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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도시 쿤밍의 거리
 봄의 도시 쿤밍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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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과 홍등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
 붉은 색과 홍등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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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오고서야 알았다. 지도 안에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순간 막막해진다. 숙소로 돌아가서 주인장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손바닥 위에 침을 뱉고 손가락으로 튀기는 기분으로 왼쪽 길을 택해 걸었다. 다행히 넓은 도로가 나오고 그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었지만, 어느 방향을 향해 버스를 타야 할지 방향감각이 없었다.

전날 밤 공항에서 차를 타고 왔던 기억을 되살리며 아내와 나는 "길 건너편에서 타야 한다", "아니다"로 옥신각신해보지만 둘 다 자신이 없다. 그래서 국숫집을 찾아 아침부터 해결하기로 한다. 중국말을 못하는 처지에 주문하기만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메뉴판에 적힌 한자를 더듬거리듯 그 뜻을 가늠해 10분 만에 겨우 닭고기 쌀국수 2개를 주문하고 보니, 10년 전 중국 여행을 했을 때 힘들었던 기억들이 쏜살같이 떠올랐다.

호텔에서조차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 우리 부부의 한자 실력이 영 신통찮다는 깨달음, 버스고 기차고 간에 담배를 무자비하게 피워대던 흡연자 천국에 대한 악몽, 어디를 가든 줄을 길게 서야 하지만 새치기로 인해 줄이 잘 줄어들지 않았던 기억들까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진즉에 그날의 고통을 떠올렸더라면 여행 준비에 만전을 기했겠지만, 우리 부부는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 바빴다. 설사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제부턴가 여행을 꼼꼼히 준비하는 습관이 멀리 달아나고 없었다. 그야말로 왕복 항공권 한 장 끊어놓고 제주도에서 서울 다녀가듯 날아온 것이었다.

뱃속에 퍼지는 따뜻한 국물 그리고 배포

쿤밍, 위안퉁쓰에서
 쿤밍, 위안퉁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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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퉁쓰와 물에 담긴 그림자
 위안퉁쓰와 물에 담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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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여 달아나려는 이성을 붙잡아두고 일단 국수 한 그릇씩을 먹었다. 뱃속에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면 없던 배포도 생기는 법이다. 일단 돌아올 때를 생각해 버스정류장에 적힌 노선표를 몽땅 사진으로 찍어두고, 행선지에 위안퉁쓰(圓通寺)가 적힌 이층 버스 하나를 골라 무작정 탔다.

어디로 가는 걸까? 버스는 우회전한 후 다시 또 우회전, 고속도로 같은 곳을 지난 후에 좌회전 또 좌회전, 마침내 로터리를 돌더니 직진 그리고 또 직진으로 달려간다. 내가 가진 지도와 도로표지판의 거리 이름을 비교해보며 현재 위치를 알아내고자 애를 쓴다.

"아, 모르겠다", "반대 방향인가? 내려서 다시 돌아가야 할까 봐"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지도와 도로표지판에 적힌 한자가 정확히 일치하는 거리 하나를 찾아냈다. 퍼즐을 맞추듯 도시의 동서남북, 등뼈와 이목구비를 알아가는 재미에 열을 올렸다. 그 사이에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위안퉁쓰
 그림자가 더 아름다운 위안퉁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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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위안퉁쓰의 아름다움
 물에 비친 위안퉁쓰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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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퉁쓰는 아름다운 절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돌길을 따라 내려가자 연못이 나왔는데 그 연못 한가운데 팔각정 모양의 사원이 있었고, 그 너머에 본당이 있었다. 연못에는 물새 두 마리가 미끄러지듯 떠다니며 수면에 잔잔한 비단결을 빚어냈다. 그 비단결의 울렁임에 따라 연못에 담긴 사원이 살랑살랑 꿈을 꾸듯 춤을 추었다. 실제 사원도 아름다웠지만 그렇게 물에 비친 사원의 그림자가 더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쓴 글이 나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글은 지나간 시간을 압축하고 정제하여 태어나지만 내 삶은 언제나 울퉁불퉁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억도 그렇다. 아름다운 추억은 시간의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더 크고 아름다워진다. 몇 년 전에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울산의 달동네 집을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달동네 끝집이었던 우리 집까지는 두 개의 골목길이 갈라졌다 만나곤 했는데, 위쪽 길은 넓고 긴 반면 아래쪽 길은 좁고 짧아서 밤이 되면 지나기가 무서웠다.

