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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3년 6월까지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재벌 대기업의 해외계열사 소유분 공시와 함께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만들어 공시하도록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재벌 대기업의 해외계열사 소유분 공시와 함께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만들어 공시하도록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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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르노삼성 자동차, 에스오일 등 기업에서도 일을 했다. 그가 최근 벌어지는 재벌 대기업들의 사회적 문제에 여러 처방을 내리는 것은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한다.

그가 법률적으로 제시하는 방법들은 기업을 때리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시장원리에 따라 기업 스스로가 변화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동안의 사후적 조치들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을 떠올려 보면 이 의원의 제안은 상당한 매력이 있다.

지난 13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이 의원은 공시제도를 이용한 기업 내부의 변화를 강조했다. 사후적 처벌에서 사전적 변화로 재벌개혁의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는 "회사 안에서 개혁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 힘을 가질 수 있게 하고, 또 적발되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문제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라며 "잘못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상시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공시제도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를 위해 최근 재벌 대기업의 해외계열사 소유 분 공시와 함께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만들어 공시하도록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그에 앞서서는 기업의 재무적 지표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공개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 한 바 있다. 모두 기업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투자자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관련기사 : 롯데의 '거미줄 지배구조', 해체는 이렇게).

다음은 이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사후적 처벌은 전근대적 방식, 근본적 문제 해결해야"

 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대국민사과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대국민사과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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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으로 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인 특별사면 발표가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재벌 총수 사면 인원은 적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면을 받았는데, 어떤 문제로 형을 살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로 처벌을 받았다. 재벌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로 형을 살고 있는데, 사면 복권을 해주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면 명목으로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는데, 그 사람이 나온다고 정말 경제가 활성화 되나? 오히려 회사를 어렵게 만든 사람이다. 손해를 끼치고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유발시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벌 받지 않고 손쉽게 용서를 받는다면 계속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 최근 재벌 해외계열사 소유 지분 공시를 의무화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어떤 취지인가?
"법안의 골자는 두 가지다. 해외계열사 소유 분 공시와 함께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만들어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모두 기업을 시장의 운영원리에 맡기자는 게 핵심이다. 회사 구성원들과 투자자들의 행동원리에 따라 재벌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동안 재벌의 개혁 방향은 사후적 처벌에 주력해 왔다. 본보기를 찾아 처벌하고, 그 위화감을 통해 문제를 억제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조금 지나면 '안 걸리면 된다'라는 학습효과가 생긴다. 고위공직자 출신 전관을 영입하고, 설령 문제가 발생해도 비싼 변호사를 써 무마시킨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배구조를 제대로 해야 회사도 잘 된다는 경험을 쌓게 만들어야 한다. 회사 안에서 개혁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 힘을 가질 수 있게 하고, 또 적발되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문제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잘못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상시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공시제도가 중요하다. 지금은 일반현황이나 주식소유현황만 공시하게 돼 있는데, 이사회의 구성, 임원 전문성 확보 방안, 경영승계 원칙과 절차 등 '내부규범'까지 공개하게 만들면 이 회사가 어느 정도 '개념'있는 회사인지 알 수 있다. 공시 내용을 보면서 투자자들이 투자의사를 결정하고 많은 인재들이 지원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해외지분을 공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거래법이 국내 회사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롯데처럼 해외 기업을 통해 순환출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만 해외법인에게 지분 공시를 의무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총수 일가가 소유한 해외지분에 법적으로 공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 롯데 사태로 인해 기업의 국적 논란이 일면서 소위 '국부유출'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에 국적을 따지는 건 무의미 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시장경제에서 그걸 규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소비자들의 행동원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가능하다. 소비자에게 판단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 기업이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그런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재벌총수의 해외지분과 같은 리스크를 개선해 나갈 것이다."

- 의무 공시만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제기한 '다중대표 소송제' 같은 보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지 않나?
"물론 사후적 조치를 강화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법적 절차가 발달하지 못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그에 비해 효과는 미비하다. 그것만으로는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 지금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주주들이 얼마든지 소송을 할 수 있다. 모든 주주들이 그렇게까지 주주의 권리를 자각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사후적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니다. 사전적으로 내부적 통제장치가 작동해야 한다. 기업이 알아서 체질을 바꾸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공시 제도 강화는 시장주의 원칙에 따른 것"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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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 한 바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노력을 사업보고서에 추가하는 내용인데, 어떤 의미가 있나?
"굉장히 애착을 가진 법안인데 아직도 통과가 안 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그리고 북유럽 같은 곳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이다. 우리 기업들은 아직도 사회적 책임을 '사회 공헌활동'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봉사활동 정도 하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아주 초보적인 단계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그 범위를 넘어선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기업내부에서 근로자에 대한 책임부터 지역 환경에 대한 책임, 국가 구성원으로서 세금 납부의 책임, 또 다른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책임, 하도급을 공정하게 할 책임까지 모두가 사회적 책임이다. 이런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확장돼 있는데 우리는 일천한 상황이다.

