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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돌이' 강의라고 했습니다. 어떤 육두문자를 쓰는지, 아니면 얼마나 거친 욕설을 퍼붓고 있지는 알 수 없지만 한때 도올이 하는 강의를 시청하다보면 시도 때도 없이 '삐~ 삐~' 하는 소리가 들려와 그렇게 불렀습니다.

도올이 하는 강의는 항상 격정적이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심심찮게 들려오던 '삐~' 소리는 달아오르는 흥미에 찬물을 끼얹거나 더해가던 집중을 흐트러지게 하는 걸림돌이었습니다.

'삐~' 처리될 내용까지 읽을 수 있는 <도올의 중국일기>

<도올의 중국일기>(1),(2),(3)(지은이 도올 김용옥, 펴낸곳 통나무)는 도올 김용옥이 중국 연변대학에서 생활하며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입니다. 도올의 일기는 2014년 9월 7일부터 시작됩니다.

일기형식? 그날 있었던 일들, 일거수일투족을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으니 일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던 그 어떤 강의처럼 '삐~' 처리되는 부분이 없어 훨씬 더 격정적이고 보다 더 거침없습니다. 거대한 물결로 맞아들여야 하는 서사시 같은 내용을 품은 커다란 울림입니다.

너무 소소하다 싶을 만큼 일상적인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커튼 집에 가 커튼을 골라 흥정하고, 음식집에 가 음식을 고르는 장면은 영락없는 범부의 모습입니다. 시원하게 싸댄 똥 이야기, 개를 잡아서 늘어놓은 사진 등은 야만적이다 싶을 만큼 노골적입니다.

촬영이 금지된 곳에서 몰래 사진을 찍다 공안에게 걸려 사진을 삭제당하는 수모는 비록 그것이 기록을 위한 도전(?)이었다 할지라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반성의 글로 읽어집니다.

하지만 역사를 대하고, 유적으로 남아있는 고구려를 찾아 나선 도올의 기록은 '삐~' 소리로 처리될 게 뻔할 만큼 격정적이고, 열정적이고, 직설적이지만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도올 일기는 깊고 뜨겁습니다. 

'동북공정'은 우파 국수주의자들과 <조선일보>가 긁어 만든 부스럼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사건은 조선일보사에서 1993년에 제멋대로 전시한 '아! 고구려! 1천5백년 전 집안 고분벽화' 운운하는 이벤트였을 거에요. 그 전시회는 한국인의 감정을 흥기시키고 엄청난 인구를 동원해서 엄청나게 흥행에도 성공한 획기적인 전시회였겠지만, 결코 세부적인 정당한 합의의 프로세스를 거친 이벤트는 아니었다. - <도올의 중국일기>(1) 288쪽

위 내용은 도올이 연변대학 사학과에 재직 중인 정경일(鄭京日)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정경일 교수는 1979년생 조선족 동포로, 27세에 연변대학 사학과 전체교수의 사인(동의)으로 교수가 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정경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동북공정은 우파 국수주의자들의 무분별한 행동과 1993년 조선일보사에서 개최한 '아! 고구려! 1천5백년 전 집안 고분벽화'로 긁어 만든 부스럼 같은 결과물이라는 설명입니다.

조선일보사가 고구려 전시회를 하고, 한국인의 사주에 의해 출행도, 청룡도, 백호도, 현무도와 같은 벽화를 무지막지하게 도려내는 천인공노할 도굴사건으로 이어졌으니 중국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도올 인생을 혁명시키고 천재를 반성하게 한 여행

이도백하를 지나는데 달빛에 흰눈덮힌 백두산 정상이 어른거린다. 연길에 밤 11시 30분에 도착하였다. 나의 인생을 혁명시킨 여행이었다. - <도올의 중국일기>(3) 349쪽

도올은 '나의 인생을 혁명시킨 여행이었다'라는 말로 3권을 갈무리합니다. 도올은 어떤 여행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기에 '인생을 혁명시킨 여행'이라고 하였을지가 궁금합니다.

