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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석림
 황하석림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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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주시 황하에서 양가죽뗏목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
 난주시 황하에서 양가죽뗏목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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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섬진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맑은 섬진강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우리 마음도 맑아진다.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이면 더 맑아진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을 보고 있으면 바람 한 줄기 마음으로 불어오고, 투명한 물속 바닥 모래 사이에서 꿈틀대는 모래무지도 재첩 조개를 건드린다. 그래서 섬진강을 좋아한다.

그런데 황토물이 흐르는 황하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큰 홍수 때나 볼 수 있었던 붉은 황토물이 사철 흐른다는 황하는 얼마나 도도할까? 학창 시절 때 배운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니, 백 년이 지나도 황하의 붉은 황토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백년하청(百年河淸) 하는 말들은 더욱 황하를 궁금하게 만든다.

난주시 중심에 황하가 흐르고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큰 강인 황하는 역시 붉은 황토물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물결 보다 내려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더욱 줄기차다. 붉은 황토물이 출렁이는 거대한 물줄기가 구비 치며 도도하게 흐른다. 황하의 물은 정말 맑아지지 않을 것 같다.

1984년에 조성된 황하모친상이 황하 강가에 세워져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황하모친상 앞에서 드론으로 무슨 광고를 촬영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강변을 중심으로 거대한 물레방아를 비롯한 많은 위락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황하 앞에 몰려든 사람들, 무엇을 보고 있나

옛날 황하를 건널 때 주로 양가죽뗏목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양가죽뗏목을 양가죽을 벗겨 말려서 바람을 넣어 나무 아래에 묶으면 강에서 떠다닐 수 있는 뗏목이다. 조금은 위험하게 보이는데 강가 곳곳에 양가죽뗏목 타는 곳에서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있다.

황하 제1교는 황하에서 제일 먼저 놓은 다리로 1900년 초기에 외국 자본으로 놓은 철교라고 한다. 이 다리는 현재 차량은 다니지 않고, 많은 사람이 다리를 건너거나 다리 위에서 황하를 바라보며 즐기고 있다.

난주시 중심을 흐르는 황하
 난주시 중심을 흐르는 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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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산과 조림 모습
 황토산과 조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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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에서 난주로 오는 고속도로변은 끊임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 푸름을 드러내고 있었고, 온통 노란 물결 해바라기꽃들이 군데군데 모자이크되어 있었다. 그런데 간혹 자갈들만 가득한 벌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고속도로 옆에 뻗어 있는 민둥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물론 군데군데 나무가 우거진 마을이 보이고, 마을 주위에는 푸른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지만, 마을을 지나면 대지는 온통 잡목과 잡풀만 군데군데 자란 황토밭으로 아득하지 시작했다. 사막은 이미 시작되었고, 군데군데 보이는 마을은 물이 솟아나는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다.

고속도로 옆 민둥산 능선들에도 붉은 황토의 모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능선들에 조그마한 나무들이 점점이 줄을 지어 심겨 있었다. 그 수많은 나무를 어떻게 다 길러 저렇게 조림을 해 놓았을까 궁금해질 정도다.

당국에서 그렇게 조림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드러나고 있었다. 해마다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심어놓으면 제대로 살아나는 나무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거의 20 ~30% 정도는 죽어 그곳에 또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심어진 나무들을 지나가는 차장으로 보니 민둥산이 점점이 수놓아진 것 같은 모습이다.

해발높이 2000m 지점을 통과하자 산들엔 바위가 거의 보이지 않고 붉을 황토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수없이 심어놓은 나무들이 산들에 점점이 심겨 있지만, 한바탕 흘러내린 빗물의 흔적들이 선명한 산들엔 여지없이 붉은 황토의 속살들이 드러나고 있다.

황하는 총 5500km 정도로 긴 강이라고 한다. 원래 발원지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다가 중간 황토고원을 지나면서 붉은 황토물이 되었다고 한다. 과연 이 지역에 들어서자 붉은 황토가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그 물이 황토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하다.

난주시는 감숙성에서 인구 약 320만 명 정도의 가장 큰 도시다. 대부분 인구는 한족 중심이고, 해발높이는 약 1600m 정도에 위치한다. 난주시는 석유, 화학, 기계 등 공장이 가득한 중공업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난주시의 하늘엔 매연이 많이 끼어 있다.

2000여 년 전 한나라 때에는 '금성'이라고 했는데, 수나라 때 '난주'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난주시도 천수와 같이 두 산 가운데 형성된 도시여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좁고 길쭉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교통 체증이 심하여, 막힐 때는 동에서 서쪽 끝까지 가는데 2~3시간도 걸린다고 한다.

물이 맑은 황하? 댐에 고인 이곳

유가협댐의 맑은 물
 유가협댐의 맑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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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황하 중에서 물이 아주 맑은 곳이 있다. 이곳은 바로 물이 고여 있는 댐이다. 난주에서 서쪽으로 75km 떨어진 곳에 유가협댐이 있다. 유가협댐은 196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에 완성한 콘크리트댐이다. 댐은 높이는 174m라고 한다.

댐 옆에는 황하박물관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몇 군데 레저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댐은 양 옆 산의 협곡이 아주 좁은 지역을 선택하여 막았기 때문에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돌아들어 가니 거의 바다와 같이 넓다. 물도 아주 맑다. 인공호수의 길이가 65km, 넓이가 4.5km로 고속보트를 타고 끝까지 가는 데 50분이 걸린다.

