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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산물 연일 취소, 터미널 승객 1/4 급갑... "순창, 메르스로 죽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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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낮 12시 40분, 전북 순창버스터미널 앞 택시정류장. 맨 앞에 서 있는 택시로 다가가 "오늘 손님 좀 태웠느냐"고 물었다. 손으로 쓱 마스크를 내리는 기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침 7시 반에 나와서 인자 여그 (맨 앞에) 왔어. 인자 순번이 돌아온 거제. 십원짜리 한 장도 못 봐브렀어. 이거 참말로 생계의 큰 문제여. 언제까지 이럴란가…."

곁에서 듣고 있던 다른 택시기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최근 며칠 죽겄어요. 요새 같으면 (하루에) 돈 2만 원도 많이 번 거예요. 어젠 하루 종일 1만2000원 벌었어요. 그것도 점심에 짜장면 한 그릇 사 먹으니 남는 게 없어요. 지(기)름 열(넣을) 생각도 못허고…."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순창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9일 순창터미널의 택시기사들이 손님이 없어 택시만 줄지어 세워둔 채 대기하고 있다.
▲ 줄줄이 선 택시... "손님이 없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순창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9일 순창터미널의 택시기사들이 손님이 없어 택시만 줄지어 세워둔 채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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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에선 처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전북 순창이 후폭풍으로 '울상'이다. 지난 4일, 의심환자 발생 이후 5일부터 해당 환자가 살던 마을을 즉각 격리하는 등 순창군이 발빠른 조치에 나섰지만, 메르스는 지역 살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순창의 메르스 환자 발생이 보건 당국의 '초기 대응 미숙'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부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1시에 찾은 순창버스터미널은 매우 한산했다. 매표소 직원에게 다가가 "평소에 비해 이용객이 어느 정도인가"라고 묻자 "1/4 수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버스기사들도 "주로 광주, 남원, 전주행 직행버스가 있는데 평소 10명 태웠다면 지금은 1, 2명 탈까말까 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들도 "평소 왕왕 있던 시외 가는 손님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순창 안을 왔다갔다하는 주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루에 (택시 손님) 2, 3명 태우면 많을 정도"다. 평소 노인들로 가득했던 읍내 곳곳의 병원은 물론, 식당과 인근 관광지인 강천사에도 발길이 뚝 떨어졌다.

격리 마을, 통제 엄격... 하루 두 차례 발열 검사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순창군·순찰경찰서 직원이 A마을 입구를 지키고있다.
▲ 메르스 격리 마을, '출입금지'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순창군·순찰경찰서 직원이 A마을 입구를 지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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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환자가 거주했던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격리돼 있는 상태다. 마을 입구 3곳에 마련된 통제초소를 순창군·순창경찰서 직원 12~15명이 24시간 3교대로 지키고 있다.

9일 통제초소를 찾았다. 흰 방호복과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이 지역은 메르스 발생 지역으로 출입을 통제합니다"라고 적힌 사람 키높이 만한 철제 간판 옆에 서 마을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순창군보건의료원은 하루 두 차례(오전 10시, 오후 4시)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을 상대로 발열 검사를 진행했다. 메르스가 의심되는 주민은 즉각 전북대병원으로 이송한다.

통제초소 밖에서 본 마을은 돌아다니는 주민 하나 없이 적막했다. 이따금 구호품을 나누기 위해 마스크를 쓴 마을의 청년들이 통제초소에 들르거나, 마을 내 독거노인을 위한 점심 도시락 배달차가 드나드는 모습만 눈에 띄었다. 통제초소 직원들은 마을을 드나든 예외의 차량이나 인원도 근무일지에 빠짐 없이 기록했다.

이번에 격리된 이 마을 63세대 119명의 주민들은 순창군의 격리 결정을 수긍하면서도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마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주민들은 구호품에 의지한 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은 잠복기(2주)가 끝나는 18일까지 격리될 예정이다.