누이와 함께 눈을 질근 감고 좁고 빠른 길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뛰어가던 기억은 어른이 되고서도 오랫동안 내 꿈으로 나타나곤 했다. 또한, 길은 아름다웠다. 그 길에서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했고, 아랫마을 아이들과 나무 작대기로 칼싸움했으며, 밤이 되면 동네 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했다. 다행인 것은 숱한 도시재개발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기억 속의 길이 아니었다. 아주 넓었던 윗길은 전혀 넓지 않았고, 무섭고 길었던 아랫길도 전혀 길지가 않았다. 구슬치기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던 동네의 넓은 터도 겨우 네댓 채의 집들 앞에 놓인 작은 골목길일 따름이었다. 결정적으로는 우리 옛집이 있었던 동네는 내 기억과는 달리 달동네가 아니었다. 아주 조금 오르막이 있는 초라한 동네일 뿐이었다. 누군가 집과 길 그리고 동네를 나 몰래 축소하여 놓은 것만 같았다.

더욱 신기한 일은 그날의 방문 이후에 일어났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음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골목길이 다시 넓어지고 길어지더니, 결국 내 오래된 기억 속의 길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30년 동안 내 안에 살아온 기억 속의 골목길은 이제 그림자가 아니라 스스로 실제가 되었음을 내게 증명해 보이려는 듯 말이다.

쿤밍의 사원 위안퉁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쿤밍의 사원 위안퉁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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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에 대한 그리움
 간절함에 대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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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퉁쓰 본당에는 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남녀가 있고, 늙은 여인이 있고, 큰 도시에서 여행 온 듯한 스타일의 옷을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이 기도하는 시간에 나는 그들과 나의 간절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계 어디에서나 종교 사원에 들를 때마다 내가 마주치는 감정이 간절함이다.

라다크 티베트 사원의 흰색 바람벽에 앉아 마니차를 돌리던 노인, 이란 쉬라즈의 이슬람 사원 대리석 바닥 모자이크 문양에 이마를 대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도를 올리던 사나이, 이스라엘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돌길에 무릎 꿇고 앉았던 어린 수녀님…. 마치 각기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보편의 인간으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간절함인 것처럼.

그때마다 난 내 삶에 주어진 간절함의 총량을 모두 앞당겨서 사용해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하곤 했었다. 한 시절, 나의 간절함은 뜨거웠고 끈질겼다. 하지만 그 영원할 것 같던 간절함이 어느 순간 사그라지고 난 후, 팍팍하고 건조한 사막 입구에서 서성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게 간절함이란 마음대로 등장과 퇴장을 계획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기에, 쓸쓸함을 느낀다. 

몸이 하는 경고, 내 안의 나를 돌아보다

시베리안 비둘기의 세상이던 추이후 공원
 시베리안 비둘기의 세상이던 추이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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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은 김수현이 대세
 쿤밍은 김수현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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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은 김수현이 대세
 쿤밍은 김수현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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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을 뒤로 한 채 위안퉁쓰를 나왔다. 이제 오늘 하루는 쿤밍(昆明) 도심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걸어볼 생각이다. 아내와 나는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은 목적 없이 걷기로 시작할 때가 많다. 걷다 보면 이 도시의 생김과 색감과 냄새가 내 몸 안으로 스며들면서 첫인상으로 새겨지는데, 우린 그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곳은 추이후 공원이었다. 호수를 가로질러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고, 공원 전체가 시베리안 비둘기들의 집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새들이 많았다. 공원을 지나자 곧 시장이 나왔다. 온갖 야채와 고기와 과일상들, 오래된 중국무술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술도가 그리고 차마고도의 출발점답게 차(茶) 상인들의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딸기 한 근과 오렌지 몇 알을 사 들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배우 김수현. 도심 곳곳에 그가 있었다. 자동차 광고, 아웃도어, 캐주얼 의류, 심지어 커피전문점 광고까지 이곳 쿤밍에서는 그가 대세였다. 전자용품 판매점 밀집 거리를 지나고 옷가게들의 패션 거리를 지나 두 다리가 묵직해져서야 박물관에 이르렀다. 하지만 박물관은 월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시장에서 만나는 술도가
 시장에서 만나는 술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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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출발점, 쿤밍
 차마고도의 출발점, 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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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다. 박물관을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 몸이 엉망으로 아팠다. 여행 2주 전에 다친 허벅지 근육을 달래가며 여행을 시작했는데, 아침에는 바지를 꿰입다 허리까지 삐끗하고야 말았다. 천천히 걷고 자주 쉬며 거북이와도 경쟁할 마음 없이 다니고 있는데도 힘이 들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마냥 달려온 것이다.

