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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정원의 바로크식 건물
 수도원 정원의 바로크식 건물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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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수도원 정원으로 들어간다. 정원 한가운데 분수가 있고, 길목 양옆으로 원뿔 모양의 침엽수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정면으로 나가면 1층짜리 단아한 건물이 나타난다. 벽은 흰색과 분홍색이고, 지붕은 검은색 바로크·로코코 양식 건물이다. 이 건물은 1747~48년 토마스 파우어(Thomas Pauer) 수도원장 시절 만들어졌다. 현재 이곳은 카페로 운영되고, 저녁과 주말에는 연주회가 열린다.

여름철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상설연주회가 있고, 주중에도 수시로 연주회를 연다. 이곳 수도원의 문화와 관광을 책임지고 있는 로테네더(Martin Rotheneder)씨는 연주회를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축제'라고 표현한다.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수도원의 건축물이고,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연주회라는 뜻이다. 저녁 공연은 오후 7시 또는 8시에 시작하고, 낮 공연은 9시 30분부터 11시 사이에 시작한다. 요금은 성인은 14유로, 학생은 7유로 정도다.

프레스코화 속의 유럽
 프레스코화 속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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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건물로 들어간다. 이 때 시간이 4시 30분이어서, 연주도 없고 카페도 한가한 편이다. 그런데 이 카페 안에는 이국적인 프레스코화가 있다. 첫눈에 바로크시대 프레스코화의 대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의 작품처럼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작품이 아니라, 베르글(Johann Baptist Wenzel Bergl: 1718-1789)의 작품이다. 이 프레스코화는 1763-1764년 사이에 그려졌다.

티에폴로가 이탈리아 화가라면, 베르글은 오스트리아 화가다. 그는 오스트리아 황실의 인정을 받아 이곳 프레스코화 외에도 쇤브룬 궁전과 호프부르크 궁전의 프레스코화와 벽화를 그렸다. 베르글의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나는 상당히 이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에 대한 환상, 먼 곳에 대한 동경, 조화로운 풍경 같은 모티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는 달리 동식물과 사람이 공존하며 조화롭게 살고 있다.

프레스코화 속의 아시아
 프레스코화 속의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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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그림은 지구촌의 4대륙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유럽은 여자 황제가 왕홀을 들고 앉아 있다. 오스트리아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연상시킨다. 아시아는 터번을 쓴 술탄이 지휘봉을 들고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낙타가 출정을 준비하고 있다. 아메리카는 머리에 깃털을 꽂은 족장이 활을 들고 있다. 동물로는 코끼리가 나온다. 아프리카는 검은 피부의 추장이 흰말의 고삐를 잡고 있다. 이곳에는 호랑이와 사자가 나온다.

그리고 실내에 놓인 식탁이 모두 거울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천정과 벽의 그림이 유리에 반사된다. 그래서 방이 훨씬 더 넓어 보이고 화려해 보인다. 마침 우리 부부를 본 노부부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글쟁이인 내가 오랜만에 모델이 되어본다. 건물을 나온 우리는 정원을 지나 전망대로 올라간다. 이 전망대는 원래 수도원 동북쪽에 지어진 보루였다. 그러나 이제는 보루로써 기능은 사라지고 수도원과 정원을 조망하는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망대가 있는 수도원
 망대가 있는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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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는 수도원과 정원, 더 나가서는 도나우강까지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 보니 수도원이 마치 성채처럼 보인다. 창문을 낸 방이 사방으로 벽을 형성하고, 그 안에 고위성직자 마당(Prälatenhof)과 수도원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북쪽에는 두 개의 망대도 있다. 정원은 어찌나 크고 잘 꾸몄는지, 궁전 규모다. 그러나 쇤브룬 궁전이나 벨베데레 궁전의 정원만큼은 안 되는 것 같다.

수도원 안마당의 분수와 벽화

우리는 이제 현지가이드를 만나 수도원 정문을 들어간다. 정문 위에는 라틴어로 1718년이라 쓰여 있다. 바로크 양식의 현재 수도원 건물은 1702년부터 프란타우어(Jakob Prandtauer: 1660-1726)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했고, 1746년 완공되었다. 그렇다면 1718년은 수도원 정문이 만들어진 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1746년은 수도원 교회가 축성된 해이다.

