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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표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표지
ⓒ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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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에세이를 읽으면 마음이 놓인다. 괴로움, 상처, 좌절, 패배, 슬픔 등으로 아파하지 말라는 말.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라는 말. 내려놓으라는 말. 단순해지라는 말. 탐욕을 버리고 순수해지라는 말.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는 말. 이 모든 말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세상이, 사회가 하고 있는 말, 말, 말들은 나를 지치게만 하는데 불교의 말들은 내게 더 중요한 것, 그러니까 삶의 본질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어 내면의 활력을 끌어낸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힘이 들 때는 자연스레 불교 에세이를 꺼내 읽게 된다.

불교 책을 읽을 때마다 선인들이 던지는 '화두'라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명령처럼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깨달음을 주려는 그들의 지혜로움이 선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는 이런 에피소드를 읽었다. 한 수행자가 미동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정좌를 하고 있다.

지나가던 선사가 발을 멈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수행자는 부처가 되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선사는 뜰에서 기왓장 하나를 들고 와 돌에 대고 갈기 시작한다. 수행자는 선사에게 기와를 갈아 무엇을 하려는 지 묻는다. 선사는 거울을 만들 거라고 대답한다. 수행자는 깜짝 놀라 기와를 갈아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는지 되묻는다. 그러자 선사는 수행자를 보며 말한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화두가 던져졌다. 이제 수행자는 스스로 생각해 그 답을 얻어야 한다.

영국 승려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도 화두가 수두룩했다. 브라흐마 스님은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수행길에 오른다. 스스로 삭발을 하고 승려가 된 브라흐마 스님은 당시 명성이 자자하던 아잔 차 스님에게 딱 3일만 가르침을 받고자 친구와 함께 태국 북동부의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3일이 9년이 되었고 브라흐마 스님은 아잔 차 스님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행자 중 한 명이 된다. 그의 이름인 아잔 브라흐마밤소 마하테라는 스승 아잔 차 스님으로부터 받은 정식 법명이라고 한다.

브라흐마 스님이 승려가 된 계기로는 스님이 17세에 겪은 경험을 들 수 있다. 스님은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불교 서적을 접했고, 책을 읽는 도중 커다란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깨달음이란 자신은 이미 불교도였다는 사실이었다.

태어나길 불교도도 태어났지만 불교도인 줄 모르고 지내던 한 영국 소년이 불교 서적을 우연히 접하고는 자신이 불교도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브라흐마 스님의 17년 인생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17세의 어린 소년이 지니고 있던 세상을 향한 근본적인 호기심과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 시공간을 가로질러 내게로 전해졌다.

우리의 '항아리'에 가장 먼저 넣어야 할 것은?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한 교수가 학생들을 앞에 두고 유리 항아리 속에 가장 큰 돌부터 물을 순차적으로 집어 넣는다. 큰 돌이 다 들어가자 조약돌을, 조약돌이 다 들어가자 모래를, 모래가 다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물을 붓는 모습을 학생들은 재미있게 지켜본다. 이제 항아리는 가득 찼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것이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 학생이 답한다.

"아무리 일정이 바쁘다 해도 언제나 다른 무엇인가를 끼워 놓을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는 틀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보여 주는 교훈은, 큰 돌들을 집어넣기를 원할 때는 그것들을 맨 먼저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즉,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먼저 행하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브라흐마 스님은 말한다. 

"아마도 우리의 '항아리' 속에 먼저 넣어야 할 가장 소중한 돌들은 내면의 행복일 것이다. 우리 안에 행복이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줄 행복도 없다."

사람은 행복할 때 다른 사람들을 더 배려하고, 더 친절해진다고 한다. 행복한 개인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더욱 더 살기 좋아진다는 것이다. 스님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내면의 행복을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행복해지면 사회도 행복해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는가.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 우리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매 순간 행복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왜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공허하고 불행해지기만 하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말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는 행위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시간, 사람, 삶을 담보고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보니 우리의 현재엔 행복이 없게 된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잡게 된 것일까.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브라흐마 스님은 미래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가 불행한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쉽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그 영향력이 너무나 커 다른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을 일순간에 잠식해 버린다. '난 지금 행복할 거야!'라고 다짐을 했다가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그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리 삶의 일차적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브라흐마 스님은 미래를 생각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두려워지기 마련이고, 두려운 우리는 결코 현재를 소유하지 못하게 되므로. 스님은 <놓아버리기>라는 책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미래도 놓아버리십시오. 예상, 두려움, 계획, 기대를 놓아버리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무엇이든, 그것은 언제나 그와는 다르게 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는 말. 계획도, 기대도 놓아버리는 말. 이 말은 삶의 목적마저 놓아버리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미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 행위의 기준이 현재에 있게 되고, 지금 바로 행복해 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불행할 미래가 될 가능성이 많은 요즘이라 우리는 더 두렵고 불안한 것 같다. 내면의 행복을 생각할 여유마저 없는 게 현실이긴 하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도 난 이 책이 내게 건넨 화두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미래를 놓아버리라.' 이건 명령이 아니므로, 나는 이제 스스로 생각해 내 나름의 답을 얻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연금술사/2013년 12월 05일/1만6천원)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 마음속 108마리 코끼리 이야기

아잔 브라흐마 지음, 류시화 옮김, 연금술사(2013)


태그:#아잔 브라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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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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