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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병창(竝唱)이란 말이 낯설어 인터넷을 검색하니 '창(唱)에 가야금 연주가 곁든 연주형태'라는 설명이 나온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야금 연주보다는 창을 곁들인 병창이, 그것도 독창이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병창단이 더 화려하고 웅장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가야금 병창단은 가야금 연주의 꽃'이라 주장하는 사람을 만났다. 2006년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을 결성한 김유진(52) 단장을 지난 6일 서구 당하동 병창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가야금 병창단으로는 인천에서 유일하다고 했다.

서른에 눈 뜬 국악의 세계
   
 가야금 연주를 선보이고 있는 김유진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단장.
 가야금 연주를 선보이고 있는 김유진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단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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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이 고향인 김 단장은 중학생 때 서울로 이사 해 대학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했다. 그 후 1987년 남편 직장을 따라 인천에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좋더라' 하더라고요. 집에만 있는 게 심심하고 뭔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런 얘기를 듣고 동네를 엄청 돌아다녔어요. '가야금'이라고 쓰여 있는 것만 찾아다녔으니까요."

그러다 남구 숭의동에서 가야금교습소를 발견했고,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로 학원 등록을 해줬다. 출산·육아에 빠져있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나이 서른이었다.

김 단장은 요즘 '내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운명이란 게 정해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단다. 그 때는 가야금과 운명이 엮일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17년 전 이곳 당하동으로 이사를 왔다. 가야금을 한창 배우고 있을 때였다.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던 한 역술인이 '소리를 내고 두드리면서 여러 사람의 밥그릇을 챙길 운명'이라는 말을 스쳐 지나가듯이 했다.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않았던 그 말이 요즘은 가끔 생각난단다.

숭의동에 있는 가야금교습소는 줄풍류(=현악기로 즐기는 선비들의 풍류)의 일종으로 궁중음악을 가르쳤다. '언젠가 아리랑 등의 창을 가르쳐주겠지' 생각하며 가야금을 열심히 배웠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 선생님에게 '창은 언제 가르쳐 주느냐'고 물으니, '이곳은 연주만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 길로 학원을 나왔다.

그 후 미추홀관현악단에 들어가 양금과 아쟁을 배워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국악을 전문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2004년 대학에 다시 입학해 대학원까지 다녔다.

인천 서구 당하동에 둥지를 틀다

좀 더 깊어진 가야금 세계에서 다시 가야금을 연주하며 봉사활동을 다녀볼 생각이었다. 당시 인천여성문화회관(현 인천시여성가족재단)에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곳에서 창 선생님을 모시고 단원들과 연습했는데 불편했다.

워낙 많은 단체가 이용하는 곳이라 안정적인 시간을 확보하거나 편하게 연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즈음 김포의 한 상가에 빈 공간이 있어, 그곳까지 가서 연습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선생님과 단원들 모두 힘들어했다. 6년 전인 2009년 지금의 당하동에 연습 공간을 마련했다. 남편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종일 연습합니다. 공연이 있으면 일주일 내내 연습하기도 하고 보통 공연 일정이 잡히면 2주 전부터 연습을 시작하죠."

단원은 모두 내 식구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단원들이 초청 공연을 하는 모습.<사진제공ㆍ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단원들이 초청 공연을 하는 모습.<사진제공ㆍ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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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단장의 단원 선발 기준은 '인격'이다. 여럿이 함께 가려면 실력보다는 좀 느려도 인격을 우선해야한다는 것이다.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주고,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원은 현재 10여명이다. 이중 공연할 수 있는 사람은 장구로 장단을 맞춰주는 이까지 7명이다. 단원을 어떻게 모집하는지 궁금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학원(=연습실) 밖에 간판도 없어요. 사람들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초보자에게 가야금 연주와 노래를 가르치는 데 힘이 엄청 듭니다. 입소문으로 찾아오거나 소개받은 사람들 중 40~50대 여성 위주로 선발해요."

초보자들에겐 강습비를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김 단장은 지금도 개인적으로 선생님한테 배워 와 단원들을 가르친다. 한 사람을 공연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들려면 공을 엄청나게 들여야 하는데, 젊은 여성은 결혼과 출산으로 공연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공연이 가능한 연령대를 선호한단다.

김 단장이 배우는 선생님들은 구음으로 전수한다. 악보 없이 기억에 의존해 전수하는 것이다. 김 단장은 단원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악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악보를 만들었다.

"'이 소리는 밀어서 내고, 이 건 꺾어서 내고, 이 소리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게 해야한다'는 식으로 악보를 만들었죠. 요즘은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데 가사에 박자와 음의 높이 등, 설명을 곁들어 적어줍니다. 다른 데서는 배울 수가 없어요. 가야금 병창단이 별로 없는 이유가, 여럿이 함께 하는 게 힘들어서죠. 단원들끼리 마음 맞추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한 선생님 밑에서 배워야합니다. 아리랑을 불러도 다 달라요."

전수하는 사람에 따라 시김새(=꾸며주는 소리)도 다르다. 어느 부분에는 가야금에 시선을 두고, 어느 곳에서는 관객을 쳐다보고 등, 시선 처리하는 방법도 다르다. 병창단원들은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처럼 일치시켜야한다.

예산 부족하면 먼저 없어지는 국악무대

전국 곳곳은 물론 작년에는 초청받아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열린 공연에도 다녀왔다. 뿌듯할 때가 많지만 가끔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하기도 하단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기관 등 관공서가 주최하는 행사에 섭외가 많이 들어와요. 그쪽에서 개런티를 물으면 '예산 책정되는 대로 받겠다. 굳이 많이 받지 않아도 공연하겠다'고 하면, '참고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뒤 '예산이 부족해 안 되겠다'는 연락이 옵니다. 행사가 없어지는 것도 우리가 개런티를 많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예산이 부족하면 제일 먼저 국악무대부터 없애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죠. 최근 중구에서 주최하는 한 축제에서 우리와 인간문화재인 판소리 선생님과 같이 섭외가 들어왔어요. 며칠 후 취소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럴 때 정말 속상하죠. 나라에서 국악을 키워주고 뒷받침해줘도 유지하기 힘든데 제일 먼저 없애잖아요."

전통음악인 궁중국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김 단장은 시대 흐름에 맞춘 창작국악은 역동적이고 화려해서 좋다고도 했다. 이렇게 좋은 국악을 사람들이 접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단다. 바쁜 공연 일정에도 요즘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이 집중해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전통적인 가야금은 열두 줄입니다. 열두 달을 뜻하는 거죠. 요즘은 현을 늘려 소리를 풍부하게 하는 개량 가야금도 많아요. 25현 가야금으로 기존 판소리 '흥부가'를 편곡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저희만의 노래를 만드는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김유진, #휘몰이, #가야금, #병창단,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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