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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왼쪽부터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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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75) 국사편찬위(아래 국편) 위원장이 국정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임명한 최몽룡(69) 서울대 명예교수와 신형식(76)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모두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국정제로 나온 <국사>교과서를 만든 인사들이다. 같은 시기에 김 국편위원장도 <국사>교과서 제작에 참여했다.

김정배, 노태우 정부 교과서 호흡 맞춘 2명 대표집필진 임명

1980·90년대에 나온 국정 중고교<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노태우 정부 시절인 지난 1990년 3월 1일자(5차 교육과정)로 나온 고교<국사>(상)(하)권은 김정배 국편위원장과 신형식 교수가 연구진으로 참여하고, 최몽룡 교수가 집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당시 연구진과 집필진은 각각 12명과 9명이었다. 최 교수는 고대편 집필을 맡았다.

같은 시기에 나온 중학<국사>(상)(하)권 교과서의 집필에도 김 국편위원장과 신 교수가 나란히 참여했다. 두 인물 모두 고대사를 담당했다.

김 국편위원장과 신 교수는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2년 3월 1일자(4차 교육과정)에 나온 중학<국사>(상)(하)권 교과서의 호흡도 함께 맞췄다. 김 국편위원장은 연구진에, 신 교수는 집필진에 참여했다.

같은 시기 나온 고교<국사>(상)(하)권 교과서에는 김 국편위원장만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1990년 3월 1일자(5차 교육과정)로 나온 고교<국사>(상) 교과서 맨 뒷장.
 1990년 3월 1일자(5차 교육과정)로 나온 고교<국사>(상) 교과서 맨 뒷장.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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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정부로 들어선 뒤엔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최 교수 혼자 국정교과서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1996년 3월 1일자(6차 교육과정)에 나온 고교<국사>(상)(하)권 교과서의 집필을 맡았고, 중학<국사>(상)(하)권에서는 연구를 맡았다. 이어 2002년 3월 1일자(7차 교육과정)에 나온 중학<국사>교과서에서도 집필을 맡았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 시절에 나온 중고교<국사> 국정교과서는 교과서라기보다는 정권 찬양 도구였다는 게 다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이런 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3명이 거의 30년 가까이 흐른 뒤 약속이나 한 듯 국정제 집필진으로 부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시대역행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사정권 시절 국정교과서 참여세력의 화려한 부활

이에 대해 김 국편위원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김 국편위원장의 핵심 측근은 김 국편위원장의 1980년대 교과서 제작 참여에 대해 "국편위원장은 고대사 전공이어서 '전두환 찬양' 내용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김 국편위원장과 신 교수는 지난 2013년 9월 11일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지지' 성명서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 당시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독재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 두 인사를 포함한 23명의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성명에서 "역사교과서가 정쟁의 도구가 되고 있는 오늘의 이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국편의 검정을 최종 통과한 교과서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을 것이다. 논란의 표적이 되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도 교육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태그:#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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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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