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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하고 전철을 탑니다.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나들이를 왔습니다. 다섯 시간 남짓 시외버스를 달린 뒤, 전철을 갈아탑니다. 아이들은 도시로 나들이를 와서 모든 것이 낯설면서 새롭습니다. 시골집이나 마을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높다란 계단 길을 오르내립니다. 전철을 타려고 계단을 한참 밟고 내려갔다가 올라옵니다. 스르르 올라가는 계단에 올라서고, 우렁찬 소리로 드나드는 전철을 쳐다봅니다.

아이들은 전철 타는 곳에서 이리저리 달립니다. 요즈음은 전철역에도 가림막이 있으니, 아이들이 뛰놀다가 밑으로 떨어질 걱정은 안 할 만합니다. 아이들한테 이곳은 뛰거나 달리면서 노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뛰거나 달리고 싶습니다. 다섯 시간 남짓 꼼짝 못한 채 앉아만 있어야 했으니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시골집에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잖고 뛰거나 달리며 놀던 아이들이, 꽤 오랫동안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 일은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땡땡! 꼬마 기차가 기찻길을 덜컹덜컹 달려가요. 꼬마 기차는 즐거워요. (2쪽)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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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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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넌 할 수 있어, 꼬마 기관차>(비룡소,2006)를 읽습니다. 나들이를 나오는 길이 이 그림책을 챙깁니다. 기차와 자동차를 좋아하는 작은아이가 아끼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에서는 2006년에 나왔는데, 미국에서는 1930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무척 오래된 그림책입니다. 1930년이라고 하면 한국은 일제강점기였고, 이무렵에는 한국에 어린이가 볼 만한 그림책이 거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려고 하는 어른도 드물었고, 그림책을 빚어서 아이한테 베풀려고 하는 어른도 드물었어요.

아무튼, 그림책 <넌 할 수 있어, 꼬마 기관차>는 재미있습니다. '꼬마 기차'는 인형이랑 장난감이랑 과자랑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가득 실었다고 해요. 아이들이 있는 저 고개 너머로 가는 길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만 꼬마 기차가 멎습니다. 짐을 너무 많이 실었을까요?

기찻길 한쪽에 멀거니 선 기차에서 인형들이 내립니다. 다른 기찻길로 지나가는 기차를 부릅니다. 힘센 기차를 부르고, 멋진 기차를 부르며, 젊은 기차도 늙은 기차도 부르는데, 모두 으르렁거리거나 나무라면서 본 체 만 체입니다.

그때 어릿광대가 기차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말했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새 기관차가 온다!" "우리 도와 달라고 하자." 인형과 장난감 들도 모두 입을 모아 외쳤지요. "멋쟁이 새 기관차님, 우리 기관차가 고장 났어요." (12쪽)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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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하고 장난감 들은 몹시 서운합니다. 고개 너머로 못 가겠구나 싶어 걱정합니다. 이때에 마지막으로 '작고 파란 기관차' 한 대가 지나가요. 모두들 작고 파란 기관차한네 '고장난 작은 기차'를 이끌어 달라고 바랍니다. 작고 파란 기관차는 제 힘이 여려서 도무지 못 할 듯하다고 말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한 번 해 보기로 합니다. 씩씩하게 달려 보기로 합니다.

"우리가 못 가면 산 너머 착한 아이들이 안 됐잖아요. 갖고 놀 장난감도 없고, 맛있는 먹을거리도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크고 힘센 기관차는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20쪽)

우리 집 아이들은 올들어 두 번째로 전철을 타 봅니다. 한 해에 한두 번쯤 전철이나 기차를 구경하지요. 시외버스에서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던 작은아이는 전철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큰아이가 작은아이 나이였을 무렵에도 이렇게 버스나 전철에서 큰 목소리를 뽑으며 노래했어요.

아이들이 노래할 적에 '어쩜 누가 이리 노래를 잘 하나?' 하면서 빙그레 웃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고,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하면서 빽 소리를 지르는 어르신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귀여워 하는 어른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반갑고, 단잠을 이루고 싶은 어른은 대단한 가수가 버스나 전철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귀찮거나 성가시겠지요.

그러고 보면,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탈 적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 버스에 탄 할매랑 할배도 '시골에 드문 아이, 게다가 군내버스를 타는 더더욱 드문 아이'를 만나서 노랫소리를 들으니 반기기도 하지만, 버스에서 달콤하게 자고 싶던 분들은 조용히 하라고 나무랍니다.

장난감하고 과자를 잔뜩 실은 기차가 멎었습니다.
 장난감하고 과자를 잔뜩 실은 기차가 멎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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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은 활짝 웃으며 신나게 만세를 불렀지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작고 파란 기관차는 힘겹게 앞으로 달려갔어요.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34쪽)

노래하며 노는 기차를 꿈꿉니다. 웃으면서 노래하는 버스를 꿈꿉니다. 기차마실도 버스마실도 누구한테나 즐거운 삶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지옥철이나 만원버스가 아닌,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이웃으로 어울리면서 기차랑 버스랑 전철을 누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인천을 거쳐서 강원도 영월로 새롭게 시외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가려 합니다. 버스에서 조용조용 나즈막한 목소리로 가볍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놀자고 생각합니다.

작은 기차를 끌어 줄 다른 기차는 누구일까요?
 작은 기차를 끌어 줄 다른 기차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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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넌 할 수 있어, 꼬마 기관차
와티 파이퍼 글
조지·도리스 하우먼 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6.1.2.
6500원



넌 할 수 있어, 꼬마 기관차

와티 파이퍼 지음, 도리스 하우먼 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2006)


태그:#넌 할 수 있어 꼬마 기관차, #그림책, #어린이책, #기차,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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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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