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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구제역, AI 바이러스의 창궐과 살처분은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1000만 돼지들의 99.9%가 사육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실체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5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전국을 뒤흔들었던 구제역 살처분 대란 이후 '진짜 돼지'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달이 '당신의 식탁이 위태롭다'란 타이틀로 기획 기사를 보내와 몇 편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그거 고기 먹지 말라는 과격한 영화 아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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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주변의 반응은 그랬다. 돼지, 살처분, 구제역. 영화를 설명하는 이런 키워드는 곧바로 '고기 먹지 말자'는 과격한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황논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사실, 영화는 그 이상이다.

오는 7일 개봉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4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

이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과는 이런 저런 인연이 많았다. 2003년께였을까. 동물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환경연합에 가입했을 때였는데,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황윤 감독 역시 동물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황 감독이 만든 작품이 <작별>(2001년)이었다.

<작별>의 주인공인 호랑이 '크레인'을 2012년 다시 만났다. 그 옆에 황윤 감독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4년의 기간 동안. 친구로서, 동지로서, 그리고 같은 여성 활동가로서.

사람마다 그 영화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이다. 음식과 동물권, 가족.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속 장면 중 하나는 황 감독이 혼자 무거운 장비를 이고 지고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작은 여자의 몸에는 버거울 법한 짐이 어깨에 놓였다. 책임감의 무게 그리고 물리적인 무게.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동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이야기다. 고기 먹지 말라는 주장성 영화가 아니라 한 존재에 대한 각성의 이야기다. 회의하고 망설이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내가 아픈 만큼 아마 돼지도 아팠을까? 공감의 이야기며 따뜻한 서술이다.

돼지가 와달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황 감독은 왜 그토록 억척스럽게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다녔을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황윤이라는 사람의 집념에 공감했다. 나 역시 지난 2년 반 동안 혼자 전국의 동물원을 다녔다. 그 집념은 오직 진리를 향한 열정과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 객관적인 시선으로 승부하겠다는 이성에서 나온다.

이름을 부르자, 고기를 넘어 생명이 된 돼지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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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영화제 때 한 번, 그리고 언론 시사회 때 한 번. 총 두 번 영화를 관람했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달랐고, 아마 앞으로도 내 생각은 변화할 것이다. 이전의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는 황윤 감독이 엄마가 된 이후 찍은 것이다. 그 경험은 영화를 더욱 노련하고 세련되게 만들었다. 이전의 영화보다 더욱 성숙하게 변했다.

도영의 엄마인 동시에, 무수히 많이 이름 없이 죽어간 돼지들의 엄마. 사람 엄마 황윤과 돼지 엄마 십순이. 사람 엄마 윤은 십순이를 통해 고기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이름 없이 죽어간 생명을 끄집어냈다.

황윤 감독은 전통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찾아갔다. 그 안에서 '이름을 가진' 돼지를 만났다. 엄마돼지 십순이. 황 감독은 십순이가 아기를 낳을 때, 도영이를 낳던 힘든 과정을 떠올렸다. 우리 모두 엄마의 자식이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고통을 통해 세상에 나온 생명들인가.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냐만.

그러나 돼지는 고기의 원천이다. 우리는 돼지를 고기로 만들어 먹기 때문에 그들에겐 이름이 없어야 했다. 그들은 kg(킬로그램)으로, 육질로, 기계로 취급되어야 마땅한 존재였다. 엄마 황윤 감독이 십순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돼지는 '고기'를 넘어선 '생명'이 되었다. 그 혁명적 목소리는 잔잔하기에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어디선가 들리는 돼지소리... 지옥의 문을 열었다

파편적인 장면들이었다. 질병 발생으로 돼지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했다.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생채기가 남았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들을 되돌려놓았다.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다시 고기를 먹었다. 골목골목에 자리한 고깃집에는 아직도 여전히 살타는 냄새가 흐른다. 그러나 이후 각성한 사람들 일부는 자신의 식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이렇게 먹어도 되나? 내가 먹은 고기와 그 돼지는 결국 같은 존재 아니었나? 이건 철학적 문제제기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한 시점, 그러니까 2012년 초. 황윤 감독과 나는 죽은 돼지들의 자취를 함께 찾으러 나섰다. 돼지축사가 있는 곳을 뒤지다가 우연히 한 농장을 찾게 되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돼지들 소리가 나는데, 어디지? 어디가 문이지? 그리고 그 문을 열었다. 지옥의 문, 공장의 문을 열었다.

황윤 감독의 마음속에 남은 생채기를 나는 일찍이 경험했다. 2006년 처음으로 돼지농장에 갔을 때, 그리고 2011년 겨울 처음으로 생매장 현장을 봤을 때. 그때부터 활동가들의 마음에 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죄책감과 일상의 어려움, 주변의 시선에 시달리게 됐다. 공장의 문을 연 대가였다.

돼지 먹기를 피하면서 삶은 더 가혹해졌다. 어디를 가도 먹을 것이 없었다. 불편하게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했다. 가방이 더욱 무거워졌다. 돈가스를 사달라고, 젤리를 사달라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거의 모든 식품에 동물성이 들어가 있었다. 철학적 각성을 한 자에게 일상은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다.

