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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은 2012년 12월 10,11일 양일에 걸쳐 안중근 의사 유묵에 관련된 멘션을 자신의 트위터(@ahndh61)에 총 17개 올렸다. 그 중에는 '보물 569-4호 안중근 의사의 유묵 누가 훔쳐갔나? 1972년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소장, 그 이후 박근혜가 소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도난문화재라고 한다'는 글도 있다.
 안도현 시인은 2012년 12월 10,11일 양일에 걸쳐 안중근 의사 유묵에 관련된 멘션을 자신의 트위터(@ahndh61)에 총 17개 올렸다. 그 중에는 '보물 569-4호 안중근 의사의 유묵 누가 훔쳐갔나? 1972년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소장, 그 이후 박근혜가 소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도난문화재라고 한다'는 글도 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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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은 2012년 대선 직전,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안중근 의사 유묵 한 점의 행방에 관한 내용이었다.

"보물 제569-4 안중근 의사 유묵 누가 훔쳐갔나,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소장, 그 후 박근혜가 소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도난문화재라고 한다." - 당시 안도현 시인이 올린 트윗, <판결 VS 판결>에서 재인용

그는 "박근혜 후보가 의혹을 직접 밝혀달라"고 했지만 답변 대신 검찰의 기소를 받았다.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안 시인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재판이 자정 무렵에야 끝났다.

7명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허위사실 공표와 후보자 비방'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주저하며 판결을 열흘 뒤로 미루더니 결국 '허위사실 공표는 무죄, 후보자 비방은 유죄'로 선고했다. 배심원의 평결을 뒤집은 것.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유무죄 일치율은 92.8%에 달했다.

이를 의식했는지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을 "민주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것"이라면서도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정치적 입장·지역의 법감정·정서에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고 밝혔다. 간단히 풀자면, 직업법관의 판단이 배심원들의 평결보다 더 타당하다는 의미다.

안 시인의 사건은 2심에서 후보자 비방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고 검사가 상고해 현재 대법원에 가 있다. 일반인이 유무죄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여겨 '준엄히'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뭐라고 생각할까.

어려운 법과 판결, 그럼에도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대법원,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무죄 확정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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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렵다. 방대한 양인데 조항은 계속 개정되고 신설된다. 거기다 단순히 적용하는 게 아니라 개별 사안마다 고려해야 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비슷해 보이는데 유무죄가 갈리고 같은 사실관계를 가지고도 판결이 달라진다.

'유서대필조작사건'을 겪은 강기훈씨는 지난 5월 무죄를 확정 받았다. 꼬박 24년 만이었다. 20대 청년이 50대가 됐다. 그는 동료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당시에는 대법원에서까지 유죄로 판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당시 상황을 뒤바꾸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법이 어렵다고 해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법원공무원인 <오마이뉴스> 김용국 시민기자가 쓴 <판결 VS 판결>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
▲ 책표지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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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결은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작 일반 대중들은 판결이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고, 무엇에 영향 받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본인이나 주변인이 얽히지 않으면 관심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사는 사건과 법을 어떻게 해석해서 판결을 내리는지, 거기에 어떤 원리와 원칙이 있는지, 판결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법감정으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두 판결을 서로 대립시켜 보거나, 해당 사안을 관통하고 있는 법리가 보다 도드라지게끔 두 판결을 대비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 <판결 VS 판결> '머리말'에서

판결이 국민의 법감정이나 상식에 벗어났다고 해서, 속으로 '판사가 세상물정 모르네'라고 냉소하거나 '더러운 세상'이라 욕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게 왜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후에 비로소 요구도 할 수 있다.

책은 좋은 예를 들었다. 바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아래 김영란법)'이다. 기억할 게다. 벤츠를 주고받은 검사와 변호사의 아름다운 '사랑'을 말이다. 대법원은 이들의 '사랑'을 인정했다. 벤츠가 대가가 아니라 '사랑의 정표'였다며 면죄부를 줬다.

이 사건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만약 '김영란법'이 있었다면 '벤츠 여검사'는 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었다. 그 후 '김영란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책은 '김영란법 탄생의 일등 공신은 바로 벤츠 여검사가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언론을 통해 '대가성의 구멍'을 안 국민들이 거세게 일어나 '그 구멍을 메우라' 요구했기 때문이다.

판사를 포함한 소수의 법률전문가 집단이 '그들만의 언어'로 재판을 해오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일반 시민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그들을 참여시키는 사법제도의 개혁은 그래서 불가피하다. - <판결 VS 판결>에서

'사법불신' 퇴출시키는 힘은 국민의 관심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시위에 나서는 여승무원들 대법원이 1심과 2심의 판결을 뒤집고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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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판결들은 모두가 깊게는 몰라도 대부분 뉴스로 접했을 사건들이다. 삼청교육대,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 KTX 여승무원 복직 패소, 40대 남성과 여중생의 동거, 산낙지 질식사 사건, 빨래건조대 도둑 폭행 사망, 모욕당한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 미네르바 사건 등 2쌍의 판결들이 20꼭지, 총 40개 판결이 들어있다.

막연히 어렵다고 느끼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기본적인 법조항과 적당한 법률정보만 제공되면 일반인들도 '합리적 상식'에 기대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유무죄 일치율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대중의 판단이 무조건 최선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법원이 폐쇄성을 유지한다면 선거제도도 필요 없다. 소수 전문가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으면 된다. 그러나 그 결과에도 수긍할 이가 몇이나 될까. 결국 관건은 '민주적 정당성'이다.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최대의 명예 손상이 될 것이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한 말이다. 저 말이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이뤄야 할 목표로 남아있다 생각되면 우리에겐 숙제가 있다. '전관예우'니, '유전무죄'니, '사법불신'이니 이런 단어들을 퇴출시키는 힘은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나온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판결 VS 판결> (김용국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15.06 / 1만 4000원)



판결 VS 판결 - 법대로 하는데 왜 판결은 다를까?

김용국 지음, 개마고원(2015)


태그:#김용국, #개마고원, #판결 VS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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