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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풀을 뜯습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 사이에 풀이 제법 우거졌기에, 처음에는 낫을 써서 베다가, 이내 손을 써서 뽑습니다. 호미로 땅을 톡톡 쪼면서 풀을 뽑을 수도 있는데, 손만 써서 풀을 뽑으면 손가락이랑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새삼스럽습니다. 풀내음이 두 손 가득 깃들고, 흙내음도 온몸으로 스밉니다.
겉그림
 겉그림
ⓒ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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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갑을 끼고 흙일을 해도 두 손은 흙투성이가 됩니다. 맨손으로 흙일을 해도 흙투성이가 되기는 똑같습니다. 실장갑을 끼고 낫질을 하면, 손에 힘이 빠질 무렵 그만 낫을 잘못 놀려 손가락을 쿡 찍을 적에 덜 다칩니다. 그러나 맨손에 닿는 풀하고 흙이 반갑기에 으레 맨손으로 풀베기를 합니다.

한참 풀을 베고 나서 아침을 짓습니다. 손이랑 발을 씻고 나서 밥을 짓는데, 손바닥에서 풀물이 안 빠집니다. 밥을 짓다가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풀을 베거나 뽑은 날이면 며칠 동안 손바닥이 까무잡잡합니다. 손등은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하고, 손바닥은 풀물이랑 흙물이 들어서 까무잡잡합니다. 국이 끓을 때까지 손바닥을 한동안 바라보면서 혼자 빙그레 웃습니다.

모든 생명체들이 공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실로 공기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다 … 대부분의 고대 사상에서 공기는 인체에 대한 질문을 우주의 작용, 그리고 신의 존재로 확장시킨다. (11, 21쪽)

마레는 이러한 근육의 움직임에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공기의 저항이었다. (72쪽)

두바이의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 환경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 주도록 공기를 관리하는 기술 덕분이었다. 그러나 두바이 경제에서 석유가 다 떨어지고 나면 이곳은 다시 모래사막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착취당하던 이주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방문객 수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223쪽)

피터 에디 님이 쓴 <공기, 신비롭고 위험한>(반니,2015)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사는 이 지구별에 있는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서양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문학과 철학과 지식에서 바람을 어떻게 바라보거나 다루었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이러면서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더러워진 바람'이 무엇을 뜻하고, '에어컨으로 다스리는 바람'은 무엇을 보여주는가를 이야기해요.

이 책에서는 '공기(空氣)'라는 낱말을 씁니다. '공기'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기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대기(大氣)'는 '공기'를 가리키는 다른 한자말입니다. 과학이나 철학에서는 으레 '공기'나 '대기'를 쓰지요.

카나리아 진공 실험. 조지프 라이트 판화. 1769
 카나리아 진공 실험. 조지프 라이트 판화. 1769
ⓒ 반니/조지프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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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러한 한자말을 쓰기 앞서 한겨레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이런 말이 이 나라에 들어오기 앞서도 한겨레는 '공기'랑 '대기'를 늘 느끼거나 마주하며 살았을 테니까요.

뉴욕 시의 대기 변화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난방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증기난방이 축복이었지만, 한편으로 시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지하세계는 종종 보수공사로 파헤쳐져 그 모습을 드러냈다. (93쪽)

18세기 파리에서는 숨 쉴 수 없을 지경으로 완전히 오염된 공기가 시민의 생물학적 미래를 위협했고 나라의 존립 자체도 위태롭게 만들었다 … 위험할 정도로 해로운 공기가 도시의 거리, 공장, 집들로 모여들었다. 시골이라면 쉽게 환기를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나쁜 공기가 도시 전체에 갇혀 있어서 사람들 역시 그 공기 안에 갇혀 있는 셈이었다. (104, 111쪽)

한국말사전에서 '바람'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라고 풀이합니다. '하늘'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넓은 공간"이라고 풀이해요.

흔히 "바람이 분다"고 말하지만, 바람은 가만히 있는 일이 없습니다. '공기'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물처럼 바람도 언제나 흐릅니다.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하며, 마치 죽은듯이 고요하게 흐르기도 합니다.

늘 지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거나 먼 고장으로 가면, 사람은 누구나 '바람맛'이 달라지는 줄 느낍니다. 물맛이랑 바람맛을 맨 먼저 느껴요. 바람맛이란 무엇일까요? 마을이나 고장이나 나라마다 다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 나누어 주는 맛이요, 이 맛은 '공기맛'입니다.

가스파르 스콧 판화. 1657
 가스파르 스콧 판화. 1657
ⓒ 반니/가스파르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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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라고 일컫는 자리는 '하늘'입니다. 땅바닥 위쪽은 모두 하늘입니다. 저 먼 곳만 하늘이 아닙니다. 아이 머리 위쪽도 하늘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개미한테는 '아이 머리 위쪽'도 높다란 하늘이에요. 제비꽃이나 민들레한테는 '지붕 위쪽'도 높디높은 하늘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은 곧 하늘이고, 하늘은 곧 바람입니다. 사람이 마시는 숨이란 바람이면서 하늘입니다. 늘 숨을 쉬는 사람은, 늘 바람을 마시고 하늘을 마시는 셈입니다. 그래서 '하늘숨'을 쉰다고도 말합니다. 지구별을 넓게 느끼지 못할 때에는 '숨만 쉰다'고 할 테지만, 지구별을 넓게 느끼는 자리에서는 온 하늘을 헤아리면서 온 바람을 가득 껴안아요.

