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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설 읽기를 좋아합니다. 소설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김과 동시에 쏙  빠져나오는 일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그중 제가 특히 좋아하는 소설들은 쏙 빠져나온 저를 다시 힘차게 끌어당겨 한참을 더 그 비현실의 세계에 살게 하는 소설들입니다. 발은 현실 세계를 걷고 있지만, 머리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멋진 경험을 소설들이 제게 선물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좋아하게 된 소설들이 많고, 작가들도 많습니다. 어떤 소설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 머릿속에 하나의 세계를 강력히 구축하고 있어 저는 언제든 그 세계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올해에도 이렇듯 신나는 경험을 선물해줄 소설을 열심히 읽어볼 생각입니다. 특히 그간 소홀했던 한국 소설을요.

올해 들어 두 번째 읽은 한국 소설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이 책은 2013년에 나왔는데요. 그때부터 한번 읽어야지, 하다가 이번에 읽게 됐습니다. 뭔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사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긴 합니다. 그런데 책은 생각보다 꽤 쉽게 읽혔어요. 이렇듯 무거운 주제를 품고 있는 책이, 이렇듯 쉽게 읽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책이 왜 이렇게 쉽게 읽히는가 궁금했는데 그 답을 '작가의 말'에서 찾은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김영하는 말합니다. "이번 소설은 유난히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하루에 한두 문장씩밖에는 쓰지 못한 날이 많았다." 역시, 작가의 고통이 컸기 때문일까요. 그만큼 저는 더 쉽게 작가의 글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하 소설가의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1996년에  출간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몇 년 전에 읽었고, 이 책을 이번에 읽은 것이지요. 이 두 소설 사이엔 17년의 시간이 있고, 또 그 17년이란 시간 사이엔 작가의 소설들이 수북이 쌓여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소설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읽은 이 두 소설은 우연히도 같은 이야기까진 아니더라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 소설의 주인공 모두 죽음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책 표지
 책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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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주인공은 누군가의 자살을 보조해주는 일로 돈을 법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이 편히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지요. 반면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은 죽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입니다. 연쇄살인범이지요. 죽음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같지만,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둘 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연쇄살인범 김병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치심과 죄책감: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남부끄럽다는 것.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부끄러움은 심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죽이게 된 사람도 있다 - 나 같은 인간이 더 위험하지.'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김병수는 사실 이제는 더는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25년 전에, 아니 26년 전에, 담배를 끊듯 살인을 딱 끊었지요. 김병수가 사람을 죽였던 건 살인의 충동 때문이라던가, 변태성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쾌감 때문이었습니다. 쾌감을 느끼고 싶어 열여섯 살부터 마흔다섯 살까지, 30년간 열심히 사람을 죽였지요.

그러다 하루아침에 더는 살인을 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에 사람을 죽이던 날 크게 실망을 한 때문입니다. 더는 쾌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거든요. 이후 평범한 삶을 살게 되지요. 살인 대신 볼링을 치면서요. 마흔다섯 이후의 삶에는 딸도 함께였습니다. 딸 은희는 마지막 피해자의 딸입니다. 자기가 죽인 여자의 딸을 입양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일흔이 된 김병수입니다. 그런데 김병수가 점점 기억을 잃어갑니다. 알츠하이머란 진단이 내려졌어요.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을 잃게 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김병수는 매일을 녹음합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을 메모로 남겨놓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필 이런 때에, 동네에 연쇄살인범이 출몰합니다. 이미 피해를 본 여자가 셋이라고 해요. 김병수는 딸 은희가 걱정입니다. 은희에게 주의를 주며 조심하라 경고를 해보지만, 걱정은 커지기만 합니다.

자꾸만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김병수는 살인범이 누구인지 찾아냅니다. 그런데 그 살인범도 김병수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살인범이 은희 곁을 맴돕니다. 그런데 은희는 그것도 모르고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김병수는 딸 은희를 보호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김병수는 딸을 위해 살인범을 죽이기로 결심하죠. 죽기 전, 마지막 살인이 될 겁니다.

악보다 더 무서운 건 시간

소설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그리고 독자는 자연스레 김병수의 마지막 살인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지요. 젊은 연쇄살인범과 노쇠했지만 여전히 노련한 천재 연쇄살인범과의 충돌. 저는 이 충돌이 책의 대미를 짜릿하게 장식해 줄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책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그리고 김병수는 이렇게 말을 하지요.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악은 운이 좋으면 피할 수 있지만, 시간은 피할 수 없다고 김병수는 말합니다. 시간이 동반하는 건, 망각. 그리고 이러한 망각 위에 세워진 모든 생각들은 망상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살인을 이야기하던 소설은, 이제 망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독자는 헷갈립니다. 김병수의 망각은, 아니 망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의 내용 중 사실이라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독자는 이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망각은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잖아? 잊어버린 기억이 어디 하나 둘이겠어? 그렇다면, 내게서 사라진 기억은 무엇이 있을까. 아니,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그 사라진 기억 위에 세워진 내 생각들은 과연 망상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어쩌면 그간 우리는 잘못된 전제 위에 올라서서 그 많은 계획을 세우고, 판단을 내리고, 목표를 세웠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그가 죽었다는 것을 잊고, 그 사람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처럼요. 그래서 김병수는 또 이렇게 말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카메라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살인자의 기억법> 중에서

김병수의 말대로 망각은, 인생이 우리에게 보내는 짓궂은 농담일까요. 몰래카메라를 당할 만큼 유명인은 아니지만, 우리는 사는 내내 망각이란 몰래카메라 앞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서, 망각 위에 올라서서, 삶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우리는 삶을 살고 있는 걸지도요.

덧붙이는 글 |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문학동네/2013년 07월 23일/1만원)
개인 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2013)


태그:#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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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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