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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지구 반대편 먼 이국 땅으로 가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닉네임 빅맥)의 모습을 글로 담아봅니다. 이 글을 통해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백팩커에서 생활하는 동안 큰애는 마음이 맞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난 모양이다. 그 친구가 멜버른에 있는 육우 가공 공장에 대한 정보를 들어 와서 둘은 3일 동안 약 2000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그 곳으로 갔다. 직업소개소를 통하면 임금의 일정 부분을 에이전시에게 떼이므로 직접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을 새로운 친구가 알아 왔던 것이다.

멜버른 시 외곽에 있는 육우 공장들을 다니면서 직접 이력서를 내서 하드윅스(Hardwicks)라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작정 들이미는 것이다. 공장 리셉션에 가서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니까 인사담당자를 불러 줬다고 한다. 그 사람과 간단하게 면접을 한 후 워크 레터(Work Letter)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기다리니까 연락이 왔다.

한인에게 못 받았던 '사람 대접', 호주인에게 받았다

호주 멜버른 외곽에 있는 육우가공공장이다.
▲ 큰애가 제대로 잡은 첫 직장 하드윅스 호주 멜버른 외곽에 있는 육우가공공장이다.
ⓒ 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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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큰애는 호주에서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항의를 받을지 모르지만, 아이에 따르면 일부 호주 한인 교포들은 워킹 홀리데이를 온 한국 학생들을 '노예'로 취급한다. 해고를 무기로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일을 시키고, 페이도 적다. 반면에 호주인들이 운영하는 공장은 지정된 시간에만 일을 시키고, 페이도 훨씬 많고, 주말이나 야간작업을 하면 그에 맞게 임금을 지급한다.

큰애가 호주에 체류하면서 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모텔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보았다. 모텔 주인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나쁜 주인을 만나면 대응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그 곳을 나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수준의 일자리는 많으니까 참지 말고 다른 곳을 찾으라는 것이다. 큰애도 그렇게 몇 차례 일자리를 옮기면서 비교적 괜찮은 곳을 찾은 것이다.

큰애가 일했던 육우공장은 하루에 양을 5천 마리 이상, 소는 1천 마리 가까이 처리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공장이다.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워커, 슈퍼바이저, 매니저, 사장까지 4단계로 구성된다. 워커는 실제로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계층으로 이들을 지휘하는 슈퍼바이저와 함께 공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역할을 하며, 시급으로 급여를 받는다. 매니저는 사무업무를 보는 정규직으로 급여를 연봉으로 받는다고 한다.

워커의 담당 업무를 포지션이라고 하는데, 포지션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 가장 높은 포지션은 '킬 플로어'(Kill Floor)라고 하여 도살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시급의 출발점이 50불 이상이라고 한다.

일반 워커의 시급은 22불부터 시작하고, 슈퍼바이저의 시급은 30불부터 시작한다. 시급은 근무 기간이 길어지면 올라가는데 큰애는 그만두기 직전에 25.5불을 받았다. 보통 8시간을 근무하는데 공장이 바빠서 초과노동을 하면 시급은 33불로 올라간다. 시내에서 홀서빙 시급이 12불, 비교적 힘든 청소가 14불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곳의 임금은 두 배가 넘는 셈이다.

큰애는 호주 육우 가공 공장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인 가게에서도 못 받아 본 대접이었다.
 큰애는 호주 육우 가공 공장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인 가게에서도 못 받아 본 대접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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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새벽 4시에 킬 플로어에서 도살을 시작하면 이어서 가죽을 벗기는 등 출하 가능한 상태로 육우가 가공된다. 후공정에 일하는 사람들은 공정 시간에 맞춰 순차적으로 출근한다.

큰애가 일했던 포지션은 '로드아웃'(Load Out)이라고 하여 도살되어 가공된 소를 출하 하는 곳이다.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2교대로 근무한다.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렇게 근무 시간이 나뉘는데 큰애는 주로 야간조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로드 아웃 포지션은 가장 적은 숙련도를 요구하므로 여기에 주로 워킹 홀리데이 중인 외국 학생들이 배치된다. 물론 그 전 공정에서도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청소나 정리 작업도 이 학생들이 담당한다. 슈퍼바이저는 각 포지션의 워커들을 지휘하여 실무적으로 공장을 운영하는 계층이다.

큰애 말에 의하면 슈퍼바이저를 잘 만나야 근무가 편하다고 한다. 큰애가 만난 슈퍼바이저는 워커들과 같이 일을 하는 부류였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숙련도가 낮은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을 보조적으로 활용한다. 한마디로 최고로 좋은(?)사람을 만난 셈이다. 붙임성이 좋은 편인 큰애는 슈퍼바이저와 친해져서 쉬는 시간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한국에서 이제 막 호주로 온 신참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을 공장에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받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호주 매니저 '심복'처럼 군 한국인 학생

'소개비'는 고참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이 돈은 버는 또 다른 수단이다. 고임금이 지급되는 육우 공장은 신참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이 구하기 힘든 일자리이다. 인터넷에 일자리 정보를 올리면 신참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이 연락을 한다. 소개비는 보통 1000달러. 우리 돈으로 100만원이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주일만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므로 협상은 쉽게 이루어진다.

큰애는 아직 돈을 밝히는(?)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매니저가 요청해서 두 번 정도 소개를 해주었다고 한다. 큰애가 취직한 공장은 처음에는 한국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큰애와 큰애 친구가 최초로 취직한 한국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소문이 나면서 한국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워킹 홀리데이 커트라인 나이에 거의 걸릴 정도로 나이가 많은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돈 욕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매니저와 친하게 지내면서 학생 소개를 적극적으로 하고, 집을 빌려서 렌트도 하며 가외로 돈을 많이 벌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매니저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를 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 워커는 호주인이든 한국인이든 차별이 없었는데, 이 친구가 매니저에게 한국 학생들은 약자니까 무슨 일이든 시켜도 괜찮다고 한 것이다. 덕분에 소똥 치우기, 공장 페인트 칠하기 등 그 동안 하지 않았던 더러운 일이 한국 학생들에게 추가되었다.

한국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하여 말썽도 생기고 했지만 매니저 입장에서는 심복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냥 넘어 갔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호주 정부는 농장이나 공장 같은 곳에서 3개월 이상 일하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1년 연장해준다. 기간 연장을 위해서는 신청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 학생이 서류를 하나 빼먹고 제출하는 바람에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것이다.

1개월 내에 출국하라는 호주 정부의 통지에 따라 이 학생은 공장을 나갔지만, 후유증이 많았다고 한다. 자기가 운영하던 렌트하우스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고, 거기에 살던 학생들이 맡겨 놓았던 보증금도 떼먹고 가버린 것이다. 공장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이유로 이민성의 조사를 받고 벌금을 부과 받았다.

워킹 홀리데이 학생들은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을 선호한다. 직장을 옮기면 공백이 생기고 그 동안에는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원이 자주 바뀌는 것은 공장에서도 바라지 않는 것이므로, 편법으로 법정 노동 기간 한도인 6개월을 넘겨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로는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피해를 준 씁쓸한 기억이었다고 한다.

나는 큰애가 항복하고 공부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다. 앞 길이 9만리인 청춘이 조금 더 방황의 시간을 가진다고 해서 지나치게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워킹 홀리데이 비자 기간이 끝나겠지. 그러면 큰애는 어쩔 수 없이 진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위안을 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호주, #워킹홀리데이, #워홀러, #청년실업,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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