돼지의 기본권 혹은 '돈격'을 존중하는 '농장'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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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적으로 축산을 위해 사육되는 농장동물은 대략 610억 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서구에서 농장동물의 복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흔히 근대식 축산업을 공장식, 기업식 축산업이라고 부르는데 공장식 축산업은 동물의 생태에 산업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산업 규모에 동물을 끼워 넣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부터 시작된 공장화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 축산업 대부분 모두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자연 상태의 돼지는 특별한 훈련 없이도 잠자리와 배설할 곳을 구분하고, 시각, 청각, 후각이 예민하게 발달해 있으며, 코로 땅을 파 땅속의 풀과 뿌리 등을 섭취하는 습성이 있는, 군집생활을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업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밀집 사육 방식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규격화된 사육조건에 동물을 맞추다 보니 동물의 본능은 무시되었고, 110kg의 규격화된 몸집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된다.

번식용 암퇘지는 생후 210일이면 인공수정으로 임신을 하기 시작해서 3년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데, 폭 60센티, 길이 2m인 스톨에서 겨우 앉았다 일어나는 정도만이 허용된다. 태어난 새끼들은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꼬리와 송곳니를 잘리는데 이때 수의학적 마취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미의 젖을 뗀 돼지들은 육성돈사에서 살을 찌워야 하는데 평균 마리당 0.92평방미터 정도의 공간에서 지낸다. 몸길이가 1m가 넘는 돼지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돈사에서 배출되는 배설물 처리 형태는 거의 대부분 슬러리 돈사로, 콘크리트 재질의 바닥으로 된 사육공간 대부분은 깔짚이 제공되지 않은데다 배설물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환기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곳이 대다수이고 암모니아와 황화수소, 이산화탄소 등의 농도가 높아 돈사 내 공기의 오염 역시 심각하다.

영화 속에는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그들도 이런 방식이 인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고기를 많이 먹고 싶어 하면 할수록 이런 공장은 계속 운영될 것이다.

영화에는 '공장'뿐 아니라 '농장'이 나온다. 공장은,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의 99.9%가 생산되는 곳이다. 농장은, 공장과는 전혀 다른 전통 방식으로 소규모로 돼지를 키우는 곳이다. 농장주는 돼지의 기본권 혹은 '돈격'을 존중한다.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축사, 푹신한 땅과 볏짚. 어미돼지들은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며 개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는다.

감독이 어미돼지 '십순이'를 만난 것도, 십순이의 막내에게 '돈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이곳에서다. 돼지들은 볏짚은 물론, 당근 줄기 같은 야채 부산물, 야생초 등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받고, 일부 돼지들에겐 방목장에서 뛰어놀 기회도 주어진다. 공장에 비하면 천국 같은 이곳 또한 완벽한 '지상낙원'은 아니다. 이곳의 돼지들 또한 결국은 고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도 고통이 따른다.

어미돼지들의 지속적인 임신과 출산, 새끼돼지들의 거세, 그리고 도축... 농장의 딜레마이다. 그러나 적어도 돼지들의 기본권을 존중하려고 애쓰는 농장이 공장의 대안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농장에 존재하는 한계들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아빠를, 미래세대를 위한 영화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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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바로 도영이 아빠이다. 야생동물 수의사로서 동물을 사랑하고 야생동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아빠는 자신이 먹는 고기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우리 시대 아빠들의 모습이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아빠들은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가족과 집단이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취향과 자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엄청난 불편함을 초래한다.

아빠에겐 죄가 없다. 물론 돼지에게도 죄가 없다. 죄가 없는 아빠들이 돼지들의 고통과 연결된다니 이 운명의 고리는 얼마나 얄궂은가. 가족 간의 단란한 야유회는 고기를 먹네 마네로 금세 냉랭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감독은 이 불편한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는 걸까.

고기를 먹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렇다고 당연한 것도 아니다. 세상의 변화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생긴다. 돼지를 통해 인간 세상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동물을 자원으로 생각하고 이용한 역사가 보였다.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는 팔자가 있다고 했나.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우리에게도 나름의 팔자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태어난 아름다운 산천은 70% 이상이 산이다. 돼지를 대량으로 키우려면, 이 자연은 지속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과연 이것이 효율적인 산업일까?

아기돼지들과 도영이가 달리던, 영화 속 푸른 여름날의 밀밭을 떠올린다. 그리고 도영이가 어른이 된 세상을 상상해본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산과 강을 가축 분뇨로 망친 채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을까. 잡식동물로 태어난 나는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고기를 먹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고기를 안 먹는 거나 적게 먹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 고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꿈틀댄다면 아마 그것은 습관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미래시대에는 상식의 틀을 넘어  일상에 대해 회의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이어져왔습니다. 돼지를 통해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우리시대의 엄마와 아빠에게 권한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케어(care) 공동대표이며,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입니다.



태그:#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돼지, #공장식 사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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