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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이 수행 중인 대흥사 산내암자 일지암. 이런 초가집에서 굼벵이처럼 살다보면 모든 근심걱정 다 없어질듯합니다.
 법인 스님이 수행 중인 대흥사 산내암자 일지암. 이런 초가집에서 굼벵이처럼 살다보면 모든 근심걱정 다 없어질듯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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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반성문을 냈습니다. 통렬합니다, 자기 고백일 수도 있고, 내부고발일 수도 있습니다. 에둘러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까발리듯이 다 토해냅니다. 출가 수행자가 뭐 그리 잘못한 게 있어 반성문을 쓰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표리부동한, 겉 다르고 속 다른 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자성의 소리입니다. 스님은 묻고 또 묻습니다. 끊이지 않는 종단 내분을 지적하고, 이어지는 추문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합니다. 목가적이고 청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게 승가라는 걸 고백하는 현실에 대한 반성입니다. 반성은 이렇게 하고, 반성문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묻는다. 진실로 이와 같은가? 다시 정직하게 묻는다. 진실로 이와 같은가. 또 다시 정직하게 묻는다. 진실로 이와 같은가. 부처님께 예경하고 3천 배를 하면서 우리는 삶터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예배는 자신의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꺾는 일이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의 한 구절이다.

자신을 정화하고 이웃 사람을 부처로 알아 겸손하고 경건하게 대하고 있는가. 나는 승속을 막론하고 겸손하고 친절하고 배려하는 모습보다는 엄숙하고 딱딱하게 굳은 모습을 많이 본다. 부처님께 드리는 예경의 정신이 이웃에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풍경은 왜곡이고 포장이다.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241쪽

스님이 사는 이야기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글 법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3월 10일 / 값 1만 4000원)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글 법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3월 10일 / 값 1만 4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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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글 법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은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법인 스님, 땅 끝 대흥사 산내암자인 일지암에서 수행 중인 법인 스님이 수행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물소리처럼 풀어낸 '사는 이야기'입니다.

수행자에게도 사연은 있습니다. 반성문을 써야 했던 철없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회한도 있을 수 있고 성취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시대적 아픔도 있었습니다. 수행자라고 해서 반드시 부처님과 선지식을 통해서만 배우고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시골 할머니에게 배우고, 조사들이 남긴 말씀을 통해 깨닫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터득합니다. 스님은 분명 출가 수행자의 삶을 살아 왔고, 살아가고 있지만 유유자적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거침없이 흐르고 싶지만 바위에 부닥뜨리는 물처럼, 곧장 흐르고 싶지만 때로는 구비 돌아야만 흐를 수 있는 물처럼 감내하고 겪어야만 했던 우여곡절 같은 일화와 가슴 뿌듯한 수행담이 이런 사연과 저런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어떤 이야기는 내놓고 들여다보는 절집이야기 이고, 어떤 이야기는 문발 사이로 들여다보는 절집 방안 풍경처럼 보일 듯 말듯이 연상하는 머리에서만 아른댑니다.   

얼마 전 시골마을에서 어느 할머니로부터 뼈 있는 한마디를 들었다. 그 말은 사유의 골짜기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할머닌 말했다. "세상이 혼란하고 힘든 것은 사람들이 못 배워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다." 비록 제도교육으로는 못 배웠을지언정 참으로 잘 배운 할머니의 일침이 아닐 수 없다.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23쪽

많이 배웠으나 잘못 배운 사람들은 대개 모호한 문법으로 사과한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진실의 핵심과 책임을 피해가고 싶기 때문이다. 사과문은 정확한 문법으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이제, 우리 시대의 진실한 화해를 위하여, 모호한 문법은 가라.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62쪽

스님께서는 사과조차도, 반성문조차도 솔직하게 쓰지 못하는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맞습니다.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하는 사과는 온통 '유감'입니다. 어떤 잘못도 '유감'이라는 말로 뭉뚱그립니다. 사과조차도 언어적 희롱에 불과한 '유감'의 시대입니다.

'유감' 잘못했다는 거야? 기분 나쁘다는 거야?

'유감'이라는 말 만큼 애매모호한 표현도 없습니다. 뭔가를 잘못해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유감(有感)'이라고 하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낼 때도 '유감(遺憾)' 이라고 합니다. '유감'이라는 말만 들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건지, 아니면 잘못한 일이 들통 나 기분이 나쁘다는 걸 말하는 건지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경우가 종종입니다.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은 이렇다. 원칙 없는 정치, 일하지 않는 부의 축적, 양심 없는 쾌락 추구, 개성 없는 지식 축적, 도덕성 없는 교역, 인간성 벗는 자연과학, 그리고 자기희생 없는 종교라고 갈파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이것은 당시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인도의 입장에서 세계 여러 제국주의 국가와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통찰한 결과다.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134쪽

"벗들이여! 오늘 당장 집 안에서 냉장고,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에게 큰'사고'를 쳐보지 않으렵니까? 그리고 기계에 의존하여 놀고 살아가는 일에서 책을 가까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일로 관심을 돌려 보지 않으렵니까?"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15쪽

대흥사 산내암자 일지암
 대흥사 산내암자 일지암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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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에만 따끔한 채찍이 들어 있고, 알사탕에만 달콤함이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부드러운 말속에 몽둥이찜질보다 더 무서운 야단이 들어 있고, 사는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글 속에 솜사탕보다 훨씬 달콤한 감동이 스며있을 수 있습니다.

구십 노인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듯 법랍이 꽤 된 스님께서도 행자 시절이 그리운 가 봅니다. 책 끝부분에 넣은 편지 네 꼭지, '행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일수도 있습니다. 초심을 그리워하는 향수이자 흐트러진 초심을 추스르고자하는 경책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정보들을 검색하느라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 앞에서 허우적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대는 몸짓을 멈추면 텀벙 가라앉아 금방 죽을 것 같지만 사실은 멈춰야 뜨고, 떠야 삽니다.  

허우적대듯이 하는 검색 잠시 멈추고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글 법인, 펴낸곳 불광출판사) 일독을 권해봅니다. 목탁소리 같은 맑음과 북소리 같은 울림이 책 속에 들어 있습니다. 법인 스님이 물결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나브로 사유의 동반자가 돼 검색 없는 행복을 사유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글 법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3월 10일 / 값 1만 4000원)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지음, 불광출판사(2015)


태그:#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불광출판사, #일지암, #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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