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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 '민중총궐기 대회', 민중의 분노!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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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민중총궐기' 집회는 오히려, 무기력했다. 언제나 '폭력시위' 틀을 들고 나오는 기득권의 시각은 사실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맞대응으로 위헌적인 경찰의 차벽 봉쇄와 미필적 고의성이 다분한 물대포를 지적하는 글들은 상대에 대한 분노를 끌어올리는 데에만 열중하는 듯해 지겹고 물린다.

현장에서는 노조와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회 측도 늦은 오후 2시 노동자대회에 8만여 명이 참석했다고 발표했고, 이어진 민중총궐기 본 집회 참석자를 13만여 명으로 추정했다.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겪고 난 뒤 가슴에 담겨진 답답함이 이들의 동력이 아니었을까. 집회 주최 측은 '박근혜 퇴진'을 주제 삼았지만, 현장에서는 큰 대오 속에 작은 소규모 집회가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세종대로 초입에서 매운 물줄기가 뿌려지고 있던 늦은 오후 7시께였다. 다섯 명의 고등학생들은 프레스센터 입구 쪽에서 "청소년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는 고함을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동시에 서울역 방면으로 행진하는 농민들과 여성노동자들이 보였다. 시청 쪽 도로에는 '밥쌀수입반대'라는 세 사람 크기의 입간판이 서서 또 다른 벽을 만들었다. 1시간 전에는 대한문 쪽 도로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춤사위를 펼치는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일렬로 반듯이 광화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전으로 가보면 오후 2시에는 대학로에서 청년들이 헬조선과 지옥 같은 삶을 때려치우고 싶다며 모여들었다.

단일한 관심과 주제와 성향이 아닌 많은 목소리가 모였다. 농민, 노동자, 성소수자, 청년학생들 각자의 집회를 조직한 주체들은 하나의 단체가 아니다. 각자가 다른 정당처럼 각자의 활동을 해오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거리의 야권연대가 이뤄진 자리였다.

그럼에도 무기력했다. 의회의 야권연대가 어떠한 실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정권도 교체하지 못한 채 사멸하고 말았던 2012년이 떠오른다.

물대포를 맞고 있던 도로의 대오와는 달리, 적어도 그 만큼은 되는 사람들이 도로 양 쪽의 인도 위에서 자신들을 조준해오는 물대포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고, 멍한 눈으로 연방 지켜보기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무엇을 바꿔달라고, 무엇이 잘못됐다고" 일관된 발언도 하지 못한 채 그 많은 인원이 더 완고해진 살수차와 차벽에 또 한 번의 상처와 분노만을 안고 흩어지고 말았다.

민주노총 홍보국에 따르면 공식 산회 시간은 늦은 오후 11시였지만, 3~4시간 전부터 해산하는 단체가 속출했다. 현장 선두에서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있던 활동가는 "뒤로 물러나지 마세요. 앞으로 가야 뚫을 수 있습니다"고 수 분 마다 소리 질렀다. 도로의 대오는 멈추었고, 시청과 세종대로 차벽 사이는 '청결기동대' 형광조끼를 입은 미화원들이 지나가며 천천히 인적을 잃어갔다.

인도와 길가는 한숨소리들로 메워졌다. 그 사이 SNS를 보고 있던 참석자들의 눈길과 생각은 서울대병원으로 쏠렸고, 분노는 청와대도 체제도 아닌 방패를 든 의경들과 물대포를 '조준해서' 쏜 누군가에게 넘어갔다. 조만간 교과서와 밥쌀과 비정규직 대신 경찰의 '과잉대응' 여부가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것도 뻔하다.

오히려 교과서 국정화와 같이 주목받던 현안을 먼저 들고 나왔으면 어땠을까. 의미는 축소 되었을지 몰라도 소리라도 시원하게 지르고 올 수는 있지 않았을까. 운동권 경험은 없고 다만 글만 써온 필자가 현장에서 방법론적인 고민을 매일같이 해 나가는 활동가들에게 오만한 훈수를 두는 듯해 조심스러워진다.

이번 기회에 경찰의 진압이 도를 넘었고, 그 자체에 위헌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계기가 열렸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회-진압-실패로 이어지는 무기력의 고리를 끊어낼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진 않을까.


태그:#민중총궐기, #시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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