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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시민운동가 박성수(42)씨가 8개월째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등의 혐의입니다. 당사자 고소가 없었음에도 경찰은 박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를 벌였고, 검찰은 지난 11월 24일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1970년대 '막걸리보안법'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다음은 오는 22일 최종 선고 공판을 앞두고 박성수씨가 보낸 자필 편지 전문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4월 대구수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박성수씨가 경찰서 표지석에 개사료를 뿌린 후 손피켓과 개사료 포대를 들고 있는 모습.
지난 4월 대구수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박성수씨가 경찰서 표지석에 개사료를 뿌린 후 손피켓과 개사료 포대를 들고 있는 모습. ⓒ 조정훈

어언 30여 년 전 노태우 대통령이 '우리 사회도 이제 민주화가 되었으니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포한 후로 수많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 비난, 조롱, 패러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시국 비판 전단에 대통령 행태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국민을 기소한 사건은 제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 시대가 1970년대 유신시대로 돌아갔다는 증거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그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공안정국을 조성했습니다.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공안 사건 중 가장 한심한 것이 바로 평화 콘서트를 하고 다니다가 폭발물 테러를 당했던 피해자 황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서 17년 전 일기장에 북한 찬양 내용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 수사한 사건입니다.

이에 저는 "12년 전 박근혜가 북한 가서 김정일 장군을 '믿을 만한 파트너다'라고 고무 찬양한 의혹이 있으니 수사하라"는 내용과 함께 "정윤회 염문 덮으려고 공안 정국 조성하냐?"라는 제목으로 관련 보도를 정리해서 전단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제정신이 박혀 있는 수사기관이라면 그 전단을 보고 박근혜를 수사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저들은 오히려 저를 잡아서 구속시켰습니다.

"이건 공판이 아닙니다, 청와대 국무회의입니다"

물론 저들의 모습이 이해되기는 합니다. 국정원을 동원해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보수단체들을 동원해 종복몰이를 해대며 여론을 조작해대던 저들은 이제 상시적 공안정국을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이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절대존엄에게 대들면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보이고 폭압으로 응징하지 않으면, 이 정권이 유지될 수 없음을 저들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에 대한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본 대구경찰, 대구검찰, 대구법원의 형태는 너무 궁색합니다.

저는 전북 군산 사람으로서 지난해 12월부터 박근혜-김정일 전단을 만들어 뿌렸는데, 군산경찰서에서도 내사 끝에 '별 문제되지 않는다'며 내사 종결되었다고 담당 형사가 말해주고 갔습니다. 광주에서는 경찰이 '명예훼손 전단이 아니다'라고 얘기하여 언론에 나왔으며, 제주도/일산 등에서도 내사 종결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은, 이곳 대구에서만 '명예훼손죄'가 씌워져서 8개월째 구속 공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보입니다. 이렇다 보니 최후변론 때 "이건 공판이 아니다, 청와대 국무회의를 하는 것 같다"며 담당 판사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것입니다.

 지난 2월 박성수씨가 제작해 배포한 전단
지난 2월 박성수씨가 제작해 배포한 전단 ⓒ 박성수 제공

제가 이렇게 구속까지 이른 것은 대구 수성경찰서, 대검찰청, 경찰청 등에 개사료를 뿌려대고 수사/사법 기관을 조롱한 것에 대한 괘씸죄가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하지만 개사료 살포는 저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였습니다. (관련기사: '전단 과잉수사'에 '개 사료'로 응수... "꼬리 흔드세요", "경찰총장 빨리 나와 개사료 받아라!")

애초에 이 수사가 말이 안 되는 것인데도 저들은 자택압수수색은 기본이고, 마치 테러조직을 수사하듯이 제 핸드폰, 개인통장, 우체국 발송 목록까지 모두 압수수색했고, 기록이 남겨진 (전단과 아무 관계없는) 모든 제 주변인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서 뒷조사를 했습니다.

