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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노루귀꽃
 노루귀꽃
ⓒ 임소혁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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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식이 청봉령 산기슭에서 전사하기 바로 이틀 전인 1942년 8월 1일, 소련 극동군은 동북항일연군의 잔류대원을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로 편성하는 한편, 소련 적군 88특별저격여단으로 개편하면서 주요 간부들에게 소련군 계급을 수여했다. 이때 북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허형식도 이 부대 간부로 편제되었다.

교도려 지휘부는 려장(旅長) 주보중(周保中, 중국인), 정치위원 장수전(중국인), 참모장 사마르첸코(소련인), 부참모장 최용건(조선인) 제1영장(대대에 해당)은 김일성(金日成, 조선인)·정치위원은 안길(安吉, 조선인)이었고, 제2영장은 왕효명(王效明, 중국인)·정치위원은 강신태(姜信泰, 조선인)이었으며, 제3영장은 허형식·정치위원에 김책이었으며, 제4영장에 시세영(柴世英, 중국인)·정치위원에 계청(季靑, 중국인)이 임명되었다. 또 이때 각 영장에게는 소련군 대위 계급이 주어졌다. 허형식은 이런 사실도 전혀 모른 채 전사했다.

1942년 8월 3일, 허형식의 전사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과 중국공산당 북만성위는 크나큰 타격을 받았다. 그 이듬해인 1943년 1월에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12지대장 박길송(朴吉松, 조선인)마저도 체포되어 희생되자 일제 관동군과 만주군이 만세를 부를 만큼 만주벌판은 온통 일장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허형식의 평생 동지 김책은 허형식의 전사로 큰 충격을 받고 1943년 10월 남은 동지들과 소련으로 철수하기 시작해서 이듬해 1월 남북야영이 개편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에 합류했다. 그러자 북만주는 언뜻 보기에는 일제가 평정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얼음장 밑에서도 미나리 싹이 움트듯 일제가 항일의 싹까지 자를 수는 없었다.

왕산기념관(구미시 임은동)
 왕산기념관(구미시 임은동)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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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현대사

허형식은 전사 당시 비록 중국 공산당원이었고, 북만주를 주 무대로 활동했지만 그의 행적은 우리 독립운동사와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동북항일연군에는 다수의 한인(韓人, 조선인)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허형식 장군은 다른 주요 항일연군 지도자들이 소련 경내로 도피했을 때도 철저한 항일 무장투쟁을 펼치면서 소수의 대원을 데리고 끝까지 싸웠다. 이 때문에 소련으로 건너간 항일연군이 1942년 봄 소련군의 일개 조직에 흡수될 뻔한 위기에서 허형식 등이 북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있었다.

허형식의 당숙인 허위의 의병투쟁을 정점으로 성산 허겸의 남만주 망명과 독립군 기지 개척운동, 또한 허형식의 4촌 및 6촌 형제들의 서로군정서 등 독립군 활동, 그리고 1930년대 이후 허형식의 동북항일연군 활동 등 임은 허씨들의 일제강점기의 항일투쟁은 역사인식의 범위를 확대하여 그 찬연한 업적을 새로이 정립해야 할 것이다.   

나는 2000년 8월,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봉령 들머리에서 허형식 희생지를 둘러본 뒤 귀국하였다. 왕산 후손 허벽·허호 두 분을 만나 허형식 희생지 다녀온 소식을 전하며 뒷이야기를 묻자 해방 후 중국에서 귀국하여 허형식 유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살다가 지금은 대구 신암동에 살고 있는 허형식 친아우 허규식(許圭植) 유족의 소재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 길로 그 댁을 찾아갔다. 윗대는 이미 다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허형식 장군의 조카 허창수(許昌洙) 가족만이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거의 숨어살다시피 살고 있었다.

내가 고향사람임을, 전직 교사임을 알고서야 허 장군 조카며느리가 말문을 열었다.

"조금 늦으셨네요. 저희 시어머님이 살아계셨더라면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셨을 텐데 ….

