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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에 죽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던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울 줄만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울 줄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바람이 되어 날아가라."
- 제주 '기억공간 re:born'에 어느 여고생이 남긴 글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번지. 소를 키우던 허름한 우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개인적 기억으로 다시(re) 태어나기를(born) 소망하는 '기억공간 re:born'(http://www.facebook.com/20140416yellow)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번지 공존공간 선흘창고 내 ‘기억공간 re:born’에서 전시 중인 ‘416 세월호 참사 기록전시회-아이들의 방’ 모습. 정면 스크린에 단원고 아이들의 방이 일정한 간격으로 올라가고 있다.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3982번지 공존공간 선흘창고 내 ‘기억공간 re:born’에서 전시 중인 ‘416 세월호 참사 기록전시회-아이들의 방’ 모습. 정면 스크린에 단원고 아이들의 방이 일정한 간격으로 올라가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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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리는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한 거문오름이 가까이에 있다. 거문오름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갱도진지 10여 곳이 있다. 또한 선흘리는 오멸 감독이 4·3항쟁을 다룬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2012년작)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를 뜻한다. 영화에서는 제주 사람들이 혹독한 동굴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중의적 의미로 사용됐다. 

이러한 역사적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선흘리에 세월호 기억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사연이 맞물렸기에 가능했다. 우사 뒤편에는 주인인 이문자 할머니가 살고 있다. 할머니는 20대 꽃다운 나이에 4·3을 겪었다. 할머니의 아들인 선흘리 전 이장은 우사를 탐내는(?) 숱한 이들을 뿌리치고, 마을도서관으로 사용하면 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이곳을 3년 무상임대 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곳을 사용하게 된 이들이 지금은 기억공간 re:born의 지킴이가 된 황용운(36)씨와 공간 한 켠에 둥지를 튼 작은 마을도서관 '바람도서관'의 운영자 박범준(43)씨다.

‘아이들의 방’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기억공간 re:born’에서 황용운씨가 공간 운영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왼쪽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는 자원봉사자.
 ‘아이들의 방’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기억공간 re:born’에서 황용운씨가 공간 운영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왼쪽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는 자원봉사자.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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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좋아서 아름다운 가게의 업사이클링(의류 등을 재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곳) 디자인 브랜드 '에코파티 메아리'에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후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단원고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려고 했던 제주에 입도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8일 세월호 침묵시위 '가만히 있으라' 행진에 참여했다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경찰에 연행돼 하루 반 동안 유치장 신세를 졌어요.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제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어요. 지금까지는 권리 위에서 잠자는 무감각한 사람이었는데, 2014년 4월 16일 이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뭐하며 살래?'에서 '어떻게 살래?'로 말이죠. 그 답을 풀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지난해 10월 이 공간을 빌린 후 두 사람은 폐허나 다름없던 이곳에 지붕을 얹고, 창문을 달고, 출입문을 세우고, 페인트 칠을 하는 등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공간 내부 작업에도 탄력이 붙었다. 천장에 조명을 달고, 전시대를 세우고, 의자를 만들고, 단원고 아이들의 사진을 한 점, 한 점 벽에 건 끝에 40여 평 규모의 '공존공간 선흘창고'는 탄생했다.

제주 '기억공간 re:born', 기억하는 세월호로 되살아나다 

제주시 선흘리 공존공간 선흘창고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뒤편에 보이는 회색창고에 ‘기억공간 re:born’과 ‘바람도서관’이 있다. 그 뒤편으로 주인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
 제주시 선흘리 공존공간 선흘창고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뒤편에 보이는 회색창고에 ‘기억공간 re:born’과 ‘바람도서관’이 있다. 그 뒤편으로 주인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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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창고는 전시공간과 업무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 벽에 세월호 추모 게시판이 걸려 있고, 왼편 탁자에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 세월호 관련 책자, 노란리본, 방명록 등이 놓여 있다. 다시 쪽문 안에 발을 들여 놓으면 '아이들의 방' 전시공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제주시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전시 모습.
 제주시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전시 모습.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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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전시 모습.
 제주시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전시 모습.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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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의 선흘창고 앞쪽에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이 걸려 있어 단원고 아이들의 방을 일정한 간격으로 보여준다. 스크린 앞에 서서 정면을 보면 책장 위에 세월호 참사 304명의 얼굴을 담은 펼침막이 전시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 작은 의자로 원을 만들고 그 안에 인형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인형은 밤하늘의 별이 된 단원고 아이들이 천사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전국 각지의 엄마들이 만들어 보내 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가 여물을 먹던 여물통과 벽을 따라 단원고 아이들의 유품을 촬영한 사진을 부착한 패널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 여름의 햇발이 쏟아져 들어오던 창문 뒤에선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고 있었다. 아내와 기자는 대나무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해 둔 의자에 앉아 방문기를 남겼다.

