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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 아니?>에 실렸습니다. <너, 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파리 동역(Paris Gare de l'Est)
 파리 동역(Paris Gare de l'Est)
ⓒ 임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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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익숙해질 무렵…. 파리를 떠난다. 사실 파리에 머문 13일 동안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크게 깨닫지 못했었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 낯섦과 불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바게트에 살구 잼을 발랐다. 짐을 챙겨 마치 내가 파리지앵이라도 된 양 도시 곳곳을 활보하고 다니며, 어떻게 하면 가장 저렴한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동시에, 이제껏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며 즐거움에 겨워하던 모든 순간이 일상이 되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페펙과 같이 프랑스 코미디쇼를 보며 잘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따라 웃고, 베르나르 아저씨가 퇴근하시면 같이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파리를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아왔을 때, 마치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때가 바로 파리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독일로 떠나기 한 시간 전, 모든 짐을 꾸린 후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방에 넣었다.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메트로를 타고 파리 동역으로 향한다. 파리는 내가 사랑한 도시였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슬펐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익숙해진 이 순간이, 바로 이곳을 떠나기에 가장 알맞은 때인지도 몰랐다. 오후 7시, 프랑크푸르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페펙이 이번 여정에 함께한다는 것. 다음 행선지가 프랑크푸르트로 결정된 것도 사실 페펙 덕분이었다.

우연하게 동행하게 된 독일행

기차 안, 잡지를 열심히 읽고 있는 페펙의 뒷모습
 기차 안, 잡지를 열심히 읽고 있는 페펙의 뒷모습
ⓒ 임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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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이었다. 페펙이 말했다.

"나 이번 토요일에 독일에 갈 거야."

주말을 포함해 며칠 동안 삼촌네 가족을 보러 프랑크푸르트에 간다는 것이었다.

"아, 그럼 잘 갔다 와"라고 말하려던 참에 퍼뜩 생각이 났다.

'으잉? 내가 파리 다음으로 가려고 하던 곳도 프랑크푸르트였는데?'

그래서 페펙에게 물어봤다.

"나도 같이 가도 돼?"

그래서 페펙은 숙모한테 메시지를 보내 혹시 나도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어봤고, 숙모는 흔쾌히 'OK'라고 답을 주셨다고 한다. 급작스럽게, 그리고 매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다시 파리 동역. 기차가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페펙은 누가 프랑스 고등학생 아니랄까 봐 가판대에서<르 카나르 앙셰네(Le Canard Enchaine)>와 <소사이어티(Society Magazine)>지를 사 들고 기차에 오른다. 페펙의 설명을 빌리자면 <르 카나르 앙셰네>는 탐사보도, 그리고 풍자를 전문으로 하는 잡지라고 한다. 여러 가지 사회이슈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사생활까지 끈덕지게(?!) 파고들어 '폭로전문 주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나름 프랑스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잡지이다.

반면 <소사이어티>는 2015년 3월에 창간된, 말 그대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잡지라고 한다. 기존의 잡지들과는 달리 젊은 층을 겨냥해 여러 참신한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잡지 삼매경에 빠진 친구를 옆에 두고 역사에 앉아 시계만 빤히 쳐다보다 출발시각 몇 분 전, 기차에 올랐다. 각기 기차표를 예매한 시점이 달라 좌석이 달랐던 우리는 열차에 오른 뒤, 혹시 옆자리가 비어있으면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파리를 벗어난 기차는 점점 속도를 높였다. 동쪽으로 향할수록 점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드넓은 초원에 희끗희끗 보이는 지평선, 그 중간에 유유자적 풀밭을 거닐고 있는 소들을 구경하며 편안히 기차여행을 즐겼으면 좋았겠지만, 미처 다 회복되지 않은 육신은 나를 지치게 했다. 기침할 때마다 폐가 쭈그러들고, 코를 풀 때마다 뇌가 흘러나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나의 독일여행은 막이 올랐다.

국경을 넘은 기차는 다른 여러 도시를 거쳐 자정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는 페펙네 숙모가 우리를 마중하러 기다리고 계셨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프랑스식 '쪽쪽' 볼 인사를 나누고 그 집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잠시 짐을 풀고 다시 마인 강 가녘을 따라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1시. 대충 세수를 하고 침대로 향한다.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계획하지도 못한 장소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있었다. 몸은 아주 힘들었지만 새로운 문화,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경험한다는 사실에 없던 기운이 다시 생겨났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태그:#여행, #파리,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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