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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에 대한 여론이 여전히 들끓고 있다. 좋게 좋게 사그라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아이들 밥 한 끼를 두고서 정치적 판단을 넘어 이념적 해석까지 가는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냥 아이들에게 주는 밥 한 끼에 왜들 그렇게 인색할까? 밥 한 끼가 아이들을 게으른 아이로 성장하게 만들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가난한 아이는 동네 슈퍼에서 과자 하나 사먹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가난한 아이는 오락실에서 100원짜리 동전 하나 넣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

신문 배달 하던 중학생 시절,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다. 13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가난한 집안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1998년, 중학교 1학년 친구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새벽에 신문지에 들어가는 전단지를 끼워 넣으며 월드컵 경기를 보았고,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모습도 보았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순간 까지도 월급 10만 원을 받으며, 노동력 착취를 당하며 일을 했다. 매일 꾸벅꾸벅 조는 까닭에, 친구들은 내가 어떤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쓰는 돈은 내가 해결하고자 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될 일이 벌어졌다. 연말이 되고 불우한 친구를 돕자는 의미로 걷었던 성금이 내게로 온 것이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친구들 앞에서 이름이 불렸고 나는 선생님께 앞으로 걸어나가 도서상품권 5000원짜리 10장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너는 상품권 받아서 좋겠다. 나도 갖고 싶다."
"상품권 많으니까 1장만 주면 안 돼?"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 매점에서 점심 대신에 빵을 사먹기라도 하면, 오락실에서 100원 동전이라도 넣으면 아이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아냥거렸다. 

"이야 오락도 해! 돈 많네, 내 돈 내놔."

나는 그 순간부터 매점은 물론이고 동네 오락실 가서 오락 한번 하는 것까지 친구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당해야 되는지, 나를 걱정하고 생각해줘서 나를 추천한 친구는 물론이고 선생님까지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친구들 눈치를 봐야했다.

"넌 좋겠다. 공짜 밥 먹어서."
"나도 공짜밥 먹고 싶다. 나도 신청해 볼까?"

그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내가 그러했듯 30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처를 준 어른들이 그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라", "너희에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희생한 어른들을 위해서 일해라"라고 했을 때, 과연 그 말을 들을까?

한 장만 달라고 보채는 친구들에게, 상품권을 집어 던지고 "너네 다 가져가라"라고 울었다.

그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다.


태그:#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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