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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온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2013년 9월에 주재원으로 부임해 가족과 함께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정상적인 한국인에게 인도는 여전히 살기 힘든 나라다.

먼저 열악한 교통 때문에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 원하는 장소에 쉽게 가지 못한다. 조그만 삼륜 용달차처럼 생긴 릭샤를 어렵사리 잡아타면 먼지 흡입은 기본. 허리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는 곡예운전을 감내하더라도 연신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내리고 나면 귀가 멍멍해진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려는 기사와 옥신각신하다 보면 늦기 일쑤다.

다음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서러움이다. 인도인 대부분 힌두교를 믿어 소 형님을 받드는 분위기라 소고기 냄새도 맡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소고기 수출은 세계 1위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또 나머지 사람은 무슬림이어서 돼지고기도 먹기 힘들다. 이러니 만만한 닭이랑 별 수 없이 친하게 지내야 한다. 한국에서 먹은 삼계탕보다 인도에 와서 주문한 치킨 커리가 더 많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들어준 사건이 있었다. 얼마전 단백질 사냥에 나선 우리 가족은 무작정 염소 뒷다리를 사봤다. 아내는 이걸 어떻게 해먹을까 고민하다 냄새 잡는 인도 향신료와 함께 들통에 넣고 팔팔 끓였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인도에서 찾은 한국의 맛! 염소 뒷다리 설렁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염소 뼈에서 우러나온 국물에 뒷다리 살이 어우러진 맛은 영락없는 한국의 설렁탕이었다. 잘 익은 깍두기가 없어 아쉬었지만 이것까지 바란다면 사치다.

한국에 있을 때 설렁탕이란 녀석은 끼니 때우려고 부담 없이 선택하는 편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우고 싶은 조급함에 정작 제대로 맛을 음미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발명한 염소 뒷다리 설렁탕은 맛을 느끼며 먹어야 하는 고급 요리로 여겨졌다. 내 혀에서 자고 있던 미각이란 놈이 깨어나 춤추고 돌아다녔다. 객지에서 오래 살다 보니 고향 음식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인도도 이제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곧 겨울이 되면 차량이 뿜는 매연과 노숙인이 불을 쬐기 위해 공해물질을 태워서 나온 연기 때문에 스모그가 자욱하게 퍼질 것이다. 뉴델리 공기 오염이 그 악명 높다는 중국의 베이징보다 더 심각하다는 기사가 인도 일간지에 자주 나온다.

이렇게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먹는 것도 불편한 데다 숨쉬는 공기마저 이 모양이니 악조건은 모두 모인 것 같다. 하지만 홀리(Holi) 축제 때 처음 보는 사람 얼굴에 색가루 칠을 해도 되고, 디왈리(Diwali)가 오면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불빛 조명이 집집마다 걸리고 또 좋아하는 망고를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인도는 살 만하다.

이제 인도가 살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동안 너무 친해져 버린 꼬꼬댁 님과는 거리를 조금 두고 올 겨울에는 염소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한국에서 눈 덮인 추운 겨울날 호호 불면서 먹었던 설렁탕을 생각하면서.


태그:#설렁탕,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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