속으로 빠져듭니다. 과거 폼페이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많은 흔적들이 보입니다.

옛날의 폼페이 거리에 공공수도가 설치되었다는 흔적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길가에 설치된 수도시설은 그 옛날의 것이라 합니다. 폼페이에는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도교(橋)를 설치하고, 물을 보관하는 탱크까지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도시문명의 높은 수준을 보는 것 같습니다.

폼페이 목욕탕 내부는 채광시설이 되어 있고, 천장에는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리게 했다.
 폼페이 목욕탕 내부는 채광시설이 되어 있고, 천장에는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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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목욕탕의 대리석 분수대이다. 지금도 사용이 가능해보인다.
 폼페이 목욕탕의 대리석 분수대이다. 지금도 사용이 가능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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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한 수도시설은 공중목욕탕 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목욕탕에 채광 시설이 있고, 천장에 맺힌 물이 흘려 내리게 한 발상까지, 고대인들의 지혜가 문명사회의 오늘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대리석 분수와 물을 담아놓은 욕조는 지금도 사용이 가능해보입니다.

밀가루를 빻는 커다란 맷돌. 구멍에 나무막대를 끼워 많은 양을 빻았을 것 같다.
 밀가루를 빻는 커다란 맷돌. 구멍에 나무막대를 끼워 많은 양을 빻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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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화덕이다. 상점에서 빵을 구워 파는 가게가 아닌가 싶다.
 빵을 굽는 화덕이다. 상점에서 빵을 구워 파는 가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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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골목길에 식당이나 상가로 보이는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밀가루를 빻았을 것 같은 커다란 맷돌과 빵을 구웠을 화덕이 참 인상적입니다. 폼페인들의 일상을 하나하나 엿볼 수 있어 빗속에서도 흥미를 더합니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이 또 있습니다. 흔히 홍등가라고 불리는 루파나르 유곽(遊廓)이 그것입니다. 가이드가 한참을 가다가 남근상이 조각된 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합니다.

폼페이에서 본  남근상이다. 예전 폼페이에서도 쾌락과 향락의 세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폼페이에서 본 남근상이다. 예전 폼페이에서도 쾌락과 향락의 세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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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19금(禁) 골목입니다. 이곳은 상당히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된 벽화가 있습니다. 당시 폼페이에서도 쾌락과 향락의 세계가 펼쳐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거죠."

성(性)에 관한 한 인류의 본능적인 측면은 시대를 떠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 유곽에서 보여주는 에로틱한 벽화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신비의 별장'이라는 주택에 있는 벽화.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신비의 별장'이라는 주택에 있는 벽화.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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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별장'이라 이름이 붙여진 주택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고급스럽습니다. 딸린 정원이며 내부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모자이크 바닥과 프레스코화 벽화가 완벽하게 남아있습니다. 벽화는 젖은 석회벽에 수채물감으로 그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진홍색 바탕에 실물 크기의 인물을 대담하게 표현한 솜씨가 놀랍습니다.

옛 로마제국 폼페이의 숨은 역사를 더듬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수많은 상상과 과거로의 여행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비오는 날, 차창 밖으로 희미한 베수비오산이 보였다.
 비오는 날, 차창 밖으로 희미한 베수비오산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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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오르자 좀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베수비오 산이 희미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옛날 무서운 화를 내고,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화산은 말이 없습니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폼페이와 안녕을 고합니다.

'베수비오 산이여! 영화 속 마일로와 카시아의 못다 이룬 사랑, 그들의 애절함과 영혼을 아는가!'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이탈리아, #폼페이, #부활의 도시, #베수비오산, #폼페이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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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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