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위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 음식점 주인, 사무실 사장한테서 욕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먹고 살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처음 일할 때는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호 지켜 가며 일했다가 하루 종일 겨우 6천 원 번 날도 있었다. 그 다음 날 진짜 굶었다.'

"아는 친구가 오토바이 타다가 죽었어요. 졸음운전을 하는 트럭이 정면으로 받아 가지고 즉사했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무서워요. 괜히 오토바이 타다가 죽는 거 아닌가 싶고요. 저도 사고 났었죠. 비가 엄청 왔어요. 헬멧 유리막이 되게 뿌연 거예요. 앞에 노란불이었는데 횡단보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냅다 뛴 거예요.

그래서 사람 2명하고 부딪혔어요. 또 한 번은 사람이 도로에 떡하니 서 있는 거예요. 받을 것 같았어요. 진짜 받으면 어떻게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혼자 넘어졌죠. 그 사람이 괜찮냐고, 학생이 운전을 잘해서 안 받았다고 그러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만 원 주고 갔어요."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위는 원석이 이야기이고, 아래는 경수의 말이다. 원석이와 경수는 둘 다 십 대, 둘 다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음식점 배달원 직접 고용은 옛말... 너도나도 '배달대행업체'

<십 대 밑바닥 노동> 책표지.
 <십 대 밑바닥 노동> 책표지.
ⓒ 교육공동체 벗

관련사진보기

원석이도 경수도 매일 그날 번 돈이 필요한, 즉 하루 벌어 하루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 특히 기초생활수급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인 16세 경수의 들쭉날쭉한 일당에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세 동생의 생활이 걸려있다. 그래서 경수는 오늘도 배달해야 할 여러 종류의 음식이 실린 오토바이를 타고 사정없이 달려야만 한다. 여차하면 퇴짜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4년 전만 해도 치킨이나 피자, 중국음식처럼 배달이 필요한 경우 음식점 업주가 배달할 사람을 직접 고용했다. 그러나 이제 업주들은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배달대행업체와 제휴, 매달 일정의 회비를 낸다. 그러면 배달대행업체가 원석이나 경수와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배달하게 한다. 이런지라 업종이 다른 음식을 시켜도 배달원이 같은 경우도 있다.

업주들은 큰 신경 쓰지 않고도 배달을 할 수 있고, 몇 건 되지 않는 배달 때문에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배달원은 배달 중에 전화로 연락을 받아 배달이 발생한 업소로 직접 가 음식을 가지고 배달을 바로 나간다. 그러니 부지런히 뛰면 한곳에 매여 일정한 보수를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간 모두에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렇게 사고의 위험은 훨씬 배가됐지만, 정작 사고가 나면 이를 책임져야 할 노동법상 사용자는 누구인지 모호하다. 음식점은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라 하고, 배달 대행업체는 오토바이만 빌려주고 주문 소개만 해 주었을 뿐이라고 하면서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위험 비용을 고스란히 청소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전에 없었던 배달 대행업체 업주가 새로이 중간수익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음식점 업주도 배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대행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인건비 절감이라는 추가수익을 얻고 있다. 반면 청소년 노동자들의 수입은 더 늘어난 것이 없다. 정리해 보면 더 위험해진 배달 노동으로 발생한 수익을 배달 대행업체와 음식점이 나눠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목숨을 걸 정도로 노동 강도가 높아졌고, 사고 위험이 크게 높아졌지만, 이로 인한 대가는 다른 이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손을 놓고 있다.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음식 퇴짜 맞으면 음식 값까지 물어야

