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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고 정문 머릿돌에 새겨진 교훈은 그룬투비의 자율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여양고 정문 머릿돌에 새겨진 교훈은 그룬투비의 자율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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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인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이성에서 감성으로, 감성에서 영혼으로 조금씩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인문학 초·중·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

여양고등학교 김광호 교사의 말이다. 인문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학교가 있다. '이런학교' 두 번째 이야기를 싣기 위해 지난 24일 오후에 찾은 전라남도 여수시 여양고등학교다. 정문 앞에서 머릿돌에 새겨진 교훈을 읽다 어느 문구에서 잠시 시선이 멈췄다.

"나 스스로 지는 짐은 무겁지 않다."

눈길을 끌었던 문구는 '스스로'였다. 스스로는 '남이 시키지 아니하였는데도 자기의 결심에 따라서'라는 뜻의 부사다. 덴마크를 세계 1위의 행복국가로 이끈 그룬트비 목사가 강조하는 자율성과 연결되는 단어다.

대안교육이 꿈틀거리는 작은 시골학교

<오마이뉴스>대표기자 오연호 작가의 400회 특강을 인터뷰중인 여양고 김광호 선생님과 1.2학년 학생들의 모습
 <오마이뉴스>대표기자 오연호 작가의 400회 특강을 인터뷰중인 여양고 김광호 선생님과 1.2학년 학생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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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진학을 위해 국영수에만 올인 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안목과 자존감을 어떻게 넓힐 수 있을까?"

김광호 교사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올해 초 교과과정 다양화 등으로 일반고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전남도교육청 하이플러스(Hi+) 공모사업에 신청한 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고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1·2학년을 대상으로 1년간 인문학 집중반을 짰다. 고전, 역사, 철학, 문학을 주제로 외부초청 인문학 강연, 독서토론회, 인문학 기행체험, 예술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세웠다. 이후 공모사업에 당첨되어 지난 4월부터는 매달 인문학 강연을 진행 중이다.

인문학 강연에는 의사, 언론기자, 대학교수 등 유명 인사들이 초청됐다. 정약용을 찾아 떠나는 다산 초당과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기행을 떠났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 5·18묘역도 참배했다. 민주화를 피로 지켜낸 아픈 역사 현장에서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예울마루에서 펼쳐진 뮤지컬 공연 관람은 지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날에는 강연 연사는 덴마크 교육의 성공사례를 담은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였다. 여양고는 지난 9월 이 책을 대량으로 구입해 독후감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곳에서 400회를 맞은 전국순회특강에는 지난 1년 2개월 동안 4만1488명이 참가했다. 덴마크 행복사회의 기초는 그룬투비 운동을 통한 교육 혁신이었다. 강연 참가자들은 우리 안의 덴마크를 만들자는 열망으로 대안 교육을 찾아 꿈틀거렸고, 마침내 2016년 2월 강화도에 기숙형 학교 '꿈틀리 인생학교'가 문을 연다. 

인문학으로 찾은 답, "나는 물론 이웃까지 행복해야 진짜 행복"

여양고는 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학교(좌)와 고등학교(우)가 운동장을 함께 쓴다. 재미있는 건 처음엔 본교에 중학교가 자리했으나 학생수가 급격히 줄고 고등학생이 점점 늘자 학교자리가 뒤바뀌었다. 한때 300여명에 육박하던 중학생수는 현재 45명으로 급감했고, 여양고는 480여명의 학생수를 유지하고 있다.
 여양고는 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학교(좌)와 고등학교(우)가 운동장을 함께 쓴다. 재미있는 건 처음엔 본교에 중학교가 자리했으나 학생수가 급격히 줄고 고등학생이 점점 늘자 학교자리가 뒤바뀌었다. 한때 300여명에 육박하던 중학생수는 현재 45명으로 급감했고, 여양고는 480여명의 학생수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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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소라면 덕양삼거리에 위치한 여양고는 평범한 시골학교다. 지난 1966년 춘당학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운동장을 함께 쓴다. 재미있는 건 처음엔 본교에 중학교가 자리했으나 학생 수가 급격히 줄었다. 한때 300여 명에 육박하던 중학생수는 현재 45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대학 수시모집 전형에서 유리하다는 이점 때문에 이곳으로 진학하는 고등학생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리가 뒤바뀌었다.

수업시간이 끝난 오후 오연호 대표기자의 400회 행복 특강에 참석한 1·2학년 학생들과 교내 등나무 벤치에 둘러앉았다. 교내축제에서 선보일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쁜 아이들이었다. 얼굴엔 활기가 넘쳤다.

이들에게 여양고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묻자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는 인문학 특강과 직업전문가를 초청한 실용적인 강연"을 꼽았다. 또 "이 강연은 인기가 높으며 선생님들이 잘 챙겨줘서 자신감 있게 학교 생활 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난 9월 열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에서는 행복에 관한 학생들의 다양한 소감이 나왔다. '행복의 무게'라는 제목의 글을 쓴 2학년 2반 조승혜양은 "이 책을 접했을 때 내가 생각한 행복과 덴마크의 행복이 다르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라며 "그들이 말하는 행복은 나의 행복은 물론 옆집 아저씨의 행복까지 일컫는 것"이라고 썼다.

조양은 또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국민적 우울증에 시달렸고, 국민들이 이민까지 고민하는 고통에 처했지만 과연 내가 떠난다고, 우리가 외면한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대한민국을 웃게 할 수 있는 답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이웃, 환경, 신뢰, 정을 되찾아 너와 내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답을 제시했다.

인터뷰중인 여양고 김보미 학생은 아직 꿈이 없다. 하지만 인문학을 통해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오연호 작가가 추천한 '새로운 100년' 책을 읽고 꿈을 찾는 중이다.
 인터뷰중인 여양고 김보미 학생은 아직 꿈이 없다. 하지만 인문학을 통해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오연호 작가가 추천한 '새로운 100년' 책을 읽고 꿈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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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을 수상한 1학년 5반 김지연 학생은 "덴마크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학교 안 학생들이었다"고 전했다. 지연양은 "솔직히 우리 선생님들은 소위 우등생에게만 훨씬 많은 이점을 주고 관리해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며 "조금 떨어지는 학생도 나름의 장점과 개성이 있을 텐데 선생님들이 그것을 못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쉽다, 최고만 추구하지 말고 민주적인 형태의 교육을 적극 실시했으면 좋겠다"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꿈인 1학년 1반 김태민 학생은 강연이 끝나고 기자와 만나 "이번 강연은 교육뿐 아니라 직업관도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방향을 간접적으로 제시해 줬다"면서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덴마크인은 직업을 택할 때 돈과 명예 보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여양고의 인문학 강연은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 김광호 교사는 3년 전 여수시 연합동아리를 시작으로 학교에서 2년째 인문학 교육을 진행 중이다. 그는 "아이들이 처음엔 독후감을 쓰는 걸 어려워했지만 작가와 직접 만나는 기회를 상으로 부여하니, 대부분 폭발적인 공감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여건만 주어지면 계속적인 강연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삶을 안내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양고등학교, #인문학 ,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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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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