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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컬러TV가 시작된 시대에 등장하여(1966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다종 다양한 모양새를 가진 인형들과 인물들이 등장해 상황극을 연출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내면 세계와 이웃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가장 일반적인 가치에 바탕을 둔 도움말을 들려준다.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이는 갓난 아기 때부터 <세서미 스트리트>는 친구가 되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준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태를 반영해야 하는 방송극의 숙명은 <세서미 스트리트>에 출연하는 인형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제작진은 최근 몇 년 사이 극형식과 캐릭터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단행했다. 

캐릭터들이 지닌 아날로그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되,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들의 유명세를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온라인 프로그램을 더욱 풍부하게 꾸몄다. 새로 꾸며진 프로그램에서는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한데, 그 주인공이 드디어 세상에 공개됐다. 지난 14일 디지털 스토리북 '위 아 어메이징'(We're Amazing) 1,2,3에서였다. 온라인프로그램이라 언제든지 접속하여 이용할 수 있다(보러가기).

<세서미 스트리트> 새 캐릭터, '줄리아'

새로운 캐릭터 '줄리아'(중간)를 등장시킨 <세서미 스트리트> 디지털 스토리북 '위 아 어메이징'(We're Amazing) 1,2,3
 새로운 캐릭터 '줄리아'(중간)를 등장시킨 <세서미 스트리트> 디지털 스토리북 '위 아 어메이징'(We're Amazing) 1,2,3
ⓒ 세서미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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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색 머리카락, 동그스름한 얼굴형, 푸른 색의 커다란 눈동자, 그러나 초점은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Julia(줄리아), 그녀는 자폐증후군(ASD, Autism Spectrum Disorder)을 앓고 있다.

자폐 아동이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은 그녀가 처음이다. 이는 미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파를 던졌다. 사회관계망과 주요 미국 언론은 우선 그녀의 등장에 열띤 관심과 호응으로 화답해 주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조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자폐증후군이 워낙 다양한 종류와 형태로 나타나며, 한두 가지의 예로는 그 모든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껄끄러워 하고 기피하는 이슈를 선뜻 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뭔가 비장한 각오와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부모들의 반응과 시청자들의 동향을 분석하는 진네트 베탕쿠르 박사는 지난 21일 <피플>지(The People)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진의 입장을 여과없이 전달했다.

"우리는 정상적인 아이들에게 자폐아들이 가진 여러가지 특징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자폐아들의 행동에는 어떤 방정식 같은 것이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뭔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거나 아주 안 좋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손뼉을 쳐서 소리를 내려고 하지요. 보통 아이들도 사용하는 소통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자폐아들에게는 보편적입니다.

다만 그 표현이 약간 다르죠. 이러한 행동 방식들을 일반화시키고 자주 알리게 되면 자폐아들과 지내는 것이 쉬워질 겁니다. 우리는 그러한 행동 양식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되도록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었죠. 우리의 미션은 언제나 같습니다. 아이들을 똑똑하게 만들면서, 친절한 성격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왜 여자 아이였을까

줄리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3년여에 걸친 연구 과정이 필요했다. 연구진의 고민이 겹쳐진 곳은 성별을 결정하는 문제였다. 남자로 할 것인지, 여자로 할 것인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홈페이지에는 자폐인구의 분포와 동향분석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자료가 정리되어있다. 이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자폐 아동은 평균 68명당 1명꼴이라고 한다. 의외로 많은 숫자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성별로 구분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남자 아이는 무려 42명당 1명꼴이고, 여자 아이는 189명당 1명꼴로 자폐아라고 한다. 남자 아이에게서 자폐증후군이 여아에 비해 다섯 배나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정설이다(남자에게서 자폐증후군이 여자보다 높게 나타나는 것은 생물학적 원인에 있다. 자폐증후군은 X염색체에서 PTCHD1라 불리는 유전자가 아예 없거나 소멸되었을 때 나타난다. X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여자는 하나밖에 가지지 못한 남자보다 자폐증후군에서 벗어날 확률이 더 높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폐아 캐릭터로는 남자 아이가 더 적합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쉐리 웨스틴은 22일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왜 남자 아이로 만들지 않았냐고요? 우리는 개발 기간 내내 전문 연구자들의 의견에 귀기울였습니다. 여자 아이 캐릭터로 할 것을 그들이 제안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질문이 많았어요. 그러나 그들의 설명을 차근차근 듣고 나니 곧 수긍하게 되더라구요.

자폐증이 남자 아이들에게 보편화된 현상이라는 것이 (캐릭터를) 여자 아이로 정하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 아이에게서도 자폐아적 현상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곧 절감하게 되었거든요."

우려의 시선도 있어

엘모와 놀고 있는 줄리아
 엘모와 놀고 있는 줄리아
ⓒ 세서미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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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줄리아를 디지털 스토리북인 '위 아 어메이징 1,2,3'에 출연시키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자폐아를 키우고 있는 가정에서 점점 더 디지털 매체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시장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부모나 아동들이 더 이상 자폐증으로 불편해하지 않고 당당해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폐아들이 일상 생활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함은 무엇일까? 아마도 '편견과 차별'이  가장 큰 벽이 아닐까 싶다. 편견과 차별은 현실에서는 곧 따돌림으로 변형되어 그 공격성이 높아진다. 자폐아들이 겪는 차별과 따돌림은 의외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미 국립 자폐 연합회(National Autism Association)에서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자폐아는 보통 아이들보다 무려 다섯 배나 많게 또래 집단으로부터 '왕따'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 12%는 생일 파티에 단 한번도 초대 받은 적이 없으며 6%는 스포츠나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팀에 뽑혀본 적이 있으며, 3%는 매일 홀로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자 아이는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보통 남자 아이들의 자폐적 행동은 어느 정도 일반화되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반면 여자 아이가 자폐적 증상으로 색다른 행동을 하면 즉각 시선을 끌게 되고, 따돌림을 집중적으로 받게될 확률도 높아지게 된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의도와 목적은 오직 한 가지다. 줄리아를 통해서 자폐증은 그 어떤 차이나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한다. 베탕쿠르 박사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폐증에 대해선 관대해지고 폭넓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편해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68명 당 한 명 꼴로 자폐 아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따돌림에 시달리고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이 '다름'이 아닌 '같음'을 공유하고 나누도록 하려는 겁니다.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며, 자폐 아동들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커뮤니티의 한 일원으로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줄리아의 역할입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세서미 스트리트>의 '좋은 의도'와 '의욕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폐아를 가진 부모와 그의 가족들은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세간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증폭 시킬 수 있다고 본다.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세간의 반론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받는 것은  반백신주의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이다. 반백신주의자들은 자폐증이 백신 부작용에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제약회사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가며 홍보전을 펼치는데, 그 거대한 음모의 한 단편이 바로 <세서미 스트리트>라는 것이다. 다소 황당하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러한 반백신주의자들의 주장은 의외로 설득력 있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자료를 뒤지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6년도부터 자폐아의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게 빨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간접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자폐아 일인당 평균 의료비용은 2015년 기준 연 1만700달러(한화로 약 1217만 원)에 달한다. 물론 이것은 고스란히 가계비용의 부담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증인 경우에는 최고 연간 6만 달러(6828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일반 아동이 소비하는 평균 비용인 연간 5000달러(569만 원)에 비한다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특히 저소득층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액수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료보험이 정착되지 않은 미국에서는 자연스레 치료를 기피한다든가, 치료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폐아의 증가, 그냥 두고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자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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