몸이 하는 경고, 마음이 하는 충고 다 무시하고 혹은 잊어버리고 그렇게 또 '한 세상'에만 젖어서 살아온 것이다. 한심하게도 늘 이렇게 반복된다, 삶이란. 빠름과 느림, 규칙과 일탈, 몰입과 관조, 일상과 여행 그사이 경계 어디쯤에서 비틀대며 안과 밖을 고양이처럼 들락거린다. 까맣게 나를 잊고 살아가다, 또 이렇게 길 위에 서서야 변방으로 밀어낸 내 안의 나를 찾아보는 것이다. 

여행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100년 된 중국 전통의원의 약재실
 100년 된 중국 전통의원의 약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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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사의 연못과 그림자
 원통사의 연못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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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오래된 나무집들이 보존된 구시가지의 골목길들을 돌고 돌아, 하얀색 2층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노트를 꺼내 커피 향기를 느끼며 오늘 하루 걸으며 만났던 이곳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본다.

신의 마당에서 기도하던 사람들, 국수 가맹점에서 왁자지껄 식사하던 청춘들,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든 어린 학생들, 나무를 깎아 묵주를 만들던 상인, 전통의원에서 약재의 무게를 달던 조제사들 그리고 얼굴도 옷차림도 한국인들과 구분하기가 힘들었던 젊은 여인들….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카페를 나섰다. 홍등에 불이 들어오고, 온갖 요리의 향내가 연기처럼 도시를 어슬렁거렸다. '봄의 도시'라고 하기에 바람이 차고 냉정했지만, 거리에 사람들은 들떠있었다. 이런 날에는 나 자신을 귀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음을 안다. 우린 꽤 괜찮은 전통객잔을 찾아들었다. 소수민족 바이족(白族)의 전통가옥을 품위 있게 꾸몄는데, 'ㅁ'자 모양의 2층 구조로 마당과 2층 테라스와 각 방에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

'갑자기 2층 방 문살을 뚫고 흰 수염의 검객들이 뛰어내리고 1층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긴 생머리의 여인이 칼을 뽑아들고 한판 대결이 펼쳐진다'고 한들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우린 1층에 자리를 잡고 자연산 송이 요리와 마파두부, 야채수프와 미판(밥)과 맥주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차와 함께 숯이 빠알간 화롯불을 가져다준다.

쿤밍의 도심
 쿤밍의 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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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쬐며 따뜻한 차를 마신다. 한 잔. 두 잔. 문득, 여행자는 혼자 힘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객잔 종업원의 저 친절한 미소가 없다면. 한 청년이 모바일로 검색까지 해서 객잔 위치를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더 전에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그녀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우리 목적지를 또박또박 한자로 써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봄의 도시' 쿤밍이 그 명성과 달리 춥고 스산했던 오늘 아침,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태양이 스스로 등장하여 도시를 데워주지 않았더라면. 여행자 부부가 오늘 하루를 이처럼 잘 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많이 싸우지도 않고 많이 헤매지도 않고 많이 집착하지도 않았지만, 충분히 보았고 넉넉하게 걸었으며 무엇보다 조금씩 여행에 깃들고 있었으니까.

요리를 기다리며 고개 들어 밤하늘을 보니, 고택의 기둥과 처마와 그 끝에 달린 홍등이 저 멀리 빛나는 마천루의 불빛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내 안에서도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행기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남겨졌던 일상의 나도 뒤늦게 여행에 합류하고 있었다. 떠남이 스스로 존재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행자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길에서 만나는 숱한 생명의 도움으로.

고택과 마천루의 불빛
 고택과 마천루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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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족의 전통가옥 그대로인 객잔
 바이족의 전통가옥 그대로인 객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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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윈난여행, #중국여행, #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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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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