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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있지요. 세상은 이렇게 조용히, 침묵 속에서도 바뀝니다. 우리가 하는 투쟁이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장훈.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연등이 화사하던 2015년의 어느 봄날, 조명탑에 올라가 45일간의 고공농성을 한 사람. 그리고 지난 10월 15일부터 48일(12월 1일 기준)이 넘도록 단식 중인 김건중 부총학생회장 곁을 지키는 사람.

동국대에 다닌다면 누구나 그를 안다. 그러나 '인간 최장훈'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21일 비오는 가을 날 동국대학교 본관 앞에 자리한 농성장에 방문했다. 공식적인 발언과 행동으로부터는 잘 알 수 없는 그의 또 다른 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 기자 말

"정문으로 출근 안 하는 총장 보광 스님, 떳떳하지 못하니까"

천막 농성장에서 환하게 웃는 최장훈 동국대대학원총학생회장
 천막 농성장에서 환하게 웃는 최장훈 동국대대학원총학생회장
ⓒ 전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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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상황은?
"지난주 토요일(11월 14일) 일면·보광 스님이 이사가 되셨어요. 이사는 학교 운영의 책임자입니다. 학교의 예·결산, 인사권 등 모든 운영 권한을 가져요. 두 분께서 이사가 되셨다는 것은, 다시 말해 동국대학교 안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안정적으로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일면 스님은 오는 12월 19일로 임기가 끝날 예정이었는데 연임을 하시게 된 거예요. 학내 분위기가 이렇게 반대를 하고 있어도 내부에서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 단식농성 운영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밤에는 당번을 정해 한 명씩 남아서 지킵니다. 학교 측에서 텐트를 철거하지는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특별한 안전문제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추운 날씨에 매일 밖에서 잔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건 변함 없습니다. 오랜 싸움을 위해 저는 당번이 아닌 날에는 집에서 잡니다. 건중이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데, 사실 선거철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정들로 사람들이 많이 빠졌어요."

- 주로 어떻게 활동 지원을 받고 있습니까?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학생 10여 명이 도왔으나, 최근 선거기간과 겹쳐 3, 4명밖에 남지 않았지요. 다큐멘터리로 영상 기록 작업을 하는 영상대학원 학생 몇몇이 저희와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제가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을 했을 당시에는 20명 가까이 도왔는데, 그 중 다수가 군대 등의 이유로 빠졌습니다. 보광과 일면 스님이 이사가 되고 나서 '정리하자'는 분위기가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학생들의 참여가 많이 부족합니다."

- 필요한 것은 없나?
"우선 천막에 상주할 인원들입니다. 정해진 시간은 없고요, 여유가 있는 시간에 와서 함께 해주시만 하면 돼요. 오랜 기간 단식투쟁 중인 김건중 학우 옆에 늘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안전 문제에 대처할 수 있지요. 등, 하교 시간의 피케팅, 하루 동안이라도 명찰을 차고 함께 단식을 하는 동조 단식, 그리고 투쟁을 지속하게 하는 지원금 제공 등을 통해 저희 활동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 요즘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의 몸 상태는 어떠한지?
"안 좋습니다. 코피가 자주 나고요, 비위가 약해져 구역질을 합니다. 다리 근육이 없어져서 걷는 데 힘들어해요. 신경도 예민해졌고요. 오랜 기간 단식을 하면 나타나는 현상들이죠. 피부에 붉은 반점 같은 게 생겼었는데, 효소를 먹으면서 조금 가라앉았고요. 물과 소금을 먹다가 최근에는 소금이 역해서 못 먹고, 물과 효소만 먹습니다. 몸에 무리가 심하게 왔지요. 끝나고 매우 주의 깊게 보식을 해야 합니다."

- 보광 스님 측은 아무런 반응이 없나?
"얼마 전 보광 스님이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 김건중 학우에게 연락했습니다. 퇴진 빼고는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회유를 했죠. 몸과 마음이 약해진 것을 알고, 사전 동의 없이 접근한 겁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무례했다고 생각합니다.

보광 스님은 본관 정문으로 출근을 안 하세요. 뒷문으로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떳떳하거나 당당했다면 지금쯤 저희에 대한 징계가 나오고, 이를 두고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을 겁니다. 종단개입 의혹과 논문표절 등 스스로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니 '저자세'로 나오는 거죠."

