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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서유럽의 부자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방문하는 도시.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코토르 사람들은 가난하다.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서유럽의 부자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방문하는 도시.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코토르 사람들은 가난하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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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역사를 알려주듯 코토르에는 중세시대 건축물이 꽤 있다. 1500년 전쯤에 큰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고 했다.
 도시의 역사를 알려주듯 코토르에는 중세시대 건축물이 꽤 있다. 1500년 전쯤에 큰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고 했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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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르의 풍광은 아름답다. 깎아놓은 듯한 바위산과 고성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빈 듯한 느낌이 든다.
 코토르의 풍광은 아름답다. 깎아놓은 듯한 바위산과 고성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빈 듯한 느낌이 든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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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코토르. 폐허 뒤 더없이 푸른하늘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몇 해 전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코토르. 폐허 뒤 더없이 푸른하늘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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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덮은 폐허


1500년 전과 꼭 같은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
소녀의 아버지는 이웃 소년을 구하다 기둥에 깔렸다
못 마시던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 해였다

티토*의 별장은 유리창 하나까지 성한 게 없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별장을 수리하던 아버지는 해고됐다
못 마시던 술은 더 늘었다

소녀와 엄마는 빈 방을 걸레질 해 여행객을 받았다
싸구려 소시지와 주워온 양파로 수프를 끓여 팔았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영어를 배워야한다고 했다
팔게 없었던 소녀는 몸을 팔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소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1500년 전과 꼭 같은 지진이 도시를 덮쳤다
멀쩡한 건 마을을 둘러싼 산 위의 고성(古城)뿐
소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무너졌다

두브로브니크발 코토르행 막차를 기다리는 소녀
서툰 영어로는 흥정이 쉽지 않고
엄마의 울음 곁으로 아버지의 술병이 뒹굴었다

폐허를 덮은 폐허
우리는 모두 폐허에서 왔다.

* 요시프 티토(Josip Broz Tito):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정치가. 크로아티아 공산당 지방위원과 당 서기장을 지냈고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서 인민해방군 총사령관과 해방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이후 몬테네그로를 포함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이 됐다.


태그:#몬테네그로, #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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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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