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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6월, 수많은 별빛이 쏟아지는 시골 마을의 아낙네가 돼보고 싶은 마음에 동반자에게 '전라북도 장수군 산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구름이 잡힐 것 같이 낮게 떠다니는 게 인상 깊었던 곳.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얘기해봤는데 남편은 벌써 '어떻게 살지'에 대해 방향을 잡고 있었다.

우리는 1주일 동안 장수 산골 곳곳을 다니며 빈집을 찾기로 결심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작은 '텃밭이 있는 아담한 주택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림을 그리며, 1~2인용 텐트와 캠핑 도구를 짊어지고 인터넷에 있는 빈집 정보를 찾아 돌아 다녔다.

아담한 시골집 찾기, 정말 어렵다

장수 산골의 빈집
 장수 산골의 빈집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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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나온 사진 및 집에 대한 설명과 다르게 대부분 무너지기 직전의 옛날 집이라 수리비가 많이 나와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마을마다 이장님과 슈퍼마켓을 찾아 빈집을 물어봤지만, 다들 고개를 저을 뿐, 날이 지나갈수록 우리의 부푼 꿈은 조금씩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가 살 수 있는 빈집이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군청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계시는 한 분이 귀촌을 환영한다며 지역 사회의 미래와 귀촌 하신 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매일 야영하면서 집 찾느라 고생한다며 귀촌하신 분의 민박집을 소개해주시면서 대신 숙박비를 내주셨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귀촌 와서 직접 집을 짓고 자연 속에 살아서 좋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많아 지역 주민과 동화하며 살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민박집 근처에 빈집이 보여 머물 수 있는지 물어보니, 손수 집을 짓고 살던 부부였는데 남편이 겨우내 외부로 일하러 가고 부인 혼자 집에 지내게 되면서 결국 이혼해 집을 내놓은 상황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집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1년 여 지낼 곳을 찾는 것이기에 갈 길이 멀어 보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았다.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도 물어보고, 면사무소 귀농·귀촌 담당자에게 문의한 끝에 '이웃에 사시던 분이 몇 년 전부터 전주에 사시게 되어 빈집이 있는데 한 번 전화해 보겠다'며 기다려 보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 10시 면사무소 앞에서 빈집 주인과 만나기로 했다. 근처 정자에 텐트를 친 뒤 설레는 마음으로 어떤 공간일지 기대하며 잠들었다.

집이 산속 외딴 곳이라 괜찮을는지 모르겠다는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10여 분 차를 타고 숲으로 들어서 비포장도로로 쭉 들어갔다. 요정이 사는 곳 같은 숲을 지나니 햇살이 사방에서 비추는 2개의 집이 보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뙝양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300여 평의 넓다란 밭과 함께 돌로 만든 집과 스틸 하우스가 위 아래로 정답게 서 있었다. 하룻밤 지내보고 마음에 들면 300여 평의 밭을 포함해 스틸 하우스에서 월 15만 원에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집과 가구들도 손을 많이 안 타서 거의 새것이었다. 우리가 꿈에 그렸던 텃밭이 있는 주택이었고 아늑한 아지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지내보지 않아도 '예스'였다. 아주머니는 직접 담근 쑥 효소로 시원한 쑥차를 주시며 열쇠를 주고 가셨다.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아시는 게 없는데, 무엇을 믿고 열쇠를 주셨을까.

결국 찾은 집,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도

월 15만원의 300평의 텃밭과 전원주택
 월 15만원의 300평의 텃밭과 전원주택
ⓒ 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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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사람이 없어 슈퍼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1시간은 걸어야 했다. 갖고 온 식자재가 쌀밖에 없어 당장 저녁과 내일 아침을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던 중, 마을에 가서 김치라도 얻어 오자고 했다. 해질 녘 20여 분을 마을로 걸어 나와 불빛이 보이는 집에 주뼛거리며 사람을 불러봤다.

구부정한 허리를 펴시며 마당으로 나오시는 할머니. 갑자기 웬 손님인가 궁금해하시며 나오셨다. 뙝양지에 와서 살려고 오늘 하루 묵으려고 하는데, 먹을 게 없어 한 끼니 먹을 김치 좀 얻을 수 있는지 어렵게 말을 꺼내니 할머니는 며칠 먹을 김치를 싸주셨다. 당장 내가 할머니께 뭔가를 드릴 수 없었지만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면 지금 받은 이 운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길을 비추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에 나와 현재 이 순간을 음미해봤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이 산골에 빛을 비추는 달빛의 은은함과 빛을 품고 날아다니는 반딧불의 흥겨움. 그리고 가끔 들리는 고라니의 울음 같은 야생 동물의 소리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 감정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겠지. 은은한 사랑과 여행의 흥겨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지 않았을까. 1주일의 여정을 마치면서 꿈에 관한 비밀을 하나를 찾았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포기하지 않고 꿈을 믿고 나가면 온 우주가 그 이야기를 듣고 도와준다는 것을!


태그:#귀농, #귀촌, #디지털노마드,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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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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