요한나 슈피리가 쓴 이 유명한 동화 <하이디>는 1880년 처음 출간될 때부터 남부 유럽의 산악지대 풍경과 기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이 동화에 나오는 공기는 논란의 여지없이 '좋은' 것이고 건강과 영혼을 회복시켜 준다 … 회복 치료는 공기와 빛과 고도를 하나로 결합시켰다. 이 세 요소는 빛의 스펙트럼 끝에서 한데 만났다. 여기에서 빛의 스펙트럼이란 다름아닌 파장을 말한다. (132, 135쪽)

2008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운반된 연료의 대략 85퍼센트가 에어컨을 가동시키는 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224쪽)

에어컨은 땀을 흘려 열기를 식히는 우리 몸의 자연적인 온도 조절 기능이나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240쪽)

푸른 들에 파랗게 빛나는 하늘이 있는 곳에서 흐르는 바람이 사람을 살찌웁니다.
 푸른 들에 파랗게 빛나는 하늘이 있는 곳에서 흐르는 바람이 사람을 살찌웁니다.
ⓒ 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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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라는 책에서 <하이디>라는 동화책을 도드라지게 다룹니다. <하이디>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입니다. 높고 깊은 멧골에서 할아버지하고 둘이 사는 하이디입니다. 도시로 끌려가서 지내야 할 적에 늘 숲을 그리면서 울었고, 숲을 그리면서 울다가 몸져누웠으며, 숲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에 씻은듯이 털고 일어납니다. 하이디하고 동무가 되었던 클라라도 도시를 떠나 하이디가 있는 높고 깊은 멧골로 찾아가니, 이곳에서 아픈 다리가 낫고 튼튼하며 씩씩한 몸이 됩니다.

<공기>라는 책에서도 말하지만, 숲이 우거진 멧골집은 사람 몸에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니까, 숲이 없는 도시는 사람 몸에 대단히 나쁩니다. 도시는 '돈이 넘치거나 많을'는지 모르나, '삶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이 없기 마련이에요. 왜 그러한가 하면, 숲이 없는 도시에서는 누구나 골골거리거나 아프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거나 약에 기대야 한다면 '아픈 몸 생각'에 옭매이면서 삶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헤아리기 힘듭니다.

도시를 짓더라도 건물만 있는 도시가 아니라 숲이 있는 도시로 지을 노릇입니다. 도시 곳곳이 나무가 우거진 거님길로 이루어지고, 너른 숲이 펼쳐지면서, 건물이나 학교나 아파트 둘레를 아름드리 숲으로 가꾸면, 도시에서 아프거나 힘든 일도 차츰 사라지리라 봅니다. 전기로 수돗물을 끌어들여서 깨끗해 보이는 척하는 냇물이 흐르는 도시가 아니라, 풀과 흙이 어우러진 들과 숲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흐르는 도시여야 합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 대목은 잘 알 만하리라 생각해요. 중앙정부에서 밀어붙인 4대강사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온 나라 냇물마다 흙바닥을 들어내고 시멘트를 들이부으니 냇물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들과 숲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아니라, 시멘트 둑에 갇혀서 고이는 냇물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요?

프리츠 하버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사람의 몸에 개입하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공기를 치명적인 무기로 바꾸어 놓았다. 공기는 녹색 구름으로 변해 적군을 죽음이나 불구로 몰아넣었다. 이 새로운 무기의 원리는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없애는 것이었다. (175쪽)

전쟁의 역사에서 에어컨으로 냉각된 공기는 고문기술의 일부로 사용되어 전쟁 포로나 반란군, 억류된 죄수에게 자백을 받거나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냉방감옥'은 널리 알려진 CIA의 고문기술 중 하나로. (236쪽)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아이와 어른 누구나 나무를 누리고 숲을 즐기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마실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아이와 어른 누구나 나무를 누리고 숲을 즐기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마실 수 있기를 빕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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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한 사람한테만 싱그럽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화학무기를 쓸 적에는 적군만 화학무기로 죽지 않습니다. 아군도 화학무기를 쐬다가 죽습니다. 하늘에 화학무기를 풀어놓으면, 이 화학무기는 지구별을 두루 돌면서 모든 사람한테 스며들어요.

핵발전소가 터졌을 적에 핵발전소가 있는 나라만 방사능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련에서 터진 핵발전소는 온 유럽을 뒤덮었습니다. 일본에서 터진 핵발전소는 태평양하고 한국 하늘까지 덮었습니다.

한국에 잔뜩 있는 공장은 매연을 한국 하늘뿐 아니라 일본 하늘하고 태평양 하늘에 퍼뜨립니다. 중국에 어마어마하게 있는 공장은 매연을 중국 하늘뿐 아니라 한국 하늘하고 일본 하늘에까지 퍼뜨려요.

바람이 흘러서 지구별을 돕니다. 한국에서 마시는 바람은 '한국 것'이 아닙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 것'입니다. 브라질 깊은 숲에서 태어난 바람이 한국으로 오고, 서울 한복판에 가득한 배기가스가 흘러서 아르헨티나로 갑니다. 슬픈 바람이 이 나라와 저 나라를 스칩니다. 기쁜 바람이 이 고을과 저 고을을 어루만집니다.

<공기>라고 하는 책은 '지구별 한집살이'에서 밑바탕이 되는 '바람'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스스로 돌아보면서 깨닫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람을 마셔야 살고, 바람을 마시지 못하면 죽습니다. 하늘이 맑은 곳에서 삶을 짓고, 하늘이 흐리거나 매캐한 곳에서는 삶을 지을 기운을 잃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aladin.co.kr/hbooks)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공기, 신비롭고 위험한
피터 에디 글
임지원 옮김
반니 펴냄, 2015.5.26.
15000원



공기 - 신비롭고 위험한

피터 애디 지음, 임지원 옮김, 반니(2015)


태그:#공기, #피터 에디, #인문책, #바람,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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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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