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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밀라노. 도시의 상징인 두오모 옥상에서 바라본 밀라노의 모습입니다.
▲ 두오모 옥상에서 바라본 밀라노 이탈리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밀라노. 도시의 상징인 두오모 옥상에서 바라본 밀라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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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인 밀라노(Milano)에서의 첫 날. 이번 이탈리아 미술 기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만나는 날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서는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나마도 한 번에 20명 내외로 15분 정도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예약이 금세 차 버리기 일수죠. 이번 여행에서 두 번 <최후의 만찬>을 만나려 합니다. 저녁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그 첫 번째로 저녁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을 만나기 전에도 만만치 않은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규모나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바티칸 박물관',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 3대 미술관으로 불려도 손색없을 '브레라 미술관'과 다빈치의 그림과 스케치, 라파엘로의 그림과 스케치가 있는 '암브로시아나 미술관', 그리고 밀라노의 중심인 '두오모'까지 숨 쉴틈 없이 달려야 합니다.

브라레 미술관에서 꼭 봐야할 것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첫 일정인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을 향해 열심히 걷습니다. 옛 건물이 시가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피렌체나 시에나, 아시시 같은 작은 도시에 익숙해져 그런지 로마에 비해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밀라노 거리는 걷는 기분부터 다릅니다. 더구나 부쩍 차가워진 아침 공기 때문인지 구글맵을 통해서 검색한 것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집니다. 걷기 중심으로 이번 이탈리아 여행 일정을 짜기는 했지만 밀라노 같은 대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 순간 20대로 보이는 학생들이 바쁜 걸음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들의 목적지도 나와 같은 '브레라 미술관'. 아마 미술관과 같은 건물에 있는 '브레라 아카데미'의 학생들인 것 같습니다.

원래 예수회의 밀라노 본부 수도원이었던 이 곳 '브레라 미술관'은 18세기 후반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원을 받으면서 문화와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술 아카데미와 미술관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입니다. 이어 북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를 발전시킬 계획으로 그간 약탈한 방대한 미술품들을 모아 1809년 현재의 '브레라 미술관'을 개관하죠. 이후 몇 차례의 위기를 겪은 '브레라 미술관'은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건물 1층의 아카데미를 지나 큰 계단을 오르니 미술관 입구가 나타납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찾아온 관람객이 거의 없습니다. 안내 데스크를 지나자 '브라만테 특별전'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나는 특별전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계획한 대로 중세 미술 작품들부터 차근차근 훑어갑니다. 

'브레라 미술관'에서는 꼭 봐야할 핵심적인 작품이 몇 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만날 작품은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입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잠시 만났던 벨리니는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등 베네치아 화파의 스승이자 베네치아 회화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작가입니다.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베네치아 화파의 스승인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이처럼 잔잔하면서도 실감나게 묘사한 그림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 피에타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베네치아 화파의 스승인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이처럼 잔잔하면서도 실감나게 묘사한 그림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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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왼쪽부터 성모 마리아와 십자가에서 막 내려진 예수, 제자 성 요한의 모습입니다. 나는 그림을 보는 순간 세상 어느 그림이 저보다 슬플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다른 작품들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중년의 성모 마리아. 그녀는 싸늘하게 식은 예수의 몸을 안고는 아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고 있습니다. 그리고 못 박힌 상처가 그대로 드러난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마저 메말라 버린 어머니는 가여운 아들의 영혼을 마지막으로 위로하려고 "불쌍한 내 아들, 이제 편히 쉬려무나"라며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이처럼 잔잔하면서도 실감나게 묘사한 그림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성 요한은 슬픔을 겉으로 토해내고 있습니다. 반쯤 넋이 나간 채 시뻘건 눈으로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가장 아꼈던 스승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죠. 그런데, 조반니 벨리니 자신도 자기의 그림에서 그것을 느꼈던 것일까요?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벨리니는 아래로 내린 예수의 왼손 밑에 작은 글씨로 서명을 남겼습니다.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부어 오른 눈에서 비애가 솟구칠 때, 벨리니의 그림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 역시 눈물이 흘러서 그림을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진품이 주는 감동은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합니다. 화집이나 도판으로는 작가와 그림의 감정을 이처럼 진실되게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참을 '피에타' 앞에 서 있다가 잠시 마음을 다스린 후 <피에타> 뒤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나는 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그곳에 바로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생각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그림. 그리고 작품의 구도에 맞는 시선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허리 아래 전시해 놓은 그림. <피에타>에서의 감정이 채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죽은 그리스도>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나는 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습니다.

안드레아 만테냐, '죽은 그리스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조반니 벨리니의 매부이기도 한 만테냐는 이전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과감한 구도로 예수의 죽음을 묘사했습니다.
▲ 죽은 그리스도 안드레아 만테냐, '죽은 그리스도',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조반니 벨리니의 매부이기도 한 만테냐는 이전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과감한 구도로 예수의 죽음을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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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면 이전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과감한 구도가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인체를, 그것도 예수의 주검을 정면이 아닌 발 아래에서 본 모습으로 묘사했다는 것부터 파격 그 자체입니다. 과도한 단축법으로 구성된 원근법은 얼핏 기괴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현실적 비례는 사실적인 묘사와 만나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과 비탄에 빠지게 합니다.

나는 먼저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의 두 발을 봅니다. 이미 염습을 마친 듯, 그 잔인한 상흔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핏자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못 자국은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힘 없이 축 늘어진 두 손의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싸늘하게 식은 몸을 덮고 있는 얇은 천의 사실적인 주름을 지나,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가슴 너머로 고통 속에 죽어간 예수의 얼굴이 보입니다. 전혀 미화되지 않고 이상화되지 않은 사실적인 얼굴. 그 곁에는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얼굴의 성모 마리아가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의 아들, 예수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숙연해집니다.