원석이가 2만 원짜리 음식 1건을 배달하고 버는 돈은 2천 원. 그런데 손님이 배달한 음식을 되돌려 보내면 2천 원은커녕 1만 8천원의 적자를 본다. 배달대행업체들이 배달원이 음식을 사서 배달하는 형태로 계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식을 퇴짜 맞으면 옛날처럼 식당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배달원이 음식 값을 물게 되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배달원은 1만 8천원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하루 건수에 상관없이 매일 오토바이 임대료와 보험료 6천 원을 사무실에 내는 데다가 기름값도 본인 부담이기 때문이다(기자 주: 오토바이를 사서 일하는 어른들도 있다). 이러니 원석이처럼 하루 종일 일해도 6천 원 벌거나, 손해를 봐 굶어야 하는 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원석이와 경수 같은 십대들은 이 배달대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는 배달 대행업체 때문에 전형적인 배달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 구하기 힘들기 때문. 게다가 3~4년 전만 해도 청소년들의 주요 아르바이트 장소였던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 주유소 등은 이제 취업을 못한 20대나 주부 등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모욕 중단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는다. 청소년 노동자가 일터에서 주로 불리는 이름은 '야', '너'이다. 반말은 기본이고, 손님들 앞에서 막말과 욕설로 혼이 나는 일도 흔하다. 비청소년과 같은 실수를 해도 청소년에게는 더 큰 모욕이 돌아온다. 뒤통수 때리기나 벽보고 서있기와 같은 체벌도 청소년에게만 행해지는 노동규율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청소년은 주방에서 빵을 조금 태웠다는 이유로 탄 빵을 입에 쑤셔 넣는 '가르침'을 받고서는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배달 일을 했던 청소년은 태풍 속을 뚫고 배달을 다녀왔는데도 '빨리빨리' 재촉만 하는 사업주를 보고서는 '죽으라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일 자체의 고담함보다 자기를 대하는 모욕적 태도가 더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이런 모욕을 견디며 손에 거머쥔 임금도 너무 초라하다. 워낙 임금이 낮다보니 형편이 열악한 청소년은 더 오래 일하거나 여러 일자리를 뛰어 필요한 수입을 채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모욕을 견뎌 내야 할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청소년의 노동은 밑바닥이다.
-<십 대 밑바닥 노동>에서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세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기획 <십 대 밑바닥 노동>(교육공동체 벗 펴냄)의 부제는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세계'. 십 대 청소년들의 불안정하고 인권이 사라진 노동현실, 그 실태를 파헤친다.

1부 '더 은밀하게, 더 잔혹하게'에서는 호텔 연회장 서빙, 택배 물류센터 상ˑ하차, 이벤트 피에로, 배달 대행업체 등, 요즘 십 대 노동자들이 많이 몰리는 노동현장들의 불안정하고 위험한 현실을 다룬다. 그리고 2부 '밑바닥을 맴돌다'에서는 원석이와 같은 기초생활수급가정 청소년과 탈학교 청소년 등 처지와 서로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 4명의 청소년 노동자를 인터뷰, 청소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청소년 노동현장 그 실태를 들려주는 동시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삶을 들려준다.

그리고 에필로그 '청소년 노동 세계는 왜 이따위인가'에서는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용돈벌이 때문, 일하는 청소년=일탈 청소년, 청소년들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한다'등, 청소년 노동인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버려야 할 편견이나 바꿔야 할 태도 및 노력, 법적인 문제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달하는 사람이 오토바이를 빌려, 기름 값을 부담하며, 배달할 음식을 사서 배달하는 형태인 현재의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 구조는 너무나 잔혹하며 비상식적이다. 흔히 말하는 갑의 횡포라는 생각까지 든다. 원석이나 경수처럼 매일 번 돈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절박한 사정을 미끼로 최소한의 책임도 나 몰라라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유독 고맙고, 남들보다 먼저 읽어 다행스러운 책이 있다. 워낙 씁쓸하게 읽은 이 책 <십 대 밑바닥 노동>이 그 중 하나. 가급적 많은 사람이 알아야만 하고 그래서 개선되어야 할 것이 많은 청소년들의 불안정하고 부당한 노동, 그 실태를 이렇게 알려주는 게 독자로서 매우 고맙기만 하다. 남들보다 먼저 읽어 책의 존재와 청소년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것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십 대 밑바닥 노동>(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이수정·윤지영·배경내·림보·김성호·권혁태)) | 교육공동체벗 | 2015-01-05 |12,000원



십 대 밑바닥 노동 - 야/너로 불리는 이들의 수상한 노동 세계

이수정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2015)


태그:#아르바이트, #배달 대행업체, #십대 노동, #청소년 노동, #배달 청소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