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튕겨 나갑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진실과 프레임을 대조하며 프레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 중 사람들의 뇌 속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프레임은 '경제' 관련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로 "경제는 보수가 강하다"라는 프레임이다. 이것은 지난 몇십 년간 '진실'이라는 이름의 '프레임'으로 작용해왔고, 보수정당 집권에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은 사실일까? 폴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한마디로 "아니"라고 얘기한다. 단순히 대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다양한 통계와 분석을 통해 증명한다.

그리고 그 '증명'은 명확하고, 충분하다. 또한 크루그먼의 글은 나 같은 청소년도 쉽게 읽을 만큼 쉬운 글을 쓰기 때문에 대중에게 많이 읽혔을 것이고 여기서 시도된 '프레임 뒤집기'의 영향을 많은 이들이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경제는 보수가 강하다"는 프레임을 뒤집으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한국의 진보가 <경제학의 향연>을 읽으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케인즈주의'의 시대

<경제학의 향연>의 표지
 <경제학의 향연>의 표지
ⓒ 부키

관련사진보기

로버트 라이시와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은 뉴딜의 시대를 '대번영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 시대는 국민들의 소득과 소비는 증가하고 그에 따라 미국은 엄청난 '번영'을 누렸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때 경제학을 지배하던 이념은 바로 '케인즈주의'이다. 공화당조차도 이런 흐름을 뒤집지는 못하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다"라고 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현금으로 원하는 수요를 충족시켜 줄어드는 지출과 줄어드는 소득이라는 하향 나선 운동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 p.50

폴 크루그먼은 이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케인즈주의의 '지침'이다. 이런 지침에 따른 '뉴딜정책'은 국민들의 소득과 고용률을 끌어올려 소비를 늘렸으며, 복지지출 등의 공공지출은 늘어나게 했다.

케인즈주의의 '지침'은 번영의 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케인즈주의가 대공황의 시대 나왔던 만큼 역시 핵심은 경기후퇴를 종식하는 '지침'일 것이다. 경기가 후퇴할 때에는 통화 공급을 확대해(폴 크루그먼은 항상 이것을 '탁아 조합 쿠폰'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경기를 회복시키며 '유동성 함정'에 빠져있을 때는 민간 부문의 지출을 정부가 대신해준다. 정부는 재정을 확대해 다음 단계로 민간부분이 지출을 하도록 한다.

위와 같은 케인즈주의의 지침은 대공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했으며 이후의 호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폴 크루그먼은 그 반대의 흐름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케인즈에 대한 인간적·도덕적 혐오이다. 케인즈가 동성애자인 것이 그런 혐오를 만들어냈다. 둘째, 케인즈가 정부 역할의 확대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케인즈가 공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으니 이런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알만하다.

보수주의자들의 이런 비판에도 케인즈주의 경제학은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당시 진행되어 가는 상황을 보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 그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케인즈의 사상은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에 시달려 점차 시들어 갔다. 그리하여 1982년 카네기-멜론 대학의 에드워드 프레스코트는 자기 대학의 학생들은 케인즈란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까지 되었다. - p.53

그리고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터지면서 '통화주의자'와 '공급중시론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보수주의 경제학의 실체

프리드먼이 케인즈를 공격한 첫 단계는, 경기순환을 진정시키는 데 통화 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다소 몰염치하지만 효과적인 비판이었다. 프리드먼은 그러한 적극적인 정책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롭기까지 하여 오히려 개선하고자 하는 경제적 불안정을 악화시키므로 단순하고 기계적인 통화 주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논하였다. 바로 이것이 '통화주의'라고 알려진 학설이다. - p.55

