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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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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7월 19일 오전. 택시에서 내린 기자는 뛰었다. 약속했던 취재원의 손에 들린 따끈따끈한 <안철수의 생각> 한 권을 낚아채곤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직 책이 서점에 배포되기 전이었고 핵심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는 없었다.

그렇게 갓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입수하자마자 대여섯 조각으로 갈라버렸다. 주제별로 가른 책을 후배 기자와 나눠 헐레벌떡 기사를 써 내려갔다. 2012년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지지율 조사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 책을 통해 '정치인 안철수'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초심을 밝히기도 했다(관련기사: 안철수, 대권 출마 의사 처음 밝혀 "내 생각 동의하는 분 많으면 앞으로 갈 수밖에).

"10년의 진보정권, 아쉬움이 컸다"

그로부터 3년 5개월여가 지난 13일. 안철수 국회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합의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지 1년 8개월여 만의 일이다. 문재인 대표가 내민 '안철수 혁신안 수용', '심야 자택 방문' 등의 카드도 소용없이 안 의원은 스스로 만든 당을 제 발로 나왔다. 스스로 "캄캄한 절벽 앞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길을 나서려고 한다"고 했다. 

앞으로 어려워질 줄 뻔히 알지만 탈당한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신당 창당, 야권 재편 등 여러 시나리오가 있지만 안 의원이 정치 입문 때 내놨던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꺼내 펼쳐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민주당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어요.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어땠습니까?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경우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실제 선택과 행동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중략)…정부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열심히 했다는 것만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의 진보정권은 성과도 있었지만 아쉬움이 큰 게 사실입니다." (1장 나의 고민 나의 인생)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주당 출신 주류 인사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집권 경험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이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안 의원에게는 냉정히 평가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안철수의 생각'은 민주당을 어디까지나 개혁의 대상으로 여겼지, 협상하거나 포용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도 그렇게 판세가 유리했는데 끝까지 우세를 이어가지 못했죠. 제가 총선에서 적극적으로 야당을 편들지 못했던 이유는 후보 공천이 국민의 뜻을 헤아리기보다 정당 내부 계파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서울시장 재보선 때처럼 제 이름을 걸고 국민들에게 지지해달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1장 나의 고민 나의 인생)

안 의원이 보기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새누리당과 민주당 출신이 주축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똑같은 '기존 정당'이다. 아래의 대목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저는 정당정치를 믿는 사람입니다. 저에 대한 기대는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에 대한 불만이 제게 쏠린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하면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1장 나의 고민 나의 인생)

2015년 4.11 총선 국면에서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투표하라'고 언급한 데 대해 안 의원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의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냉정히 평가해서 투표하는 게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꼼꼼히 따진다면 정당이 국민을 무서워하면서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사람을 영입하려 노력할 것이고, 그러면 정당정치가 복원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흠이 많아도 특정 정당의 '텃밭'에서 공천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선되는 구조에서는 정당들이 민심을 살필 이유가 없으니까요." (1장 나의 고민 나의 인생)

기존 정당의 핵심적인 문제는 공천에 있다는 게 '안철수의 생각'이다. 자연스레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구조를 개혁해내지 못하면 혁신은 물거품이요, 개혁 대상인 '기존 정당'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안철수 혁신안'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한 것도 결국은 부패혐의자의 공천 배제를 요구한 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3일 탈당을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다"며 "비상한 각오와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거듭거듭 간절하게 호소했지만 답은 없었다"고 말했다.
▲ 안철수 탈당 선언 "지금 야당엔 답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3일 탈당을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다"며 "비상한 각오와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거듭거듭 간절하게 호소했지만 답은 없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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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나쁜놈' 공격하는 싸움은 합의 없는 평행선"

스스로 만들었지만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안철수 혁신안'을 걸고 싸움에 나선 안 의원은 결국 성과물을 얻지 못하고 당을 나와 버렸다. 결국 <안철수의 생각>에서 스스로 비판한 "끝까지 합의가 안되는 평행선을 가는 것"이 돼 버리고 말았다.

"저도 정치에서 대립하는 세력 간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싸울 때 세 가지 관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싸우는가. 싸움의 결과로 어떤 합의를 끌어내 사회를 발전시키는가죠.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서, 정책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에 대한 차이를 가지고 싸우고, 그 결과로 합의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바람직한 싸움이죠. 그러면 치열하게 싸우고 난 후 사회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반대는 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상대방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공격하며 싸우고, 끝까지 합의가 안 되는 평행선을 가는 것이겠죠." (2장 어떤 현실주의자의 꿈)

탈당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안 의원은 "안에서 도저히 안 된다면,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또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했다. 제1 야당 안이 아니라 밖에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만들어진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하다가 박원순 시장에 야권 후보를 양보한 안 의원. 이를 통해 2012년 대선 후보로 더욱 큰 입지를 얻은 안 의원. 문재인 후보에 대선후보를 양보하고 이후 제 1야당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던 안 의원은 다시 1년 8개월여 만에 "허허벌판에 혈혈단신" 나선다. "나침반도 지도도 없는" 형편이 됐다.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정치 입문을 선언한 지 약 3년 5개월. 국회의원에도 당선되고 제 1야당의 공동대표도 해보면서 현실정치를 겪어 본 안 의원의 생각은 그때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치를 왜 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안 의원을 지켜본 '국민의 열망'도 여전히 3년 5개월 전과 같이 '주어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든, 혹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기성정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든, 국민의 열망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1장 나의 고민 나의 인생)


태그:#안철수, #탈당, #안철수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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