- 언론의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언론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마찬가집니다. 조계종을 건드리면 문제가 커지고 각 절의 주지스님이 어떤 말씀들을 하실지 뻔히 보이니…. 이사회를 할 때는 아예 경비 용역들을 불러서 교문에서부터 통제해 버리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스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아마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계셨겠죠. 그래도 <경향신문>에서 유일하게 관련 기사를 실어주셨고, 성금을 모아 광고도 게재했지요."

"떳떳한 우리,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

단식투쟁에 함께 참여하는 동국대 교직원
 단식투쟁에 함께 참여하는 동국대 교직원
ⓒ 전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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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에서 제도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것은?
"총장 직선제죠. 대학 교수들이 총장을 직접 선출 하자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총장 직선제를 시행하는 학교가 얼마 없기는 하지만, 이것이 된다면 정말 좋겠지요.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이사나 학생추천이사가 배석되어 조금 더 민주적으로 학교 운영이 되기를 바랍니다."

- 갈등이 왜 이렇게 장기전이 됐을까?
"정말 학교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보광과 일면은 이미 사퇴를 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무고하더라도. 그것이 대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선택이 아닌가요?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장기전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학교가 어찌 되든, 세상이 무엇이라 욕하든 자신들, 그리고 자신들의 자존심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 최장훈은 다른 학생들과 '특별히'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 불편함, 괴로움, 싫음 등을 견디지 못합니다.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거겠죠. 그래서 감수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만들어 놓습니다. 1학기에 조명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죠. '이거라도 하면, 보광 스님이 총장직을 쉽게는 못 할 것이다'라고요. 그래서 마음은 편합니다. 몸은 좀 불편하지만."

- 최장훈 학생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특별하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좀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어요. 물질적인 것 보다는 사람에게서 얻는 즐거움을 느끼는 삶. 나이 들어서는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노는 잔치를 많이 만들며 지낼 겁니다."

- 학교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과 잃는 것?
"사람들을 얻었고 또 잃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좋은 선배들과 후배들을 만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공유할 정도의 관계를 얻게 되었죠. 여러 사람들의 유형을 파악할 수도 있게 되었고요. 이런 경험들이 쌓여 앞으로 살아가면서 제 인생 앞에 놓인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지혜와 협상기술을 배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잃었지요. 제가 조금만 더 용기 내어서 이야기하고, 말을 걸고, 설득을 하였다면 어땠을까. 제 의도와 다르게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그들을 조금 더 보듬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미안함이 항상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해본다면 학위죠. 제도권 내에서의 학문, 다시 말해 석사 학위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평생 해 나갈 것입니다."

- 동국대학교 학생들(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가치와 내용, 실력, 철학을 쌓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보라고 전하고 싶어요. 기업이 요구하는 가치에 순응하기 급급한 젊은 날이, 나중에는 조금 아쉬울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어렵고 불안정할수록 더욱 더 자신을 잘 알고 들여다보아야 나중에 무너지지 않거든요. 요즘 취직한 지 몇 년 안 되어 그만 두고 나오는 사람들, 생각보다 많아요.

젊은 나이에 '중립'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사고방식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자기 삶에 비추어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바꿔나가며 정립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동아리, 소모임, 학회, 그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해보고요. 지금은 다들 수업만 듣잖아요. '팀플'에 얽매여서.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팀플이 과연 협동하는 힘을 길러주는가. 사실은 기계적 분업이죠. 교육 효과에 비해서 시간 소모가 너무 많아요. 비효율적인 거죠."

- 앞으로 어떤 삶을 고민하는가?
"정치학과 석사 과정에 진학하였으나, 이 사태로 사실상 제도권 내에서의 학문의 길은 포기한 상태입니다. 이 활동을 마무리 지은 후에는 취업을 생각 중이고요, 어디에서 일을 하던지 노동운동을 할 마음이기 때문에 직업의 종류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졌다고? 동국대는 조용히 바뀌는 중이다"

단식투쟁을 하는 김건중 학우와 한만수,
 단식투쟁을 하는 김건중 학우와 한만수,
ⓒ 전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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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학생들이 '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안 된다고 놔두면 더 개판 되잖아요. 우리가, 그리고 학생들이 이렇게 호되게 싸워봤기 때문에, 앞으로 학교는 어찌 되었든 학생들의 눈치를 볼 것입니다. 교육계 내 사람들의 자세가 바뀔 것이라는 거죠.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싸우는 겁니다.