통제초소의 직원들은 "지금은 덜하지만 격리 초기에는 매일 마을주민들이 내려와 항의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도 오후 3시 30분께 한 주민이 내려와 "(수확물을) 팔아먹도 못하고 갑갑해서 사람 죽겄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 주민인 문광철(36)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집 바로 앞에 논이 있는 사람들은 이따금 나가기라도 하는데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나 택시기사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 힘들어한다"며 "오늘도 순창군보건의료원에서 발열 검사를 했고, 별 이상이 없다고 나왔는데 심적으로 괜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처음부터 (환자를) 평택에 격리시켰다면(이 마을에서 나온 메르스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됐다-기자 말) 이렇게 마을 전체가 통제되기 전에 문제가 해결됐을 텐데"라며 "(잠복기 동안) 환자에게 전화 한 번도 안 했다고 하니, 이는 정부가 굉장히 잘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순창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9일 한산한 순창읍 인근을 마스크를 쓴 주민이 지나고 있다.
▲ 마스크 쓴 채 지나는 한산한 읍내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순창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9일 한산한 순창읍 인근을 마스크를 쓴 주민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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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마을 주민들은 구호품에 의지한 채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9일 A마을 입구에 라면, 김 등 구호품이 놓여 있다.
▲ 구호품 놓여 있는 '메르스 격리 마을' 앞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마을 주민들은 구호품에 의지한 채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9일 A마을 입구에 라면, 김 등 구호품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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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메르스', 정부 초기대응 미숙 탓... 보상 필요"

문씨의 말대로, 이 마을의 메르스 환자는 정부의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환자 A씨(72, 여)는 지난달 21일 평택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4일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여 후송됐다. 이후 5일 1차 양성 판정, 6일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A씨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전북 순창의 집까지 이동하는 과정 동안 어떤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엔 "보건 당국의 격리 지시를 어기고 A씨가 임의로 이동했다"고 잘못 알려져 환자와 가족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한편 마을에는 초중고생 약 15명도 격리돼 있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뒤, 순창 관내 초등학교는 12일까지, 중고등학교는 이날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가 텅 빈 탓에, 낮에도 읍내 곳곳에선 학생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카페에서 만난 학생은 "다른 지역에선 순창 고추장을 먹으면 메르스에 걸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한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읍내는 평소보다 한적했지만, 마스크를 낀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읍내에서 만난 한 주민(40)은 "보건 당국의 미숙함으로 인해 순창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으니, 특별한 보상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 행정자치부 장관이 와서 순창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먹고 갔다는데 보다 적극적인 대처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관련기사 : '순창 고추장' 맛본 행자장관, '메르스 대응' 지적엔...).

순창군 측에 따르면, 메르스 환자 발생 후 순창군 농특산물의 직거래가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난 한정안 순창군 공보담당은 "농특산물 판매 방법 중 40%를 차지하는 직거래가 현재 모두 멈춘 상황"라며 "주문했던 고객들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디, 복분자, 블루베리, 매실 등은 지금 본격적으로 수확·판매해야 하는데 판매길이 꽉 막혔다"라며 "봄철 수익이 농가 1년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만난 택시기사는 "공장 하나 없어 공해도 없고, 대부분 자가 농산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이전부터 (순창은) 청정지역으로 알려졌다"며 "순창이 이렇게 된 건 처음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기자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오후 1시, 손님 한 명이 택시에 올랐다. 그는 "3500원(기본요금)짜리 하나, 뛰고 와야 쓰겄소"라고 속삭이며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9일 휴교를 한 순창의 한 초등학교가 텅 비어 있다. 순창군은 비교적 멀리 떨어진 중학교 1곳을 제외하곤 순창 내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 메르스 여파로 텅 빈 교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9일 휴교를 한 순창의 한 초등학교가 텅 비어 있다. 순창군은 비교적 멀리 떨어진 중학교 1곳을 제외하곤 순창 내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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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9일 순창군보건의료원 직원들이 주민들의 발열 검사를 위해 A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발열 검사는 하루에 두 번(오전 10시, 오후 4시) 진행한다.
▲ 보건의료원, 발열 검사 위해 '격리 마을' 진입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은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다. 9일 순창군보건의료원 직원들이 주민들의 발열 검사를 위해 A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발열 검사는 하루에 두 번(오전 10시, 오후 4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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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메르스,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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