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애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다.
못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다를 뿐.
못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 다를 뿐.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 다를 뿐.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 <해피비인 블로그> 글 중에서

나는 한 기관의 인권교육팀 일원이다. '찾아가는 장애인권 교육'을 위해 종종 일선 학교를 방문하곤 한다. 특이한 일은 (내가 가는 곳만 유독 그런 것인지)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학교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경사로는 모양만 갖췄을 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휠체어 사용자 강사를 불러놓고 휠체어 접근이 어려워 강의 장소를 옮긴 일도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학교를 휠체어 사용 학생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앞으로 세금으로 지어지는 모든 건축물은 의무적으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인증(아래 BF인증)'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올해 7월 28일 이후 신축하는 학교, 청사, 문화시설 등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의 BF인증이 의무화된다.

BF인증이 대체 뭐길래?

한 초등학교의 출입구 입구이다. 점자블럭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하지 못하도록 화분 등으로 막아두었다.
▲ 가지 못하는 출입구 한 초등학교의 출입구 입구이다. 점자블럭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하지 못하도록 화분 등으로 막아두었다.
ⓒ 강미현

관련사진보기


BF인증이란 건축물이 어린이, 노인, 임산부, 장애인 등 누구에게나 편리하게 이용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부터 시공까지 심사하여 인증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건축물만큼은,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건축물 등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권리로서 보장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동안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일정 규모와 용도의 건물이면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왔다. 하지만 그 대상이 대형건물 위주여서 현실적이지 못했다. 길가다 목이 말라도 편의점은 입구 턱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형마트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늘어나는 전동휠체어 사용자에게 맞는 치수변화도 시급하다. 화장실의 경우가 특히 심각하며, 용변이 급할 때 마음대로 갈 수가 없어서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사실 도시의 구석구석이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애라는 것이 개인의 차원에서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라는 사회적 장벽부터 제거되어 삶의 주체로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일상에서의 접근권은 생존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교육을 받아야 하며 돈을 벌어야 살 수가 있다. 당연하게 시민으로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해 애원하듯이 권리를 주장하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답답하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든 시설과 설비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기본 권리가 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권리, 장애인에게도 있다

급식소로 가는 통로바닥이다. 움푹진푹한 이 통로를 통해 아이들이 급식소에 간다. 휠체어 사용자 학생이 있는 학교이다.
▲ 휠체어 사용 학생이 있는 학교의 급식소 가는길 급식소로 가는 통로바닥이다. 움푹진푹한 이 통로를 통해 아이들이 급식소에 간다. 휠체어 사용자 학생이 있는 학교이다.
ⓒ 강미현

관련사진보기


공공시설의 BF 의무인증과 더불어 공공 및 민간이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편의시설을 설치 및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이 요구된다. 많은 경우 장애인화장실은 창고로 전락하고, 경사로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관리에 소홀하다.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편의시설 설치 대상자들이 법을 위반할 경우 시설주관기관(지자체장 및 교육감 등)은 그 시설 주에게 기간을 정해 편의시설의 설치와 개선을 명할 수 있다.

만약 시정명령을 받고 이행하지 않은 시설 주에게는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 이행강제금은 미래에 대한 의무확보이행을 촉구하는 집행 벌의 성격을 가진다. 이에 제대로 편의시설을 설치할 때까지 매년 1회 반복해서 부과할 수 있다. 이행강제금을 내지 않을 시 국세 체납처분의 예 또는 지방세외수입금의 징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징수한다.

이뿐만 아니다. 시정명령을 받고 기간 내에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도 함께 부과된다. 이때 벌금은 시설주 뿐 아니라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 등 위반행위를 한 개인에게도 과한다.

장애인 편의시설과 BF인증은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복지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장애인 인구는 증가세를 보이고 장애원인 88.9%가 후천적 질환이나 사고로 인해 발생한다. 특히 질환(56.2%)이 사고(32.7%)보다 더 높은 상황이다. 즉 장애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곧 우리 모두를 위한 복지가 된다.

공공시설의 BF인증이 의무화가 되면서 도시에서의 많은 변화를 기대해본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인증의 대부분 규정이 휠체어 사용자 위주이며 청각, 시각, 발달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미약하다. 무엇보다 이번 BF의무 인증대상이 신축건축물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시설, 도로 등을 포함하여 우리의 일상이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이 되어야 하는데 특히 중요한 교통시설, 도로 등이 의무화에서 빠져 아쉽기 그지없다.

BF 의무인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초단계이다. 도시 내 BF인증 시설들이 많아져서 누구나가 살기 편한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BF인증 의무 대상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항상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의무를 넘어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현을 믿어보고,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에의 빠른 보완책 마련을 요구해본다.

덧붙이는 글 | 참고 :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보건복지부

강미현 시민기자는 건축사사무소 예감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새전북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BF인증,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장애인 편의시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효형출판)저자, 건축스튜디오 사람 공동대표, 건축사사무소 예감 cckang.kr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