권력형 비리 사건은 설렁설렁 봐주는 저들이 전단 사건에 대해 수사력을 총동원하여 1급 테러 사건 다루듯 하는 모습은 '권력에 꼬리를 흔드는 개'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에게 개사료를 뿌렸던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경찰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국가 중 24위이고, 2015년에는 사법기관 신뢰도가 41개국 중 39위였습니다. 이런 현실에 비춰보면 제가 뿌린 개사료는 "국민의 품에 돌라오라"고 독려하는 응원의 꽃가루였던 것이지요.

부산, 신촌 이어 강남에도... 박 대통령 규탄 전단 지난 2월 서울 신촌에 뿌려진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단이 연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뿌려졌다.
부산, 신촌 이어 강남에도... 박 대통령 규탄 전단지난 2월 서울 신촌에 뿌려진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단이 연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뿌려졌다. ⓒ 유성호

하지만 저들의 눈에는 그 개사료가 '감히 박근혜 절대 존엄을 욕보인 대역죄인'이 '테러 조직화되어 투척하는 폭탄'같은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따라서 결코 저 같은 사람을 그대로 놔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생존의 터전을 내 줄 수 없다'며 저항하던 노점상들마저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4명을 구속 시킨 박근혜 정권의 눈에 저 같은 사람은 테러리스트로 보이겠지요.

하여간 그렇게 개사료를 뿌린 괘씸죄에 힘입어 전단 뿌린 것은 '명예훼손'으로,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멍멍"이라고 소리친 것은 '구호를 제창했다'하여 '집시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됐습니다. 돌아가는 꼴이 하도 한심해서 이게 도대체 개그콘서트인지, 몰래카메라인지 순간순간 의심해보고 있는 터입니다.

도대체 이게 개그콘서트인지, 몰래카메라인지

그렇기에 지난 11월 24일 공판에서 검찰에게 3년 구형을 받는 순간 하도 웃겨서 'ㅋㅋ' 거렸습니다. 공판 끝나고 돌아와서는 대구지방검찰청 박순배 검사에게 "사형 구형할 줄 알았는데 겨우 3년형 선고해줘서 고맙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라는 감사편지를 보냈습니다. 대한민국이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고 비꼰 대목입니다.

김태규 판사에게는 오는 22일 예정된 공판에서 아예 '사형을 선고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박근혜 절대 존엄 체제를 유지하는 길이 그런 방법 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저도 그 장엄한 코미디극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한 바람을 담은 탄원서였습니다.

정당성 없는 공권력, 권위가 실추된 폭압은 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저들의 정당성 없는 폭압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콧방귀 뀌며 싸우다 보면 언젠가 저들도 스스로가 개그콘서트를 해왔다는 걸 반성하겠지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이 수사당국에 끌려가서 고문당하던 군부독재시대라면 저는 수사관들이 저를 때리기 전에 자발적으로 동료들 다 불고, 반성문 쓰고 나왔을 겁니다. 제가 사실은 고문당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ㅠㅠ

하지만 지금 시대의 '투쟁'은 과거 목숨 걸고 나섰어야 했던 때와 달리 (수사 받는) 귀찮음, 번거로움, 벌금, (갇혀있는 것의)고립감만 견뎌내면 됩니다. 이마저 감수하지 못한다면 우리 선배들이 흘린 피가 너무 헛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쫄지 말고, 저들을 비웃어주며 맞서야 하는 것이지요.

피바람 부는 공안 정국의 박근혜 치하에서 각자의 투쟁을 이어오는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의 유지 '닭의 목을 비틀어야 새벽이 온다'는 말씀을 새기며, 모두 각자의 생존의 현장에서 시대의 부조리를 한 움큼씩만 더 자기 몸에 품어안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갑시다.

2015. 12. 7
대구 구치소 집무실에서 세기의 명저 <둥글이의 유랑 투쟁기> 저자 박성수

 박성수씨가 대구구치소에서 <오마이뉴스> 앞으로 보낸 편지
박성수씨가 대구구치소에서 <오마이뉴스> 앞으로 보낸 편지 ⓒ 오마이뉴스



#박근혜#풍자 전단#명예훼손#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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