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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는 엄마가 떼어 놓고 직장에 가도 잘 놉니다.
 서준이는 엄마가 떼어 놓고 직장에 가도 잘 놉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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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센터에 가서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친구들과 노는 서준이입니다.
 문화 센터에 가서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친구들과 노는 서준이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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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뒤의 엄마, 엄마 뒤의 아빠, 맞아요. 딸내미가 우리 부부의 딸이어서, 우릴 보고 '엄마, 아빠'라고 하지요. 제 아내가 엄마 뒤의 엄마며, 제가 엄마 뒤의 아빠입니다. 우리 손자 녀석 서준이를 낳았으니 제 딸이 엄마가 된 것이지요. 딸내미가 어엿한 엄마가 되고 딱 14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손자 서준이 녀석이 한 살 하고도 2개월이나 나이를 먹은 거죠. 아이는 너무 건강하고 예쁘게 잘 크고 있답니다. 서준이는 전혀 문제가 없답니다. 요새 그 아이의 엄마가 문제랍니다. 음, 오늘은 그 엄마 뒤의 아빠가 마음이 아린 이야길 하려고 합니다. 엄마의 마음이 아프면 그 엄마 뒤의 엄마와 아빠도 마음이 아픈 거거든요.

워킹 맘 딸내미의 웃픈 복직 스토리

딸내미가 출산 휴가라는 걸 마치고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게 봐 줄 수 있는 노릇이 아니네요. 어린아이를 놔두고 출근하는 딸내미의 마음을 헤아리니 마음이 짠합니다. 그냥 어린아이 놔두고 출근하는 고통, 그 정도가 아니니 더욱 마음이 아립니다. 딸내미가 출근한 첫날 남긴 블로그 글입니다.

"복직, 아침에 잠간 깨어 분유 한 젖병 먹이고 잠을 다시 재우는데, 아가의 뒤척거림을 뒤로 한 채 먹먹한 가슴을 쥐어 잡으며 버스를 타고 14개월 만에 첫 출근을 했다. 사놓고 별로 큰 필요를 못 느꼈던 000 베이비모니터로 잘 자고 있나 엿보기..."

아, 출근을 하면서도 아이가 못내 걱정되어 베이비모니터까지 작동시키고는 그걸 들여다보며 출근하는 딸내미 모습, 안쓰러움이 단박에 읽힙니다. "먹먹한 가슴을 쥐어 잡으며 버스를 타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잠이 물씬 든 것도 아니고 뒤척이고 있는 아이를 내버려 둔 채(?) 회사로 향하고 있는 엄마의 마음이 콕 폐부를 쑤셔댑니다.

자박자박 밟히는 아들을 모니터로 확인하며 걷는 그 걸음이 어땠을까요. 버스를 타기 전에 찍은 길, 가로수가 처량한 모습입니다. 그냥 보면 서울의 이면도로 한갓진 길입니다. 그러나 '먹먹한 가슴을 쥐어 잡은' 딸내미의 눈에는 '처량 따따블, 심란 따따블'의 길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단출한 모습의 가로수 길을 휴대폰 스마트카드의 한 귀퉁이에 억지로 구겨 넣었을 리가 없지요.

복직 후 첫 날 출근하면서 워킹 맘 딸내미가 서준이를 감시합니다. 그런데 아빠 보다 일찍 일어나 혼자 잘 놉니다.
 복직 후 첫 날 출근하면서 워킹 맘 딸내미가 서준이를 감시합니다. 그런데 아빠 보다 일찍 일어나 혼자 잘 놉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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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버스를 타기 전에 찍은 길, 가로수가 처량한 모습입니다.
 딸이 버스를 타기 전에 찍은 길, 가로수가 처량한 모습입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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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가로등 기둥에 붙은 전단이 다 처연하게 보입니다. 저만치 보이는 쓰레기통이 허접하게도 그 처연함과 어울리는 건 또 무슨 이유일까요. 그런데 쓰레기통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완벽하게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아서요. 실은 모두가 제 자리에 있는데 제 딸내미만 제 자리를 못 찾는 것 같습니다.

손자 녀석의 엄마가 아프니 그 엄마의 아빠도 아픕니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 40분간 버스를 타고 간 1년 2개월만의 첫 출근이 회사의 미숙한 일처리로 복직이 안 되었다면 어떨까요? 이건 질문이 아닙니다. 워킹 맘 제 딸내미의 첫 복직은 실패작이었으니까요.