수도원 정문
 수도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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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양쪽에는 빈의 조각가 마티엘리(Lorenzo Mattielli)가 1716년에 만든 조소상 두 개가  있다. 왼쪽이 11세기 오스트리아 지방의 영주였던 성인 레오폴트(Leopold)이고, 오른쪽이 예루살렘으로의 순례 여행 도중 슈토커라우(Stockerau)에서 죽어 이곳 멜크에 묻힌 성인 콜로만(Koloman이다. 레오폴트는 당시 바벤베르크 가문의 수장으로 이곳 멜크를 중심으로 권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콜로만이 1014년 이곳에 묻힘으로써 멜크는 종교적인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정문과 본 건물 사이에는 마당이 있는데, 문지기 마당(Torwartlhof)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베네딕트홀로 입장할 수 있다. 멜크 수도원이 베네딕트 수도회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베네딕트홀은 외부의 문을 통과할 수는 있지만,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다.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가운데에 분수가 있는 고위 성직자 마당이 나온다. 이 마당은 길이가 84m, 폭이 42m이다. 분수는 콜로만 분수로 1687년 만들어져 멜크 시청 앞 광장에 있었던 것인데, 1722년부터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수도원 안마당의 분수, 박공벽화. 그 뒤로 수도원교회 돔이 보인다.
 수도원 안마당의 분수, 박공벽화. 그 뒤로 수도원교회 돔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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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수 앞에 모여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그녀는 먼저 광장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중앙 박공에 그려진 네 개의 벽화를 설명한다. 이 그림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기본 덕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네 가지 덕목은 정의(Iustitia), 용기(Fortitudo), 지혜(Sapientia), 절제(Temperantia) 또는 중용(Moderatio)으로 플라톤이 이야기했다.

시계가 있는 동쪽이 정의로, 눈을 가린 사람이 칼을 들고 있다. 남쪽이 용기로, 기둥을 들어 올리며 힘을 과시한다. 서쪽이 지혜로, 빛이 비치는 거울을 들고 책을 읽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 빛과 말씀은 지혜를 상징한다. 북쪽이 절제로, 둘 사이에 경쟁하지 말고 양보하고 관용하라는 그림처럼 보인다. 원래 바로크 양식으로 그려졌으나 19세기 중반 사실적인 기법으로 바뀌었고, 1988년 현대적인 기법으로 다시 그려졌다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비숍(Peter Bischof)과 크룸펠(Helmut Krumpel)이다.

베네딕트 수도회 이야기를 들어라

베네딕트 성인상
 베네딕트 성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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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듣고 나서 우리 일행은 수도원 남쪽에 동서로 길게 늘어선 건물 가운데로 들어간다. 이 건물의 길이는 무려 240m나 된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CON STANTIA ET FORTITV DINE'라는 글자를 볼 수 있다. 절제와 용기를 가지라는 뜻으로 보인다. 계단을 오르면 2층 중앙에 황제홀이 있고, 복도에는 황제 초상화가 부착되어 있다. 그 중에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와 그녀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Franz Stephan)의 모습도 보인다.

이곳 황제홀 안에 수도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물을 소개하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모두 11개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 번째 전시실이 말씀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들어라(Höre)'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베네딕트가 걸었던 열두 단계의 길을 보여줌으로써 신을 체험하고 영접하게 만든다. 그런데 보여주는 방식이 상자 속 물건을 통해서다.

12단계 탑
 12단계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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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미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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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세기 민족이동시대 불안이 있었다.
2. 베네딕트는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동굴에 은둔해 살았다.
3. 어떤 신부가 와서 베네딕트에게 부활절의 의미를 알려준다.
4. 목동들도 이 은수사(隱修士)의 내적인 힘과 강함을 알고 그에게 가르침을 부탁한다. 베네딕트는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5. 금욕과 고행을 실천한 베네딕트는 수도사 공동체의 장이 된다. 그리고 수도사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그들은 베네딕트를 멀리하려고 한다. 베네딕트는 자신의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 단계의 상징물이 독배(Gift)다.
6. 베네딕트는 새로운 길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7. 529년 그는 산으로 올라가서 몬테 카지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세운다. 그리고 수도사의 삶을 규정한 규범을 만든다.
8. 수도사들은 기도하고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방해되는 돌을 제거하고 신을 중심에 놓는다.
9. 수도원이 빛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찾아와 의지하고 가르침을 받으며 안식을 찾으려고 한다.
10. 베네딕트는 수도사들과 함께 살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11. 베네딕트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젊은 형제수사들을 만나며 신의 뜻(Gottes Wille)을 알게 된다. 사랑(Liebe)이 계율(Gesetz)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단계의 상징물이 내미는 손(die offene Hand)이다.
12. 베네딕트는 인생 말년 수도원 탑 위에서 위대하고 심오하게 신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저 높은 곳에서 신을 영접하게 된다.

또한 이곳 제1전시실에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약(Regel)을 적은 책이 전시되어 있다. 규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지만,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수도회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네딕트 성인의 삶과 말씀을 요약하는 단어와 문구가 탑의 각층에 적혀 있다. 가장 윗층에서부터 아래로 '신과 세계',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낸다.', '질서와 사랑'이 보인다. 가운데 문 옆에 보이는 단어로는 기도하라, 일하라, 들어라, 신과 함께, 신을 위해 등이 있다.

이곳 전시물의 내용이 종교적이어서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지 가이드는 이 내용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녀도 성 베네딕트 이야기를 들어 아는 정도지,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관광객들의 귀에 그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다. 그저 감을 잡는 수준이다. 나는 이제 이곳에 있는 베네딕트 성인의 동상을 보면서 두 번째 전시실로 이동한다. 그곳부터는 성물과 성화 그리고 성구가 전시되어 있다.

베네딕트 규약을 설명한 책
 베네딕트 규약을 설명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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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멜크 수도원, #수도원 정원, #바로크식 건물, #수도원 안마당 벽화, #박물관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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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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