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른둘 갑작스러운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방사성 요오드 검사용 옥소 복용하기전 체혈을 먼저 해야한다.
▲ 체혈실 방사성 요오드 검사용 옥소 복용하기전 체혈을 먼저 해야한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4주간의 신지로이드 복용 중단과 2주간의 저요오드식 기간을 거쳐 방사성 요오드 검사를 위한 '옥소'를 복용하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항상 병원을 갈 때면 운동할 겸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가곤 했는데 날씨도 덥고 지난 겨울보다 일찍 시작된 부작용으로 몸이 힘들어 자차를 가지고 갔다. 오랜만에 차를 가지고 병원에 오니 언제나 그랬듯 주차장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오전 10시 본관 3층에 있는 '체혈실'에서 체혈이 예약돼 있었다. 갑상샘암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병원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체혈실이다. 대학병원답게 체혈실에도 엄청난 환자들이 몰리는 데 은행처럼 접수하고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면 순서에 맞게 체혈이 진행된다. 마치 '피뽑는 공장'과도 같은 분위기다.

내 순서가 되어서 팔을 걷고 앉았는데 체혈을 해주시는 분이 '핵의학과 피검사 하러 오셨죠?'라고 물었다. 맞다고 대답하니 조금 아플 거라고 했다. 평소에는 그런 말 없이 그냥 체혈을 했는데 오늘은 뭔가 다른 모양이었다. 주사 바늘 공포가 있어서 체혈할 때마다 팔을 못 쳐다보는 나였지만 최근 수많은 체혈 경험으로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터라 별로 긴장은 되지 않았다.

걷어 붙인 오른팔에 바늘이 들어오는데 평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대체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 주사 바늘을 봤는데 역시나 평소보다 훨씬 두꺼운 바늘이 내 팔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주사기로 입에 쏴 주는 옥소

본관 맞은편 건물 지하 2층에 위치한 핵의학과로 '전신 스캔'을 받기 위해 내려갔다.
▲ 핵의학과 가는길 본관 맞은편 건물 지하 2층에 위치한 핵의학과로 '전신 스캔'을 받기 위해 내려갔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체혈을 끝내고 나면 바늘을 꽂았던 곳에 알콜 솜을 대준다. 매번 5분간 꽉 누르고 있으라고 하지만 얼마 안 되서 솜을 버렸다가 옷에 피가 묻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바늘 두께를 보고 나서 그런지 가만히 앉아 5분간 솜을 꾹 누르고 있었다. 지혈이 되고 나서 본관을 나와 맞은편 건물 지하2층에 있는 '핵의학과'로 내려갔다. 매번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오늘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계단을 이용해 내려갔다.

도착한 핵의학과 대기실에는 나 말고도 옥소를 복용하러온 2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두 분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아주머니들이었다. 갑상샘암은 여성 환자들이 남성에 비해 단연 많다. 나도 병원을 다니면서 만난 환자들을 생각해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았다. 나 처럼 젊은 남자는 거의 찾기 힘들었다.

지난 겨울 방사성 요오드 캡슐을 복용했던 것처럼 두꺼운 납으로 차폐된 병 속에 알약이 들어 있을걸 생각하고 왔는데 검사용 옥소는 지난 번과 달랐다. 간호사가 종이컵을 하나씩 나눠주며 정수기에서 물 한 컵 떠 가지고 대기하라고 했다. 잠시 뒤 이름이 불리면 진료실에 문 열고 들어가는데, 주사기를 이용해 액체로 된 옥소를 입에 대고 조금 뿌려준다. 옥소를 삼키고 나면 손에 들고 있는 물을 다 마시는데 이걸로 옥소 복용이 끝난다.

옥소 복용을 끝내고 병원을 나오면서 지난 번과 같이 가족들과 격리 생활을 해야 하냐고 물으니 아주 갓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만 접촉을 삼가하라고 했다. 워낙 적은 용량의 방사성 요오드기 때문에 일상 생활을 해도 괜찮단다. 이제 집으로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8시에 전신 스캔을 해야 한다. 내일 스캔에서 6개월 전에 스캔을 했을 때 있었던 검정색 원형 2개가 사라져 있으면 된다.

'엄마표 김치찌개'를 먹으며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전신 스캔을 끝내고 저요오드식으로 먹지 못했던 집밥을 먹었다.
▲ 집밥 전신 스캔을 끝내고 저요오드식으로 먹지 못했던 집밥을 먹었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다음날 아침 8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같이 영상 촬영실 앞에 대기를 하고 있으니 미리 소변을 보고 기다리라고 한다. 별로 마렵지 않은 소변을 보고 잠시 더 기다리니 내 이름이 불려졌다.

주머니에 있는 소지품들을 다 꺼내서 바구니에 담아 맡기고는 검사 장비에 올라가 누웠다. 장비에 눕는 공간은 수술대처럼 폭이 좁다. 낙상 방지를 하기 위해 수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찍찍이 테이프를 온몸에 감는데 기분이 안 좋다.

장비에 누워서 눈감고 있으면 장비가 움직이면서 전신 스캔을 시작한다. 20분쯤 지났을 무렵 장비의 움직임이 처음 촬영을 시작하기전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몸에 붙은 찍찍이 테이프를 뜯어준다. 생각보다 일찍 촬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한 컵 주더니 다 마시고 누으라고 했다. 지난 겨울 촬영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다시 누워 촬영을 계속하는 동안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촬영이 끝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 진료실 앞에서 기다렸다. 진료가 9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촬영이 일찍 끝나도 그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잠시 뒤 핵의학과 교수님이 가방을 들고 출근을 했고 이내 내 이름이 불려졌다.

진료실로 들어가 앉아 교수님의 모니터를 바라보니 왼쪽엔 오늘 찍은 사진이, 오른쪽엔 6개월 전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심장이 갑자기 쿵쾅거리며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 신지로이드 복용 중단은 물론 저요오드식까지 그 괴로운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또 해야 한다.

슬쩍 바라본 오늘 사진엔 목 부위 검정색 원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복부 부근이 검게 보였다. 전신 스캔은 원격 전이가 된 병소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에 장 쪽에 문제가 생긴게 아닐까 하고 순간 걱정 했다. 하지만 내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는 교수님의 한 마디에 왈칵 감동이 밀려왔다.

"말끔히 치료가 아주 잘 된 것 같네요~ 혈액검사 수치 또한 정상입니다. 그동안 수고 하셨어요~"

복부 부근에 검게 보이는 부분은 장속에 가스나 음식물로 인해 그렇게 보일 수 있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이로써 약 8개월간의 방사성 요오드 치료는 끝났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그동안 신지로이드 복용 중단 부작용에 시달리며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 '해방'의 기쁨에 너무 기분이 좋아 운전을 하면서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집으로 돌아와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신지로이드를 꺼냈다. 이제 죽는 날까지 매일 아침 먹어야 하는 내 생명과도 같은 약. 흰색 한 알과 분홍색 반 알이 들어 있는 약 봉지를 찢으며 웃었다. 그리고 늦은 아침을 준비했다. 스캔 하고 오면 꼭 먹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김치찌개'를 만들어 놓고 외출을 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표 김치찌개'로 내가 살아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 할 수 있었다.


태그:#갑상샘암, #방사성 요오드, #전신 스캔, #핵의학과, #신지로이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