일부 기업들이 이런 제도를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하거나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말하는 건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오히려 더 시장경제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법안이다. 공시제도 자체가 그렇다. 기업의 정보를 공개하고 더 나은 기업이 인정받고 투자를 받게 하는 게 공시제도다.

허위공시를 하게 되면 처벌을 받고 이미지도 실추된다. 공개를 해야 문제를 감추지 않고 개선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출산휴가 현황, 육아휴직 현황, 여성임원비율 등도 공시하게 했다. 이런 게 잘 돼 있는 회사에 좋은 여성 인재가 몰릴 것이다. 또 소비자들도 그런 기업을 선택할 것이다."

- 재벌 그룹의 내부거래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어떤 취지인가?
"재벌 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해 내부거래가 많다.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당하게 몰아주기를 하거나 특수이익을 주는 문제가 생긴다. 현재는 이런 내부거래를 이사회에서 승인하게 돼 있다. 하지만 현행 이사회는 폐쇄적으로 밀실에서 이뤄진다. 또 총수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한다. 어떻게 일일이 주주총회를 거치냐고 할 수 있지만, 기업 스스로의 자정작용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과도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재벌 개혁을 위한 법안들은 기업 활동에 걸림돌이 된다는 반발을 받게 된다.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기업이 영세하고 직원도 얼마 없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총수 일가는 2% 정도의 지분만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많은 투자자들이 나눠가지고 있다. 또 많은 재벌 대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 대부분의 지분은 시장에 있는 거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책임 있게 경영하도록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걸 그동안 안 했기 때문에 새롭게 하려면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거야말로 비시장적인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책임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2%남짓 지분을 가진 지주가 마치 기업을 자기 회사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운영할 생각이면 상장하면 안 된다. 남의 돈 받아 운영하는 게 쉽겠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잘못된 인식 중에 하나가 '리스크 매니지먼트'(기업운영의 위험을 사전적으로 처리하는 경영기법)를 쓸데없는 일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잘못된 지배구조로 인해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손해로 인식한다. 예전에 프랑스 회사와 함께 일했던 경험에 비춰 보면 굉장한 차이를 느낀다.

외국 회사들은 당장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을 문제에 대해 벌금과 처벌, 평판 훼손과 매출 하락 가능성을 평가한다. 그에 따라 사전적으로 조치를 취한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당장 발생하지 않은 문제에 힘을 들이는 건 낭비라고 본다. 후진적인 기업문화다. 벌금을 내도, 평판이 안 좋아져도 '그때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역량 안되는 2·3세 경영 승계는 기업 망치는 일"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인사를 마치고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인사를 마치고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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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와 같은 재벌의 형태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재벌은 보호해야 할 대상도 아니지만 일부러 때려잡을 대상도 아니다. 드라이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에서 스스로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시장경제에서 예외성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서 나온다. 강자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는 없다.

부실한 기업에 공적자금을 들여 회생을 시키는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이 망한다고 해서 국가가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영을 잘못한 회사는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거기에 속한 인적, 물적 자원은 또 다른 곳에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재벌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근본적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유능한 경제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주요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보다 '경제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모습인데, 현재 당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종걸 원내대표와 최재천 정책위의장 중심으로 다시 경제민주화 정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슬로건은 좋지만, 막연하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 새로운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들이 과거처럼 구조적 문제가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재벌 대기업 스스로가 거듭나야 한다. 몇 명의 총수 일가가 의사결정을 한다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재벌 일가의 기업 승계구조도 바꿔야 한다. 초기 창업자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과감한 투자와 변화에 나선다. 그러나 2세, 3세 경영으로 가면 이들은 자신들의 노력 없이 물려받은 거라 굉장히 보신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 보면 더욱 보수적으로 경영을 하게 된다.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런 증상은 경영권 분쟁이 심한 회사일수록 두드러진다. 역량이 안 되는 2세, 3세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건 오히려 기억을 망치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이언주, #새정치연합, #롯데, #재벌,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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