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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일 저녁 부산 서면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규탄 집회에는 참가자들이 이른바 '복면방지법'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저마다 가면을 쓴 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집회 측 추산 1600여 명(경찰 추산 7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뒤 도심 '가면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박근혜 정부 규탄하고 집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2일 저녁 부산 서면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규탄 집회에는 참가자들이 이른바 '복면방지법'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저마다 가면을 쓴 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집회 측 추산 1600여 명(경찰 추산 7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난 뒤 도심 '가면 퍼레이드'를 진행하며 박근혜 정부 규탄하고 집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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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침대에 행인을 눕혀놓고 다리가 길면 잘라서 죽이고, 모자라면 당겨서 죽였다는 건데 요즘 젊은 세대가 흔히 쓰는 '답정너'와도 비슷한 말입니다.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말이죠.

그럼 보수언론이 바라보는 진보단체의 집회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올려볼까요? 잣대는 폴리스라인 정도로 합시다. 여기선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과격 시위가 됩니다. 그럼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걸 알려면 지난 2일 저녁 부산으로 가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날 저녁 부산에서는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주최한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집회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가면을 쓰기로 했거든요. 집회 측은 1600명, 경찰은 700명쯤으로 보았다는 인파 대부분이 가면을 썼습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복면금지법'에 항의하는 차원이었습니다. (관련기사: 더 발랄하게, 더 재밌게... 부산 시민들의 '가면시위' )

종편들의 취재 열기... "하루 종일 떠들겠구먼"

2일 저녁 부산 서면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규탄 집회에는 참가자들이 이른바 '복면방지법'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저마다 가면을 쓴 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한 노인은 우산으로 이들의 가면을 벗겨내는 등 행패를 부렸고, 종편 카메라는 이 모습을 담았다.
 2일 저녁 부산 서면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규탄 집회에는 참가자들이 이른바 '복면방지법'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저마다 가면을 쓴 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한 노인은 우산으로 이들의 가면을 벗겨내는 등 행패를 부렸고, 종편 카메라는 이 모습을 담았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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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적인 비난을 받는 테러집단인 IS보다 더한 존재로 몰아간 복면 시위대가 대규모로 나타났으니 남아나는 유리창이 없어야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폭력성은 이들을 대하는 일부 시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욕설이 섞인 폭언을 하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합법적으로 신고한 행진을 하는 집회 참가자의 얼굴을 때려가며 가면을 벗기는 할머니까지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상근자가 조곤조곤 집회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대화는 불가능했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해줬는데 왜 데모를 하느냐"는 것이 가면을 벗겨낸 할머니의 불만이었습니다.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이 길을 가다 멈춰 "이 사람들 할 말 하는데 왜 그러나, 우산으로 눈 찌르면 어쩌려 그러냐"고 나무라듯 말했지만 할머니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충돌 역시 전에 없던 상황은 아닌데 돋보인 건 종편들의 취재 열기였습니다. 보수 성향의 종편 매체들은 할머니의 모습을 열심히 찍었고, 이를 본 집회 참가자는 "내일 또 저걸로 하루 종일 떠들겠구먼"이라고 혀를 찼죠.

그리고 그 참가자의 말은 곧바로 실현됩니다. 보란 듯 채널A는 3일 뉴스특보를 통해 할머니의 분노를 시민 불편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정작 집회는 별다른 충돌도 없는 '준법 집회'였는데 말입니다. 참고로 이건 담당 경찰서장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면금지안 조롱=복면 난동 용인? 이상한 보수 언론


2일 저녁 부산에서 벌어진 가면 행진 참가자들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할머니의 소식을 전한 종편 채널A의 방송 화면.
 2일 저녁 부산에서 벌어진 가면 행진 참가자들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할머니의 소식을 전한 종편 채널A의 방송 화면.
ⓒ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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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에 무게를 뒀던 보수언론들은 어쩌면 바랐을지도 몰랐을 폭력사태가 벌어지지 않자 가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조선일보>는 '복면 시위에 직접 당해봐야 '복면금지법 조롱' 관둘 건가'라는 제목의 3일 사설은 부산 집회를 "집회·시위에서 복면을 쓰고 맘껏 폭력을 휘두르는 시위꾼들을 막으려는 복면금지법안(집시법 개정안)을 조롱하려는 것"이라 단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설은 "이 법안을 조롱하는 것은 지금처럼 복면 난동을 용인하자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복면금지법안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복면 시위대의 폭력적 공격을 직접 받고 나서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앞세워 대충 넘어가자고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끝을 맺습니다.

저도 정말 묻고 싶습니다. 법치를 그리 좋아하는 분들이니까요. 정부·여당이 '추진한다'는 이유만으로 있지도 않은 법을 지키라는 건 당최 어느 나라 법인까요? 대한민국에는 그러라는 법 없는데 말입니다(관련기사: "법치국가"라면서... 이상한 기운 풍기는 박근혜 정부).


태그:#복면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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