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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한국사> 책표지.
 <뜻밖의 한국사> 책표지.
ⓒ 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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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둔 며칠 전 '차례 상에 무엇을 올리는가?'에 따라 지역별 차례음식 재료 수요가 차이 있다는 뉴스를 흥미롭게 봤다. 뉴스에 따르면 동해안 최대 전통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에선 최근 문어와 '돔배기'로 불리는 상어고기, 고래 고기의 매출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인근 지역에서 차례상에 많이 올리기 때문이다.

전라도 잔치에 빠지지 않는 것은 홍어, 이와 비슷한 간재미 매출이 크게 늘었으며 감자의 고장 강원도에선 감자전 준비 때문에 전국적으로는 줄어드는 감자 매출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쌀농사가 어려워 예부터 떡 대신 빵을 올리고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같은 열대과일을 올리는 문화가 형성된 제주도에선 빵과 열대과일의 매출이 크게 오르고 있다고 한다. 

시부모 둘 다 충청도가 고향인 시가와 함경도와 경상도에서 각각 자랐으나 결혼과 함께 전라도에서 살아온 친정의 차례상도 차이가 많다. 시어머니는 돈이 아무리 궁색하고 물가가 올라도 떡국 육수재료로 소고기나 사골을 고집한다. 그런데 친정은 여유가 있어도 닭 육수만을 쓴다.

그리고 떡국으로 메(밥)를 대신하면서 나물과 조기, 물김치 외의 반찬을 올리지 않아 추석 차례상에 비해 좀 단출해지는 시가의 차례상과 달리 친정에선 추석의 차례상과 같은 반찬들을 그대로 올리는지라 크게 차이가 없다. 외에도 반드시 쓰는 전의 재료와 과자, 과일 등은 물론 올리는 방법 등 많은 차이가 난다.

식혜(食醯)의 조상은 식해(食醢)이다. 식혜의 '혜(醯)'는 식초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식혜가 삭힌 음식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고, 식해의 '해(醢)'는 젓갈이라는 의미이다.(…)식해는 원래 중국에서 온 것으로 젓갈 음식이다. 곡식과 어육을 소금 양념으로 삭혀서 만든다. 그러던 것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어 한중일 3국의 공통식품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 음식문헌에 식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식해에서 고기와 매운 양념을 빼버리자 독특한 음료수가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식혜이다.  한국인이 식혜를 먹기 시작한 것은 식해가 유행한 이후니까 17세기 이후, 길게 잡아봐야 4백년이 채 안 된다. 그런데 식혜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1740년경 편찬된 <수문사설>이라는 책이니까 3백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음료라고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대부분 식혜를 달게 먹지만 예전에는 맵게 먹기도 했다. 안동지방의 토속음식인 안동 식혜는 생강이나 고춧가루를 넣어 매운맛이 난다. 강원도의 연엽 식혜라는 독특한 식혜는 또 다른 변주인데, 이것은 연잎에 찰밥과 엿기름을 버무린 것을 넣고 삭혀낸 것이다. 이 연엽식혜에는 청주를 조금 넣어서 삭히기 때문에 술맛도 난다. -<뜻밖의 한국사> 본문에서.

식혜는 시가와 친정 양쪽의 차례상에 공통적으로 올리는 몇 가지 음식 중 하나. <뜻밖의 한국사>(페이퍼로드 펴냄)에 식혜 관련 의외의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설이면 친정 엄마는 1주일가량 따뜻한 곳에 놓아 불린 찹쌀을 빻아 산자를 만들었고 미리 길러 빻아둔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들었으며, 메밀묵을 쑤고 두부를 만들곤 했다. 그리고 겨우내 먹다 남은 고구마를 고아 조청을 만들어 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귀하게 구한 홍어를 막걸리로 씻어 회를 무치기도 했는데, 설이 아닌 잔치 때 음식을 장만하러 온 어른들은 두엄자리에서 좀 더 삭혔어야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찹쌀을 1주일이나 불려야 산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엿기름이란 것은 어떻게 생각해낸 것이며, 식혜는 어떤 계기로 터득해진 음식일까?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이처럼 저마다의 재료에 맞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을까?'

명절 혹은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를 거들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몇몇 음식에 대한 역사가 궁금했던 터라, 식혜도 역사가 궁금했던 음식 중 하나라 이 책에서 만나는 식혜 이야기가 무척 반가웠다.