왕산기념관개관식에 참석하고자 세계 각지에 흩어진 후손들이 고향을 찾았다.
 왕산기념관개관식에 참석하고자 세계 각지에 흩어진 후손들이 고향을 찾았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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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느냐?"

허 장군의 제수 한영숙(허규식의 부인)씨는 돌아가신 지 10여 년 되었는데, 성격도 활달하고 담대하여 허 장군 유해 수습 때 당신이 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하였다고 했다. 허 장군 조카며느리는 그동안 세상이 하도 험악하여 아들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그날에서야 아들을 방에 들게 하여 당신이 시어머니에게 들은 집안사와 호적 등 유품들을 보여 주었다.

해방 후 허형식 가족들은 모두 귀국하여 서울 회현동에서 과일 장사를 하며 살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나기 얼마 전에 북한의 김아무개라는 사람(아마도 허형식의 감옥동지인 김책인 듯)이 밀사를 내려보내 허형식 유족을 데리러 왔다. 동생 규식은 싫다했고, 허형식 어머니도 고령으로 싫다고 했다. 허형식 부인은 생각이 있었으나 노령의 시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서 허 장군의 아들 창룡(昌龍)이만 따라 보냈다.

곧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때 우익 대한청년단 남산동 단장이었던 허규식은 인민군에게 붙잡혀 서대문 감옥에서 수감되었다가 9·28 수복 때 인민군들의 방화로 불에 타죽고 허 장군의 딸 하주(河珠)는 인민군들을 따라 북으로 갔다.

허형식 부인은 인민치하 인민군에게 부역한 죄로 9·28 수복 때 국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졸지에 아들과 며느리가 좌익과 우익에게 횡사당한 허형식의 어머니는 화병으로 앓아누웠다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날 말 없이 지켜보던 허 장군 조카 창수(昌洙, 허규식 아들)씨는 나에게 딱 한 마디했다.

"어른들이 저희 식구들에게 가능한 낙동강(고향 구미를 말함)과 멀리 떨어져 살아라고 했어요."

그런 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당신의 파월 참전증, 국군전역증 등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자기는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 성실하게 살아왔음을 보여준 듯했다. 그는 나와 동갑인 1945년생으로, 나는 그날 그의 언행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9·28 인민군 후퇴 때, 북으로 간 허 장군의 딸 하주는 곧 인민군 군관이 되어 1951년 1·4 후퇴 때 서울에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를 찾다가 그새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누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느냐?"고 대성통곡했다는 사연도 전했다.

왕산 증손 허경성 선생이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현, 경북지사)에게 토지기부증서를 드리고 있다(왼쪽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 2005. 7. 8.)
 왕산 증손 허경성 선생이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현, 경북지사)에게 토지기부증서를 드리고 있다(왼쪽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 2005. 7. 8.)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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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만의 귀향

나는 대구에서 돌아오면서 구미 임은동 왕산 생가를 들리자 6·25 전쟁 다부동 전투 융단폭격 때 소실된 그 집은 그때까지 복구되지 않은 채 텃밭으로 쓰레기장으로 방치된 채 대나무만이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온 뒤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설에 앞서 왕산 생가 복원부터 먼저 하는 게 순리가 아니겠느냐는 건의였다.

그후 김 시장을 만나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그 뒤 왕산기념사업회가 구성되어 생가 터는 왕산 증손 허경성(許敬誠) 선생이 구미시에 토지 기부채납으로 왕산공원이 건립되고, 고향을 지키고 있던 허호 후손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앞동산에는 왕산기념관이 우뚝 서게 되었다.  

2009년 9월 28일 왕산기념관 개관 기념식 날 세계 곳곳에 흩어진 왕산 후손들이 100년 만에 고향에서 모였다. 하지만 허형식 장군 형제와 직계 유족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금오산은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미 금오산
 구미 금오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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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는 '후기'로 한 회 더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박도 실록소설 '들꽃'은 41회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태그:#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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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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