변화, 성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요. 동국대에서도 매주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대자보가 붙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사회에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배우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든, 관철되지 않던 간에 많은 것이 바뀔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에 대한 기록이 쌓이고 있습니다. 몇 년 후, 학교에서 또 다른 일이 생겨나 싸워야 할 때, 우리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실'을 알렸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다면 '그런가보다'했겠지요.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을 가지고 우리와 보광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지요. 세상은 이렇게 조용히, 침묵 속에서도 바뀝니다.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은 지난 10월 15일부터 서울 중구 동국대 본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30일까지 47일째 단식 중이다. 요구 사항은 단 하나, 보광 스님과 일면 스님의 총장직과 이사장직 사퇴다. 지난 5월, 18편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된 보광 스님이 총장에 선임되고 흥국사 탱화 절도 의혹을 받고 있는 일면 스님이 이사장에 재선임 된 것이 그 이유다.

종립학교관리법 제11조에 따르면 동국대 이사회는 종립학교관리위원회가 중앙종회 동의를 얻어 추천한 후보를 이사에 선임해야 한다. 이 규정을 어겼을 시 같은 법 제15조에 따라 조계종은 해당 이사의 해임을 요구하고 징계에 회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국대 이사회는 중앙종회의 동의 없이 절도 의혹을 받고 있는 일면 스님의 이사장 연임을 결정했다.

동국대는 지난해 12월 총장 선출 과정에서 조계종단이 총장을 선임 이사회 전에 특정 후보인 보광 스님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김희옥·조의연 후보에 대한 강압적 사퇴를 초래하여 직원·교수·학생·동문들이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보광 스님의 논문 표절 사실, 일면 스님의 탱화 절도 혐의가 불거졌다.

앞서 동국대는 지난해 12월 총장 선출 과정에서 조계종단이 총장을 선임 이사회 전에 특정 후보인 보광 스님을 지지를 표하며 강압적으로 김희옥·조의연 후보를 사퇴하게 했다는 의혹이 일어 직원·교수·학생·동문들의 반발을 샀다. 이 과정에서 보광 스님의 논문 표절 사실, 일면 스님의 탱화 절도 혐의가 불거졌지만 일면 스님은 일부 이사들의 동의 없이 이사장을 선출하는 임시 회의를 열어 본인을 차기 이사장으로 재선임했다.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47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교수협의회 또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한만수 교수협의회장, 김준 비대위원을 비롯한 학교 직원도 지난 10일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후배의 외로운 싸움에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에서다. 학생들 또한 동조단식에 참여하는 등 동국대에서는 소리없는 투쟁과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단식투쟁을 총 책임하여 지원하고 있는 지난 4월 최장훈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학내 조명탑에 올라 45일 간 무기한 고공농성을 했다. 지난 9월 재학생 2000여 명이 모여 15년 만에 성사된 학생총회를 조직하고, 그 결과물인 요구안을 동국대 총학생회와 함께 학교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사장 일면 스님 "종단 선거 개입, 탱화 절도 사실 아냐"
현재 이사장 일면 스님은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는 중이다. 먼저 조계종 간부 스님들이 특정 후보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을 두고 그는 지난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총무원장 스님, 호계원장 스님(본인), 교육원장 스님 등 다섯 명이 코리아나호텔에서 김희옥 총장님과 아침을 먹으며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종단에서 적극적으로 못 밀어 드려서 미안합니다'라고 덕담한 바 있다"면서 "이분(김희옥 전 총장)이 생각했을 때 한 번 더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종단에서 못 밀어 준다고 하니 덕담이지만 섭섭하셨는지 사퇴하셨다"고 말했다.

또한 탱화 절도 의혹에 대해선 "흥국사 주지를 했을 때 분실한 것"이라면서 "징계를 회피하려고 신고를 못했던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나 훔쳐서 절을 지으려고 했다거나 축적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총장 보광스님은 지난 2월 동국대 학교연구윤리진실성 위원회의 검증 결과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학교 측은 총장 직을 내놓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총장실 관계자는 지난 29일 "문제가 된 논문은 철회됐고 3년 동안 투고를 못하도록 제재를 받았다"라며 "(논문 표절에 있어서) 최고의 벌을 받은 것인데 (선거 참여자가 아닌) 제3자가 그것을 문제 삼아서 총장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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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동국대, #최장훈, #김건중, #조계종, #보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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