이처럼, 더할 수 없는 비애를 전혀 새로운 기법과 사실적인 묘사, 은은한 색채로 그려낸 벨리니와 만테냐. 처남과 매부 사이인 이 두 사람의 손에 의해 베네치아 화파와 북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시작됩니다.

기적의 순간, 격정적 구도 속으로

젠틸레 벨리니, 조반니 벨리니,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이 그림은 벨리니 형제가 함께 작업한 대작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이국적인 풍광이 돋보입니다.
▲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 젠틸레 벨리니, 조반니 벨리니,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이 그림은 벨리니 형제가 함께 작업한 대작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이국적인 풍광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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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초 다 포파,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브라만테 특별전에 전시된 이 작품은 화살을 맞고 순교한 성 세바스티아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빈센초 다 포파,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브라만테 특별전에 전시된 이 작품은 화살을 맞고 순교한 성 세바스티아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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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거의 들머리 부분에서 실로 엄청난 두 작품을 보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보려 했던 브라만테의 특별전도 별 생각 없이 다시 스쳐 지나갑니다. 심지어 조반니 벨리니, 젠틸레 벨리니 형제가 공동으로 작업한 대작,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도, 빈센초 다 포파의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도 티치아노의 명작, <성 히에로니무스의 참회>도 멍한 상태로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틴토레토 앞에서 겨우 정신을 차립니다. 틴토레토의 명작, <성 마르코의 시신을 발견하다>입니다.

이 그림은 성 잠피로 자선 단체의 주문으로 그린 그림인데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의 일화를 그린 틴토레토의 연작 중 하나입니다(성 마르코 연작의 다른 작품들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림의 내용은 한 무리의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무덤에서 성 마르코의 시신을 도굴해 베네치아로 옮겼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시신을 발견하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균형과 조화를 넘어 격정적이고 극적인 구도를 제시한 틴토레토의 대표작 성 마르코 연작 중 하나입니다.
▲ 성 마르코의 시신을 발견하다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시신을 발견하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균형과 조화를 넘어 격정적이고 극적인 구도를 제시한 틴토레토의 대표작 성 마르코 연작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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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면에 여러 장면을 함께 배치한 이 그림은 베네치아 화파가 이룩한 성과에 틴토레토의 개성이 더해져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우선 화면 오른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신 한 구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주인공인 성 마르코의 시신은 이미 발견되어 왼편 아래쪽에 앞서 만난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처럼 단축법으로 묘사되어 누워 있죠.

그 혼란스러운 순간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신의 발치에 서서 손을 뻗고 서 있는 한 남자. 그는 시신들을 뒤지고 있는 상인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성 마르코의 현신입니다. 그리고 기적의 순간, 화면 오른편 아래쪽의 한 남자는 오랫동안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악마가 하얀 연기로 변해 사라져 가는 또다른 기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틴토레토는 이 기적의 순간을 중앙이 아니라 왼쪽에 치우친 소실점 속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균형과 조화를 넘어 격정적이고 극적인 구도를 제시한 것이죠. 틴토레토는 또 스승 티치아노가 추구했던 밝고 선명한 색채가 아니라 어둡고 짙은 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거친 붓 터치로 말이죠. 그림에 작가 자신의 감정까지 투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매너리즘 시대입니다(매너리즘과 틴토레토에 대해서는 베네치아 편에서 좀 더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틴토레토의 그림 이후 차근차근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내가 길을 잘못 잡았기 때문일까요? 길쭉하게 이어진 한 전시실에 들어갔더니 갑자기 몇 백 년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데스크에서 받은 안내 책자를 급하게 펴 봅니다. 알고 보니 이 전시실은 주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예지 컬렉션(Collezione Jesi)'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나에게 수많은 도움을 주었던 여행 선배들. 그들의 경험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미안한 말인지만,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 작품들은 사실 좀 시시해 보인다. 왠지 근현대 작가들은 선조들의 영광에 비해 날로 먹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르네상스, 바로크 거장들의 엄청난 작품들을 계속 접하다 보니 간혹 만나는 근현대 작품들은 우선 관심도부터 떨어집니다.

움베르토 보초니, '아케이드에서의 싸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특별 전시실인 '예지 컬렉션'에서는 이 작품 같은 이탈리아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아케이드에서의 싸움 움베르토 보초니, '아케이드에서의 싸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특별 전시실인 '예지 컬렉션'에서는 이 작품 같은 이탈리아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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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에 대한 내 지식이 얕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전 다른 미술관에서도 근현대 작품들은 시간을 핑계삼아 대충 훑어보고 지나간 적이 많습니다. 이곳 '예지 컬렉션'에서도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시하지 못할 명작들을 그냥 슬슬 훑어보며 지나갑니다.

하지만 목이 긴 여인의 초상으로 유명한 모딜리아니가 그린 같은 파리파(에콜 드 파리) 화가 <모이즈 키슬링의 초상>이나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대표 작가 움베르토 보초니의 <아케이드에서의 싸움> 등 몇몇 작품에는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넋 놓고 다니다간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명작들을 (그것들이 너무 많은 탓에)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이 이탈리아란 나라는 한정된 시간의 여행자에겐 정말 잔인한 나라입니다.

(13-2. 브레라 미술관 2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브레라미술관, #조반니벨리니, #만테냐, #밀라노, #이탈리아미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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