도올이 일기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혁명시킨 여행이라고 하는 여행은 10월 2일부터 10월 6일까지 이어진 4박 5일간의 여행입니다. 도올은 10월 2일 연길을 떠나 아직 고구려의 흔적이 촘촘하게 남아있는 환인(桓仁) 지역과 집안(集安) 지역을 둘러봅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과 왕릉도 가보고 오하분, 국내성, 마천왕릉, 천추묘, 소수림왕릉, 서천왕릉, 압록강변, 국동대협, 염모총, 환문총 등을 찾아갑니다. 두 발로 걷고, 두 눈으로 살피고, 가슴과 식견으로 더듬어 나가는 여정은 한순간 한순간이 감격이며 격정입니다.

도올이 유족만을 찾고 유적만을 더듬은 건 아닙니다. 사람도 만났습니다. 조선족들 생활에 남아있는 정도 찾았습니다. 천진한 웃음도 보았고 투박한 말투 속에 남아있는 순박함도 느꼈습니다.

고구려기행을 함께 하는 일행은 끼니도 건너 뛰고 잠도 설치는 강행군입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격정적이라, 이 과정을 도올이 텔레비전에 나와 강연형태로 설명했다면 분명 '삐~ 삐~'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북한 사회의 모든 것은 아직도 호기심의 대상이다. "종북좌빨"을 돼지멱따듯 외쳐대는 종남우빨들에게 고국의 산하조차 저주의 대상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민족의 살길은 남·북이 하나 되는 길 외로는 어떠한 다른 우회도로가 없다. - <도올의 중국일기>(3), 294쪽

그런 천재가 요번 여행을 통하여 처절하게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를 얻었고, 기술된 역사가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니 하여튼 "고구려 기행 약발"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 <도올의 중국일기>(3), 337쪽

고구려를 돌아보는 도올의 눈은 그냥 여행객의 눈이 아닙니다. 맹수의 눈빛만큼이나 날카롭게 역사적 진실을 직시했을 겁니다. 고구려를 보고, 고구려를 더듬으며 느낀 소감을 일기를 통해 전하는 도올의 설명은 차라리 포효하는 울부짖음입니다.

도올과 함께 여행을 한 16인(운전수 포함) 일행 중에는 최무영 교수도 있었고, 이금숙 교수도 있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연변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여행을 함께한 일행은 버스 간에서 학술토론 세미나를 갖습니다.

그 일행 중 한 명인 최무영 교수, 도올이 '그런 천재'라고 설명하고 있는 최무영 교수는 그동안 공부했던 역사, 기술된 역사가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는지를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삐~' 소리로 처리하고 싶은 부분

일기는 지극히 사적인 기록입니다. 그러함에도 도올이 쓴 일기 중 일부분을 '삐~' 소리음으로 처리하고 싶은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나는 고구려를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사가 대한민국 역사인가? 대한민국 역사는 실제로 1948년 이후의 짧은 시간에 국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는 무엇인가? 고구려 역사는 과연 한국사의 일부분일까? 결국 "한국사"라는 개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 도올의 중국일기>(1) 285쪽

독백을 하듯이, 푸념을 하듯이 기록하고 있는 이 부분, '대한민국역사는 실제로 1948년 이후의 짧은 시간에 국한되는 것이다'는 내용은 '삐~'소리로 처리하고 싶습니다. 도올이 지칭한 '종남우빨'들, 임시정부로 부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는 극우 인사들에게 자칫 건국절을 주장할 명분으로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도올의 중국일기>는 도올 인생을 혁명시킨 여행, 그런 여행을 담아낸 여정, 매 순간을 긴장시키거나 흥분시키는 느낌표 같은 내용입니다. 천재 학자를 반성하게 만든 역사적 진실, 도올이 더듬어 간 흔적들은 화보집에 버금갈 만큼 질 좋고 많은 수의 사진들이 현장감을 더해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올의 중국일기>는 도올 인생만을 혁명시킨 게 아니라 고구려 역사를 설화쯤으로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 실체를 보여줘 고구려에 대한 인식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또 다른 혁명으로 이어질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도올의 중국일기>(1),(2),(3) (지은이 도올 김용옥 / 펴낸곳 통나무 / 2015년 10월 3일 / 값 각 19,000원>



도올의 중국일기 1

도올 김용옥 지음, 통나무(2015)


태그:#도올의 중국일기, #도올 김용옥,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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