전라도에서 성장한 내가 서울에 와서 혼동했던 것 중 하나는 식혜를 감주라고 부르는 것. 80년대 후반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대형마트나 할인매장들이 없어 재래시장에서 주로 먹거리들을 사곤 했는데, 시장 구경을 하노라면 항아리에 감주라고 쓴 종이를 붙여놓고 파는 집이 있었다.

스치듯 지나노라면 감주 항아리 앞에서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많았다. 내 고향에서 감주는 술인지라, 앞집에 사는 친구네 엄마가 걸핏하면 감주니 단술을 만들어 호기심에 친구와 함께 몇 번 맛을 보고 정신이 아득해진 경험이 있던지라 대낮부터 길거리에서 안주도 없이 술을 마셔대는 사람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내가 술로 알고 있던 감주가 식혜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서울 생활 3년쯤 지나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모와 함께 장을 보면서. 지금도 가끔 감주라고 쓴 종이를 붙여놓고 파는 집을 지나노라면 그때가 생각나 웃음 머금곤 한다. 책에는 식혜가 실제로는 술인 감주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와 감주와 식혜의 차이, 감주 만드는 법 등 관련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극이나 옛 그림에서 상투를 튼 모습을 보다가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무더운 여름에 너무 덥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발산되는 열기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러나 염려 마시라. 옛사람들은 상투를 틀 때 열기를 피하기 위해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둥그렇게 깎아 냈다. 이것을 '백호친다'라고 한다.(…) 정수리 주변의 머리칼을 깎아낸 다음 '주변머리'를 모아 빗어 올려 정수리 부근에서 상투를 틀었다. 그러니 만약 머리를 풀어헤치면 '소갈머리'가 없어 아주 재미있는 모습이 된다. 죄인들은 상투를 틀지 못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게 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사극에서 이런 모습을 찍으려면 머리 가운데를 빡빡 민 모습으로 재현해야 옳을 것이다."

"신라의 가발은 명물로 국제사회에 이름이 나 있었다고 한다. 멀리 중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이 머리를 깎아 팔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가발을 '다리'라고 불렀다.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고, 머리 모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덧넣는 머리를 다리라고 했는데, 한자로는 가체加髢다. 가체가 유행한 것은 통일신라 시대부터였다. 고려 때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더욱 유행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가체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더 멋진 가체를 쓰려고 기를 쓰게 되었다. (…)머리 사치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가체를 마련하지 못하면 시부모에게 예를 드리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뜻밖의 한국사> 본문에서.

이 책의 부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챙기지 못한 이야기'.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 위주로 만들어진 사극이나 문학작품들을 주로 대하기 때문에 소소한 역사적 사실들은 간과하곤 한다. 아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이 책의 매력은 이처럼 소소한 것들을 위주로 쓴 책이라는 것. 한마디로 소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남다른 책인 것 같다. 6부로 나누어 조상들의 삶과 풍습과 문화, 역사적 중요인물들의 사생활과 중요한 사건 그 숨은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책이 다루고 있는 것들은 ▲신라와 고려는 근친혼을 허용했다? ▲고려시대에는 남녀가 함께 목욕을? ▲고려인들이 60일에 한번 밤을 새워 놀았던 이유는? ▲우리 역사상 가장 화려한 귀고리는 남자의 것? ▲상투 튼 머리속 열은 어떻게 식혔을까? ▲밥은 언제부터 우리의 주식이 됐나? ▲김장문화가 퍼지도록 한 몫 한 종교가 있다? ▲신라의 유물 중에 십자가와 마리아상이? ▲'지구가 돈다'고 말한 최초의 한국인은? ▲우리나라 도장 1호는 단군신화에? ▲영조 재위중인 1761년, 정1품 정승들이 잇따라 자살한 이유는? ▲1천여 명이 목숨 잃은 조선 최악의 정쟁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실은 악덕 고리대금업자? ▲300년 전에는 시집간 딸도 공평하게 상속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결혼자금을 지원? ▲노비신세를 면하려면 420톤 쌀을 바쳐야? 등 66가지다.

덧붙이는 글 | <뜻밖의 한국사>(김경훈) | 페이퍼로드 | 2015-01-20 | 12,500원



뜻밖의 한국사 - 조선왕조실록에서 챙기지 못한 이야기

김경훈 지음, 페이퍼로드(2015)


태그:#식혜(식해,감주), #차례음식(차례상), #소소한 역사, #한국사, #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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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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