유가협댐은 보통 가을부터 겨울에 물을 가두고 봄에 물을 빼내어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유가협댐은 입구 쪽으로 유입되는 지류의 강의 물이 흐려서 입구가 황하 특유의 황토물인데, 조금 나아가면 아주 맑다. 물이 맑은 이유는 유입되는 황토가 고인 물로 퇴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50여 분 유가협댐 상류에 황하에서 흘러들어오는 붉은 물줄기가 보인다. 댐의 물도 다시 황톳빛으로 변한다. 상류 지역에는 황토가 흘러들어와 쌓이기 때문에 군데군데 모래를 퍼 올리는 배들이 분주하다. 그래도 강가에는 어느새 황토들이 층을 이루어 쌓여 있다.

유가협댐 상류 퇴적되는 황토층
 유가협댐 상류 퇴적되는 황토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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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협댐 상류에서 모래를 퍼올리는 배
 유가협댐 상류에서 모래를 퍼올리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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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보트가 황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자 바위 모퉁이를 돌아 흐르는 황하의 물살은 더 거칠다. 고속보트가 파 놓은 물살 자국과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황하는 도도하게 아래로 흘러가고 있다.

황하가 돌아 흐르는 물길을 앞에 우뚝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들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운남성 석림을 연상할 정도로 기기묘묘하여 황하석림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붉은 물과 석림의 어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을 이룬다.

항하석림의 선착장에서 내리니 병령사라는 절이 있다. 병령사란 티베트 말로 '만 불, 즉 불상이 많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티베트 사원이다. 병령사는 절벽 중턱에 굴을 파고들어 선 사찰인데, 티베트 특유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승려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부부처럼 보이는 티베트인 두 사람만이 이 병령사를 지키고 있다.

절벽에 있는 병령사
 절벽에 있는 병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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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병령사라는 절보다도 황하석림의 절벽에 파 놓은 많은 석굴이 아쉬움 반, 설렘 반의 묘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유가협댐이 만들어지면서 절벽 아래는 수면에 잠겼고, 이곳에 있던 일부 석굴들은 물속으로 잠겨버렸다고 한다.

이곳 황하석림 절벽에 400여 년 경에 석굴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청나라 때 승려들이 500여 명이 거주할 정도로 컸다고 한다. 석굴들의 규모들은 그리 크지 않지만, 모두 192개의 크고 작은 석굴들이 있다. 석굴에는 많은 불상과 불교 그림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불이다. 이 대불은 당나라 때의 불상인데, 2013년에 다시 복원해 놓았다. 복원하기 이전의 모습은 안내판에 사진으로 남아 있었지만 매끈하게 현대의 불상으로 복원하여 놓은 대불은 완전히 최근에 만들어 놓은 불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속에 잠겨 어쩔 수 없이 옮겨야만 한 불상이 와불이라고 하는 입적불이다. 이 불상은 400여 년 경에 제작되었는데, 15m나 되는 동굴에 그 길이가 8.64m로 컸기 때문에 복원할 때 아홉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서 옮겼으며, 석굴이 아닌 사찰을 지어 안치해 놓았다. 이처럼 물밑의 석굴들은 불상을 옮기기는 했지만, 물속에 잠겼다고 한다.

황하석림의 모습과 대불
 황하석림의 모습과 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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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령사의 석굴과 불상
 병령사의 석굴과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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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령사의 석굴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석굴 88호 수제동은 서유기의 흔적들을 간직한 사찰이다. 이 사찰은 절벽에 파인 굴 앞을 3층의 사찰 건물로 지어져 있는데, 안에는 큰 굴이 파여 있고, 그곳에 채색된 옷을 입은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병령사 일대의 석굴들은 모두 중국 당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실 여행 중 여러 불교 유적지를 다녀보아도 대부분 당국에서 관리하고 있지 승려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병령사에 있던 티베트인 2명도 석굴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병령사만 관리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7. 29(수)부터 8.6(목)까지 9일 동안 풀꽃산악회 회원 20명은 혜초여행사의 기획으로 신서역길의 중국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신서역기행은 서안에서 천수까지 320km를 버스로 약 5시간, 천수에서 난주까지 33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난주에서 가욕관까지 740km를 기차로 약 8시간, 가욕관에서 돈황까지 40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돈황에서 유원가지 120km를 버스로 2시간, 유원에서 선선까지 620km를 기차로 약 9시간, 선선에서 투루판까지 약 150km를 버스로 약 3시간, 투루판에서 우루무치까지 190km를 버스로 약 3시간이 걸리는 총 2800km의 대장정입니다.
‘버스와 기차로 간 서역기행’은 총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 사막을 가로지르는 신서역기행, (2) 서안(西安), 당나라의 흔적, (3) 진시황과 병마용, (4) 화청지, 양귀비에 대한 기억, (5) 천수, 맥적굴, (6) 난주, 황하와 유가협댐 (7) 만리장성의 시작, 가욕관, (8) 돈황 석굴, 막고굴, (9) 사라진 왕국, 고창고성과 교하고성, (10) 투루판, 사막에 사는 사람들



태그:#황하, #서역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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