제주시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전시 모습.
 제주시 선흘리 ‘기억공간 re:born’에서 지난 4월 16일부터 전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방’ 전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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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세월호 기억공간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우사를 내어 준 이문자 할머니. 왼쪽은 기자의 아내 김은경씨다.
 제주도에 세월호 기억공간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우사를 내어 준 이문자 할머니. 왼쪽은 기자의 아내 김은경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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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공간은 개관 기념으로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416 세월호 참사 기록전시회-아이들의 방' 전시를 시작했다. 개관 이후 세월호 유가족은 아홉 가족이 다녀갔다. 기자가 아내와 함께 들른 6일에는 단원고 고 정차웅군의 부모님과 형이 방문해 용운씨와 점심식사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두 손을 맞잡은 차웅 엄마와 아내의 두 눈에는 이내 눈물이 그렁거렸다.

"차웅이와 (단원고) 아이들이 가려고 했던 제주도 수학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 봤어요… 여름이라 무척 힘들었지만, 눈에 선하네요…"

차웅이 가족을 배웅한 후 용운씨와 기억공간으로 다시 들어갔다. 공간 한쪽에서는 자원봉사하는 이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기억공간을 운영하는 데 힘을 보탠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조촐한 모임도 갖고. 그는 기억공간을 어떻게 운영해 갈 계획일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이야기를 소개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려고 해요. 아이들을 기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공간으로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이 잘 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겠지요. 또 4.3항쟁과 강정마을과 연계한 활동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용운씨가 건네준 명함 앞에는 '공존공간 선흘창고 삶 꿈 함께'라는 문구가, 뒷면에는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선한 청년 용운씨가 지켜나가고 있는 '세월호의 기억'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작고 평화로운 마을 제주 선흘리에서 '기억하는 세월호'로 되살아나고 있다.

평화의 섬을 지키는 사람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미사'

8월 7일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해군기지 건설반대 미사를 마친 후 문정현 신부와 참석자들이 건설현장 입구에서 펼침막을 손에 들고 “해군기지 건설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8월 7일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해군기지 건설반대 미사를 마친 후 문정현 신부와 참석자들이 건설현장 입구에서 펼침막을 손에 들고 “해군기지 건설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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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4956번지. 흔히 강정마을로 알려진 이곳에서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 3000일(8월 3일)을 앞두고 7월 27일부터 5박 6일간 동진과 서진으로 나눠 제주도 전역을 순회하는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마쳤다. 평화대행진에는 세월호 유가족도 동행했다.

기자가 찾은 7일에는 해군기지 건설현장 입구에서 문정현 신부의 주재로 해군기지 건설반대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문 신부는 2011년 7월 3일 주민등록지를 아예 강정마을로 옮겼다.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한 미사는 2011년 4월부터 시작됐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전후로 똑같은 장소에서 매일 올리고 있다. 공사장 입구 건너편에서는 제주도내 성당 신자와 시민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1시간여에 걸친 미사가 끝난 후 10여 명의 참석자들은 노래 '바위섬'을 부르고, 율동을 하며 공사 반대 의지를 다졌다.

미사가 끝난 후 잠시 인사를 나눈 문 신부의 얼굴은 검게 탔다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입 밖으로 말을 내뱉기도 힘들어 했지만 두 눈만큼은 형형한 빛을 잃지 않았다.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에 선 노신부를 대면한 기자 역시 입을 떼지 못했다. 간략한 인사말을 남겼을 뿐이다. 

"신부님, 건강 잃지 않도록, 꼭 챙기셔야 합니다."

강정마을 안에 있는 평화센터에서는 ‘어따대고, 해군기지~’ 부스를 설치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해 전시하고 있다.
 강정마을 안에 있는 평화센터에서는 ‘어따대고, 해군기지~’ 부스를 설치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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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4956번지 강정마을 골목골목에 ‘해군기지 건설반대’, ‘생면존중 강정마을’ 문구가 적힌 깃발이 집집마다 내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4956번지 강정마을 골목골목에 ‘해군기지 건설반대’, ‘생면존중 강정마을’ 문구가 적힌 깃발이 집집마다 내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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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도 공존공간 선흘창고, #제주 기억공간 RE:BORN, #제주 강정마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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