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독일 작센주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역사교과서. 2015년 작센주에서는 총 4개 출판사에서 나온 44권의 역사교과서가 검정에 통과됐다.
 독일 작센주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역사교과서. 2015년 작센주에서는 총 4개 출판사에서 나온 44권의 역사교과서가 검정에 통과됐다.

독일 작센주 홈페이지에서는 올해 검정에 통과한 모든 교과서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 중 역사교과서를 검색해본 결과 총 44권이 나왔다. 학년별 주교재 및 부교재 등이 상세하게 나온다.
 독일 작센주 홈페이지에서는 올해 검정에 통과한 모든 교과서의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 중 역사교과서를 검색해본 결과 총 44권이 나왔다. 학년별 주교재 및 부교재 등이 상세하게 나온다.
ⓒ 작센주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독일 역사에서 국정 교과서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이었다. 바로 동독 공산주의 시절이다. 심지어 악랄했던 나치 독재 정권 때도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교과서가 나왔다. 물론 그 내용은 일단 접어두고 말이다.

독일의 학교 시스템, 교육 및 문화 정책은 주 정부가 결정한다. 주마다 학교 시스템이 다르니, 역사 교과서도 같을 리 만무하다. 출판사마다 교과서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출판사가 주마다 다른 내용의 교과서를 만든다.

각 출판사는 주의 교육 시스템과 환경 및 지역 역사를 고려해 작센 주용, 바이에른용 등 주별로 역사 교과서를 따로 발행한다. 최근 역사 교육의 경향이나 학계 요청 사항 등을 담아내고, 더 나은 편집을 위해서 힘쓴다. 일부 출판사는 교과서 제작과정 중 몇몇 학교에서 시범 수업을 하기도 한다. 교과서 자유경쟁에서 선택되기 위한 노력이다.

나치 정권 당시 발행된 역사 교과서 중의 하나인 'Volk und Fuhrer' 표지와 첫 페이지.
 나치 정권 당시 발행된 역사 교과서 중의 하나인 'Volk und Fuhrer' 표지와 첫 페이지.
ⓒ Velhagen & Klasing

관련사진보기


독일 나치 정권은 '고등학교에서의 교육과 수업'이라는 지침을 만들어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짜고, 교과서 내용도 바꾸도록 했다. 역사 교과서의 경우 순혈통주의, 민족, 자기보존, 영웅적인 정신 및 리더의 원칙 등을 강조해야 했다. 여러 출판사들의 집필진들은 나치 정권의 교과서 검정에 통과하기 위해서 이 기준에 맞춰 교과서를 썼다.

당시 교과서를 분석한 연구 등을 찾아보면 내용면에서는 나치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반영했지만, 'Führer und Völker', 'Geschichtserzählung', 'Von den Stämmen zum deutschen Volk', 'Geschichte als Gegenwart' 등 독일 전역의 다양한 출판사에서 많은 수의 역사 교과서가 나왔다. 나치 정권조차도 집필 기준을 다르게 했을 뿐, 국정 교과서로 '통일'하지는 않았다. 각기 다른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 집필진들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교과서를 편찬했다.

독일은 나치와 동독 역사 때문에 역사 및 과거사 청산 논쟁이 강하게 이뤄졌던 곳이다.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논쟁도 활발히 이뤄졌다. 특히 주 정부로 나뉘어 일치된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고 한다. 현재 독일의 역사 교과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지난 16일 독일 역사교사협회(Verband der Geschichtslehrer Deutschland e.V.) 협회장 울리히 본거트만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울리히 본거트만과의 일문 일답이다.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수업은 전적으로 교사의 자유"
독일 역사교사협회 협회장 울리히 본거트만.
 독일 역사교사협회 협회장 울리히 본거트만.
ⓒ Ulrich Bongertmann

관련사진보기


-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독일의 모든 교과서는 주 정부로부터 검정 절차를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와 검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수업 매체입니다. 교과서는 헌법과 교과과정과 일치하며, 공적 자금을 지출할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 독일은 각 학교에서 스스로 어떤 교과서를 사용할지 결정합니다. 학교 내에서는 어떤 절차를 거치나요?
"각 학교는 검정에 통과한 역사 교과서 중 하나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역사 교사들이 모여 적절한 교과서를 선택하고, 견본 교과서 등을 요청합니다. 한 교과서는 학교 내에서 최소 5년간 사용됩니다. 기준은 학교의 교과 과정과 일치하고, 적절한 콘셉트, 언어의 수준 등이 연령대에 부합하는지, 사진이나 레이아웃 등 편집이 얼마나 잘 돼 있는지를 봅니다. 학교가 있는 지역의 지역적 내용과 교과서 비용도 참고합니다."

- 역사 수업에서 교과서는 얼마나 중요하게 활용되나요. 예를 들어 한국은 교과서가 거의 유일한 수업 교재이며 많은 교사들이 교과서의 커리큘럼에 따라서 수업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교과서는 가장 중요한 수업교재입니다. 신문이나 관련 잡지 등 부수적인 것을 교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부수적인 교재는 높은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학교가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자료를 이용합니다. 대부분 교과서 안에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요.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 너무 어렵거나 혹은 너무 쉬운 텍스트가 있는 것입니다."

- 모든 학교가 꼭 교과서를 선택해야 하나요? 교과서 없는 역사 수업도 가능한가요?
"교사들이 교과서를 꼭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항상 하나의 교과서를 받기는 해요. 실제로는 사용을 안 해서 집에서 굴러다닐 수 있지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교사가 인터넷이나 수업 관련 잡지에서 더 나은 자료를 발견했기 때문이겠죠. 또는 교사 입장에서 교과서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회의에서 결정된 다수 의사를 따르고 싶지 않아 교과서 사용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수업 교재가 극좌나 극우, 반유대주의 등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수업 방식은 전적으로 교사의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 히틀러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은 발췌가 아닌 전체 내용을 사용하는 게 금지돼 있습니다(하지만 2016년 학술용 출판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 기준은 곧 바뀔 것 같습니다)."