제 딸의 표현을 빌자면, 복직 전에 꼭 입어야 한다며 유니폼을 신청하라고 인사부장이 벌써부터 성화를 해서 그것도 미리 신청을 했답니다. 처음으로 그 유니폼을 입고 팀장, 부장 등등 인사도 다 마쳤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일하는 부서가 아직 인사부더라고. 즉 아직 휴가 중이라는 것. 직원들이 출근하기엔 이른 시간, 9시 전이었습니다.

출근 전인 인사부 담당자에게 전화해 확인한 결과, "아직 발령 결재가 안 나서 출근 안 해도 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답니다. 복직이 안 되다니? 그럼 유니폼으로 난리 브루스를 떤 건 뭔데? 제가 다 화가 나네요. 허, 그러면서 저쪽에서 한 말, "금요일에 전화 몇 번이나 했는데, 왜 전활 안 받았어요." 그러나 딸내미는 억울하다며 휴대폰 받은 전화 화면까지 캡처해 놓았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딸내미 회사에서 온 전화는 없네요.

딸내미는 이렇게 썼네요. "죄송한데... 전화 안 왔거등요??....." 그러나 목줄이 달린 회사라 한마디도 대꾸를 못했노라고. 이렇게 딸내미가 마음고생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김에 일 좀 하고 가라'고 잡는 사람도 있지만, 화가 나 그냥 뿌리치고 집으로 왔답니다. 제 딸 잘했지요? 하하하. 그래서 '강제 꿀 휴가'를 하루 더 했답니다.

워킹 맘 딸내미의 출장 스토리

서준이가 엄마와 산책 중입니다. 이렇게 엄마와 같이 있어야 하는데, 워킹 맘 엄마를 둔 탓에 혼자 놀아야 합니다.
 서준이가 엄마와 산책 중입니다. 이렇게 엄마와 같이 있어야 하는데, 워킹 맘 엄마를 둔 탓에 혼자 놀아야 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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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모 회사 성토 좀 더 하겠습니다. 그 '모 회사'는 말할 것 없이 제 딸내미 다니는 회사지요. 그냥 금융권이라고만 말하겠습니다. 누구는 그러대요. 금융권이면 칼 퇴근하고 대우도 좋다고요. 허, 그냥 웃지요. 제 말 열 마디보다 딸내미 한 마디 표현 빌리는 게 낫겠죠?

"회사 싫다. 아... 정말, 말도 안 되는 조직이다. ... 무대가성 조기 출근과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는 대체 뭐가 다른 걸까. ... 버리고 싶다."

복직하고 며칠 안 돼 딸내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냐니까 기차 안이랍니다. 부산에 가는 중이라고. 이유를 물으니 출장 가는 거랍니다. 3일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고. 딸내미에겐 격한 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정말 제가 화가 나더군요. 아이 낳아 기르다 14개월 만에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애 엄마에게 장기 출장이라니?

손자와 떨어져 애달파할 딸내미를 생각하니 맘이 애입니다. 딸내미가 아직 복직 안 했으면 출장은 누가 갔을까요. 내 참! 손자 낳은 딸내미 둔 애비라 이런 거겠죠? 제가 회사의 명령권자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딸내미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면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을 보낼 수는 없고... 그러나 이해는 안 가는 대목입니다.

아주 다른 두 회사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 딸내미 회사 얘기는 했고, 제 아들이 백수 탈출한 지 얼마 안 되거든요. 독일계 회사인데, 수습기간 동안은 정식 월급을 안 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취직하자마자 독일 출장(교육)을 가더니 돌아와 급여 통장을 보고 놀라대요. 그냥 제대로 월급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수습기간 중에도 정상 월급이.

그러더니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나고 CEO와 은밀한 대화를 했답니다. 월급 20%를 올려주겠다고 하더래요. 능력을 인정한다며. 이렇게 좋을 수가요. 적어도 1년이 지나야 연봉 협상 자격이 주어지는 건데, 특별 케이스랍니다. 능력 얘기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능력을 인정해 워킹 맘 딸을 출장 보내는 회사와 능력을 인정하니까 3개월 만에 월급을 올려주는 회사, 대비 되지 않나요.

그나저나, 딸내미가 회사 일로 이리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그 딸내미 뒤의 이 할배의 스트레스도 상승 중인데도, 근심과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녀석이 있답니다. 물론 제 손자 녀석 서준이랍니다. 녀석은 엄마가 직장에 가도 잘 놉니다. 먹고, 싸고, 놀고... 네, 서준이의 주특기는 여전합니다. 오히려 딸내미가 화가 난답니다. 서운하답니다. 녀석이 너무 멀쩡하게 잘 견뎌서. 하하하.

덧붙이는 글 | [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는 손자를 보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의 글입니다. 계속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김학현, #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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