크루그먼은 이것이 '케인즈의 이론을 근본부터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는 정부의 노력이 경제를 안정시킨다는 것을 부정하고 오히려 '경제적 불안성'을 악화시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실업률을 바꾸고자 한다면 필립스 곡선은 사라질 것"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을 예측하고, "허용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궁극적으로 초래하는 일이 없이 "완전 고용이라는 인위적인 목표을 노려 통화 확대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크루그먼은 필립스 곡선을 "케인즈의 원래 처방보다 더욱 임의적인 정책 관점을 제시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결국 석유파동이 오며 일은 터지고 70년대 내내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됐다. 경기는 닉슨 행정부의 무리한 인플레이션 통제로 위축되고 말았다. 이렇게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은 시작됐다. 보수주의자들은 세율의 인상이 근로 의욕을 감소시키므로 세원도 감소시키고, 경제적 동기를 왜곡시켜 투자 의욕과 저축을 낮춘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 지출의 삭감을 주장했다.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고 이 주장들은 정책으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국민전체의 저축률은 1980년대 후반 3%로 내려가고(70년대는 7.7%), 쌍둥이 적자(재정-무역적자)가 발생했으며, 급속한 노동력의 성장과 둔화된 생산성의 성장으로 경제 성장이 유지됐지만 이것이 성장 촉진에 이바지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공적투자는 감소하고 당연히 '인적자본' 육성도 감소했다. 또한 미국은 자본수입국, 순채무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소득격차는 눈에 띄게 커졌으며 1987년에는 주식시장이 붕괴됐다.

폴 크루그먼은 레이건 정권의 경제지표를 보며 최종적으로 레이건 정권의 경제 '재판'을 다음과 같이 평결한다.

레이건은 유죄 평결을 받았다. 공급 중시론자들이 적자를 감안한다고 해도 비상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이 없지 않은 만큼 레이거노믹스는 무죄라고 변호했지만, 증거 앞에서는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죄가 무거운가 가벼운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답변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레이건은 적자를 창출했고 그것은 미국 경제의 성장에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가시적인 적자의 효과가 1980년대에 발생한 몇 가지 숨겨진 적자로 더욱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파탄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자는 일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괴물은 아니다. - p.205

'신케인즈주의'

폴 크루그먼은 보수주의 경제학의 결과를 보여주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대안적인 사상을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신케인즈주의'이고, 폴 크루그먼은 신케인즈주의자라고 불린다. 크루그먼은 신케인즈주의자로서 '합리성의 한계'를 논한다. 그러면서 '근사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근사 합리적인 가계라면 대부분 정부가 지출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는 뉴스를 듣고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소비를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 세금 고지서를 받아들고서야 비로소 대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적자가 문제가 됨을 의미한다. (...) 즉 경기 침체는 사람들이 감지는 하면서도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252

이렇게 폴 크루그먼은 수요-공급이론, 세이의 판로설을 바탕으로 다시 세워진 보수주의 경제학이 말하던 '합리적 개인'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 이전에 보수주의 경제학을 무너뜨렸던 케인즈를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 크루그먼은 과감하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고도로 비합리적 결과는 불완전 경쟁시장과 완전히 합리적이지 못한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에 기인한다. - p.257

<경제학의 향연>이 가지는 가치

한국에서는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의 경제정책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우월한가를 비교하기 힘들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이 <경제학의 향연>을 통해 보여준 것은 어떤 것이 우월한지는 증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것이 우월하지 않은지는 설명해준다.

이 책이 비록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쓰여서 보수주의 경제학의 폐해를 모두 파헤치지는 못했더라도 최소한 레이거노믹스가 우월함을 보여주지 못했음은 확실히 입증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늘날 아직도 레이거노믹스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안겨준다.

이 책은 또한 '경제'와 '성장'에는 입을 꺼내지 못했던 진보주의자들에게 보수주의자들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교과서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각에서 경제학의 공인된 기본 개념과 확고한 통계 자료만을 가지고 부정해버린다"는 옮긴이(김이수, 오승훈)의 말처럼 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정당'을 표방하고 경제에도 강함을 보여줌으로써 이미지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지금 폴 크루그먼의 '증명'이 더더욱 필요하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완벽한 경제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덧붙이는 글 | 저자 폴 크루그먼|역자 김이수, 오승훈|부키 |1997.11.10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부키(1997)


태그:#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향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