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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 <십 대 밑바닥 노동>
▲ 책표지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 <십 대 밑바닥 노동>
ⓒ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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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청소년 노동자 원석(가명)이는 음식점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다. 대신 아직 생소한 업종인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돼 있다. 좀 이상한 구조다. 우선 음식을 원석이가 돈을 주고 구매하고 이를 배달한 후 음식값을 받아 충당한다. 그런 구조에서 원석이는 2천 원을 손에 쥔다.

원석이가 일하는 배달대행업체는 음식점에 노동자를 따로 채용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당연히 대행업체는 더욱 많은 식당과 제휴하기를 원한다. 음식점은 직접 고용했을 때와 같은 배달 시간을 원한다. 즉, 둘의 욕망이 합쳐지며 배달 범위와 건수는 늘어나고 배달 시간은 계속해서 단축돼 간다.

바로 이 시점에서 배달 노동자는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늦어서 음식이 식어 반품되면 이미 돈을 주고 산 원석이가 모든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음식점 사장이나 손님들의 불만 섞인 폭언도 원석의 몫이다.

이러다 정작 사고가 나면 책임져야 할 노동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다. 인건비 절감과 대행업체의 수수료, 그 속에서 청소년 노동자들의 수입은 그대로다. 하지만 위험은 배가된다. 이로써 청소년들의 목숨 값을 배달대행업체와 음식점이 나눠 갖는 구조가 완성된다. 그런 착취 속에서 일해야만 하는 청소년 노동자들의 삶은 아찔하다.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 원석은 왜 배달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그는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이렇게 답했다.

위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음식점 주인, 사무실 사장한테 욕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처음 일할 때는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호 지켜 가며 일했다가 하루 종일 겨우 6천 원 번 날도 있었다. 그 다음 날 진짜 굶었다. -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왜 청소년이 땀이 아니라 코를 흘리며 돈 번다고 생각할까

<십 대 밑바닥 노동>에 등장하는 원석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종일 전단을 돌리고도 "네가 버리는 걸 봤다"란 한마디로 임금을 떼이는 청소년들, 택배 상하차 5시간 만에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그럴 줄 알았다'란 표정으로 일한 임금을 당연히 주지 않는 어른들이 있다.

책이 알려주는, 청소년들이 직면해 있는 노동의 각박한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책이 실태를 전혀 과장하지 않았지만 과장한 듯 느껴지는 이유다. 그 속에서 우리가 무관심했던, 혹은 의식했지만 외면했던 청소년들의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뒤틀려 있음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청소년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용돈 벌이'나 '코 묻은 돈'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차별적이다. 왜 일을 해야만 하는지를 묻기보단 청소년들의 노동을 '용돈 벌이' 정도로 사소하게 취급한다. 청소년들은 왜 땀이 아니라 코를 흘리며 돈을 번다고 생각할까.

결국 그 말 속에는 '그러니 너희는 편견과 소외를 당연히 감내해야 해'란 강요가 묻어 있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그 나이가 아니라면 받아도 되지 않을 시선과 폭력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들은 벼랑 끝에서 하소연할 곳조차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노동법에 따라 피해를 입은 노동자를 지원해야 할 근로감독관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책에 등장한 청소년 노동자들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점심시간에도 일했는데 휴게시간으로 빼고 시급을 받지 못했단 청소년에게 근로감독관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점심시간 1시간씩은 다 뺀다. 그것까지 이야기하긴 좀 그렇지 않냐. 내 아들이 너처럼 돈 받겠다고 그러면 나는 받지 말라고 그럴 거다." -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오히려 역할이 뒤바뀐 셈이다. 청소년이 '점심시간에 쉬긴 했으니 1시간 빼도 될 거 같다' 말하면, 근로감독관이 말리며 '실제로 일한 만큼 돈을 받아야 된다'고 해야 말이 되지 않나. 결국 근로감독관은 화를 냈다. '너 잘 되라고, 선배로서 하는 얘기'란 눈물 나도록 고마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청소년 노동을 덮치는 '근로 빈곤'의 시대

청소년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근로감독관조차 '선배' 운운하며 가르치려 하니, 사업주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리란 사실은 짐작 가능하다. 사업주들에게 청소년 노동자들은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다.

청소년들에게 미성숙의 굴레는 지워 버리기 힘들다. 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꼭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두가 일을 미숙하게 한다는 전제는 부당하다.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시정을 요구하자, 그는 "애들 써주는 게 어디냐?"고 답했단다.

뒤통수 때리기나 벽 보고 서 있기와 같은 체벌도 청소년에게만 행해지는 노동 규율이다. 고깃집 주방에서 일하던 한 청소년은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혼자 옮기다 엎지를 뻔했던 일을 가장 아찔하고 서러웠던 순간으로 꼽았다. 호텔 연회장에서 일했던 청소년은 손님의 눈에 띄지 않는 병풍 뒤 바닥에 앉아 쉬면서 왠지 의자에 앉을 자격도 없는 바닥 인생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청소년은 주방에서 빵을 조금 태웠다는 이유로 탄 빵을 입에 쑤셔 넣는 '가르침'을 받고서는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배달 일을 했던 청소년은 태풍 속을 뚫고 배달을 다녀왔는데도 '빨리빨리' 재촉만 하는 사업주를 보고서는 '죽으라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일 자체의 고단함보다 자기를 대하는 모욕적 태도가 더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더 적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는 노동의 시대다. 약자는 '더 약자'에게 가혹해야 하고 이렇게 내몰린 이들에게 세상은 무관심하다. 그야말로 '근로 빈곤'의 시대가 청소년 노동도 덮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청소년 노동자들의 이름이 '야'나 '너'가 아니란 사실을 말이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 <십 대 밑바닥 노동>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기획 / 이수정·윤지영·배경내·림보·김성호·권혁태 지음 / 교육공동체 벗 펴냄 / 2015.01 / 1만2000원)



십 대 밑바닥 노동 -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

이수정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2015)


태그:#십 대 밑바닥 노동,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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