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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그는 6년 임기를 모두 채웠다. '촛불재판'에 개입해 사법부의 대원칙, 법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에도 끄떡없었다. 2월 17일 퇴임하는 신영철 대법관 이야기다. 그의 임기 만료는 스스로 독립을 지키지 못한 사법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아닐까. <오마이뉴스>는 그 부끄러움을 기억하기 위해 2009년 숨 가쁘게 돌아간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편집자말]
대법원 대심판정 모습(자료사진).
 대법원 대심판정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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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헌 이래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 9번 달라졌지만 절대 빠지지 않았던 문구가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

지난 2009년, 사법부는 들썩였다.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수많은 판사가 움직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은 사람은 신영철 대법관이었다. 이후 그는 6년 임기를 꽉 채웠다. 다음은 5차 사법파동의 문턱에 이르렀던 소신 있는 법관들과 그들을 주저앉힌 법원 안팎의 기록이다.

[발단] 감춘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촛불재판 개입’ 의혹에 휩싸였던 신영철 대법관이 2월 17일 6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임한다. 사진은 그가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직후인 2009년 3월 19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나타났을 때의 모습.
 ‘촛불재판 개입’ 의혹에 휩싸였던 신영철 대법관이 2월 17일 6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임한다. 사진은 그가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직후인 2009년 3월 19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나타났을 때의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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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돌연 사직한 사유를 알고 계시죠? 촛불집회 때 야간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시법을 문제로 삼아서 위헌 신청을 한 이후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았다는 소회를 밝혔어요."

2009년 2월 10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장,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신영철 대법관 후보자는 확고한 어투로 "전혀 불이익 받은 바 없습니다"라고 답했고 무사히 대법관이 됐다( ☞ 국회 영상회의록 바로가기). 하지만 그는 곧바로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첫 보도] "보수판사에게 촛불재판 몰아주다니" 법관들 집단 반발

[전개] 움직이기 시작하는 판사들... "사법권 독립"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2009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에 '촛불재판 개입' 의혹으로 엄중 경고를 받은 신영철 대법관의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결론 타당성 여부를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2009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에 '촛불재판 개입' 의혹으로 엄중 경고를 받은 신영철 대법관의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결론 타당성 여부를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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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은 순식간에 번졌다. 대법원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재판 개입 의혹은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일선 판사들은 이번 일을 가벼이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 "촛불재판 비난 사법부 전체가 뒤집어써" 대법원 일축 불구 현직판사들 성토

그 사이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을 뒷받침하는 다른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 "위헌제청 촛불사건 현행법대로 처리... 이용훈 대법원장 생각도 나와 같아"

신영철 대법관의‘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사해 온 대법원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이 2009년 3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사해 온 대법원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이 2009년 3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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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안팎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후배 법관까지 나왔다.

☞ 대법관 출신 이회창 "촛불재판 간섭, 있을 수 없는 일"
☞ "사법권 독립 위해 '전국 판사회의' 열자 대법원장은 사과"
☞ "사실상 촛불 재판압력 행사했다" 현직 판사, 신영철 대법관 '용퇴' 촉구

심상찮은 흐름을 감지한 보수언론과 여당이 움직였다.

☞ "좌파 판사... 인민재판식 사법부 파괴공작" '신영철 구하기' 나선 <조선>
☞ 홍준표 "신영철 대법관, 행정지휘권 행사한 것"

그럼에도 신 대법관 비판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대법원이 부랴부랴 "신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했을 소지가 있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판사들은 일단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기로 했다.

☞ "신영철 대법관 재판관여 소지 있다... 배당 몰아주기는 사법행정권 남용"
☞ [전문] 신영철 대법관 재판관여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절정] 덮거나 묻어가거나... 결국, 기름 부은 격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2009년 4월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최송화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한 위원들이 참석하여 첫 공식 회의를 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2009년 4월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최송화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한 위원들이 참석하여 첫 공식 회의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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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8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에게 경고·주의를 주라고 권고했다. 3일 뒤, 한동안 잠잠했던 내부 통신망에는 판사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엄중 경고'로 사태를 덮으려 했고, 신 대법관은 여기에 묻어가려 했다.

☞ "윤리위 결정은 충격... 법관 독립 무시" "신 대법관, 결자해지 차원에서 결단해야"
☞ 신 대법관 징계위 회부 않고 '엄중 경고' 대법원, 판사들 분노한 가슴에 기름 붓나
☞ 신영철 "재판 간섭은 오해, 심려 끼쳐 죄송" 사퇴 뜻은 안 밝혀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2009년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2009년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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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 됐다.

☞ "신 대법관, 직무 계속 수행은 부적절" 서울중앙지법 판사들, 사실상 '사퇴' 촉구
☞ "대법관직 수행 부적절하다" 결의 확산

9월 24일에는 헌법재판소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다. 신 대법관 재판 개입의 부당성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었다. 결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법관의 탄핵소추안 발의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 안진걸 팀장 "신영철 핍박받은 박재영 판사에게 감사"
☞ 야당 의원 105명, 신영철 탄핵소추 발의

[결말] '구사일생' 신영철이 사법부에 남긴 상처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가 2009년 11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신영철 대법관 탄핵 소추안 처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가 2009년 11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신영철 대법관 탄핵 소추안 처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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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였다. 다수결의 벽에 부딪힌 신 대법관 탄핵은 불발에 그쳤다. 263일 내내 시끌벅적했던 법원은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끝까지 버틴 신영철 대법관과 상처 입은 사법부의 독립성뿐이었다.

☞ 한나라당 보이콧에 신영철 대법관 구사일생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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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영철,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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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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