"독일 역사는 서독·동독 역사를 동시에 가르친다"

- 교사들이 독일의 나치 역사나 동독 역사를 가르칠 때, 어떤 합의된 원칙이나 기준이 있나요?
"교육이 필수적인 경우에는 교수 계획서에 원칙이 나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 문제 제기를 이끌어내도록 돼 있습니다. 각 수업 시간 안에서 교수 방식은 교사에게 자율권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역사수업 내용에 관한 질문이 무척 많은데, 이는 역사 교육 관련 잡지인 < PraxisGeschichte > < Geschichte lernen > 등을 통해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런 통로를 통해서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할지 조언합니다. 또한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도 이곳에서 논의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치 역사의 경우에는 반유대주의 정치의 흐름에 따라서 즉, 분리-박해-절멸 과정에 따라 가르치도록 합니다. 독일 역사는 서독과 동독 역사를 동시에,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얽혀있는 역사를 가르칩니다."

- 독일에는 과거사 청산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독일은 어떻게 역사 교과서의 내용에 합의할 수 있었나요.
"역사 교과서를 위해 일치된 내용은 아직까지도 없습니다. 학교 교육에 관한 가장 상급 위원회는 16개 주 정부 대표가 모인 문화장관회의입니다. 이곳에서 관련 질문들을 다루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특히 아비투어(Abitur, 고등학교 졸업시험으로우리나라 수능과 비슷한 개념 - 기자 주) 역사 교과목 내의 시험 요구사항에 대해서 합의합니다. 출제 기준이나 출제 내용 같은 것들이죠.

각 주에서 이뤄지는 아비투어 시험이 독일 전역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비교적 최근 협의 사항으로는 '기억 문화'가 있습니다. 독일의 여러 역사 관련한 기념물을 방문하고 학습하는 내용인데, 이 또한 권고 사항입니다."

"교과서의 다양성, 민주주의적 자유를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

2014년 독일 괴팅엔에서 열린 역사가의 날에서 인터뷰 중인 울리히 본거트만
 2014년 독일 괴팅엔에서 열린 역사가의 날에서 인터뷰 중인 울리히 본거트만
ⓒ wochenschau-Verlag

관련사진보기


- 독일에서는 여러 출판사가 다양한 역사책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역사책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 교과서의 다양성은 어느 정도로 중요한가요.
"독일에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독립된 주 정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프러이센의 역사 교과서는 바이에른의 역사 교과서와 달랐습니다. 독일 정부는 항상 자유주의적으로 더 많은 교과서를 내도록 허용했습니다. 교사들과 출판사들도 항상 더 나은 책을 낼수 있도록 박차를 가했어요.

심지어는 나치 독재 시대에도 여러 출판사로부터 다양한 교과서나 나왔습니다. 동독 독재 체제에서만 사회주의 사상을 위해서 오직 하나의 역사 교과서가 나왔습니다.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자유를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교과서에 포함된 주요 내용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교과서는 항상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독일 나치 군대에 대한 묘사와 비스마르크의 정치적 역할 등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역사 문화입니다."

"정부가 학생들의 의심까지 막을 수는 없다"

- 만약 독일 내 모든 학교에 하나의 국정 교과서가 사용된다면 어떤 결과가 예상됩니까. 혹시 장점 같은 것도 있을까요?
"장점이 있다면 엄청나게 줄어드는 '비용'이겠죠. 하지만 16개 주 정부가 있는 독일에서는 절대로 하나의 역사 교과서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의 주 정부가 하나의 교과서만 허용한다면, 모든 지식인들과 그곳의 다른 출판사들이 즉각 일어서 그 교과서가 틀렸거나 일방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교사들은 그러면 수업에서 항상 이야기 할 것입니다. 정부가 어떤 말도 안 되는 것을 규정했다고요. 만약 교사들이 스스로 교과서를 선택했다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요.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들이 항상 정부의 기준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정부의 기준에 반대되는 의견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건 독일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공무원(교사)의 충성은 오직 헌법적 가치에 한해서 유효합니다."

- 한국는 정부가 이미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어요. 역사 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요?
"역사 학문은 항상 갈등이 있으며, 최종적으로 합의된 생각이란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나치 때 교사들은 교과서를 다루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의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고, 학생들은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정부는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독일 역사교사협회는 어떤 곳?
독일 역사교사협회
 독일 역사교사협회
ⓒ VGD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독일 역사교사협회는 1913년에 처음 설립돼 100년이 넘은 역사 교사 협의회다. 독일 전체 7만여 명의 역사 교사 중 약 3200명이 가입돼 있으며 대부분이 김나지움(독일 중등교육기관, 우리나라의 인문계 고교와 비슷하다) 교사들이다.

이 단체는 역사 교사들의 이익집단으로서 교사들의 임금, 교수 환경, 교수 연수 등에 대한 정책 및 실무를 담당한다. 2년마다 '역사가의 날' 행사를 열고 역사 교육 전문 잡지를 발간해 역사 교육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최근에는 역사 교과목을 정치, 지리와 함께 '사회교과목' 안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교과목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 중이며, 독일의 여러 역사 관련 기념물이나 역사적 장소를 방문하는 '기억 문화'에 중점을 둔 역사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국정교과서, #역사교과서, #독일 역사교과서, #독일 역사교육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